힐튼호텔, 회현아파트…남산의 건축물에서 미래를 엿보다

지정우 건축가

발행일 2023.04.28. 15:12

수정일 2023.05.01. 09:00

조회 3,981

지정우 건축가
서울 남산에서 내려다본 봄날 도심의 모습. 자연과 함께 다양한 시간의 켜가 중첩되어 있는 곳이 서울이다
서울 남산에서 내려다본 봄날 도심의 모습. 자연과 함께 다양한 시간의 켜가 중첩되어 있는 곳이 서울이다

아빠건축가의 다음세대 공간 탐험 (6) 남산, 다음세대 위한 공간으로 남으려면

서울은 주변에 산이 둘러있어서 세계에서도 독특한 풍경을 가진 도시다. 특히 남산은 예전엔 사대문 남쪽의 산이었지만 지금은 도심 한복판의 산으로, 사시사철 시민들이 즐겨 찾는다. 계절마다 피는 꽃과 그 아래 도심, 멀리 북악산, 북한산, 인왕산과 한강까지 꽤나 입체적인 풍경을 만든다.
오래전 만들어진 공간들이 
새로운 지층을 만들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남다른 깊이를 느낀다. 

깊이를 가진 도심 공간

그러나 남산 아래 도시의 건물들은 서울이 가진 역사의 깊이만큼 오래 되었다기 보다 계속해서 바뀌는 모습이다. 그만큼 역동적이기도 하지만 깊이가 부족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것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공간이 가진 깊이감이 쉽게 인지되는 건 아니지만, 알게 모르게 시민들의 공간 의식에 얄팍함과 삭막함을 남기기 마련이다.

우리는 뉴욕 같은 해외 도시에 가서 새로 개발된 공간만 찾아다니지 않는다. 수 십 년 혹은 백 년 전 만들어진 공간들이 새로운 지층을 만들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남다른 깊이를 느낀다.
원경의 남산타워와 근경의 구 어린이회관 건축
원경의 남산타워와 근경의 구 어린이회관 건축

시간성을 가진 남산 주변

다행히 남산 가까이에는 근현대 도시 서울의 이야기를 가진 몇몇 장소들이 있다. 물론 수 백년 된 남대문과 한양도성의 일부도 복원되어 접근성이 개선되었지만, 근대 도시로의 서울이 자리잡고 성장하는 데 중요한 공간들이 남아있다. 이 주변은 서울에서도 대표적인 ‘시간성’을 간직한 곳이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하얗고 둥근 지붕을 가진 근대 건축물인 서울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구 어린이회관, 건축가 이광노 작, 1969)이다. 지금 어린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서울에서 그런 둥근 지붕을 가진 건물들을 볼 때마다 예전엔 로보트 태권브이가 그것을 열고 나와서 우리나라를 지킨다고 믿었던 어린이들이 많다. 지금 지어지는 첨단의 건축에서 보기 힘든 조형과 깊이 있는 창 등이 남산과 더불어 랜드마크의 역할을 하고 있다.
오른편 회현시민아파트와 중앙에 별장아파트, 그 뒤엔 구 어린이회관과 앞에는 폐허같이 버려진 놀이터가 도시의 고고학적인 풍경을 만들어 낸다
오른편 회현시민아파트와 중앙에 별장아파트, 그 뒤엔 구 어린이회관과 앞에는 폐허같이 버려진 놀이터가 도시의 고고학적인 풍경을 만들어 낸다

이곳에서 내려다 보면 회현시범아파트 라고 불리우는 회현 제2시민아파트(1970)가 건재하고 있고, 아직도 그 안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급 경사지와 몇 개의 브릿지, 미로 같은 내부 공간, 폐허 같은 상황으로 인해 종종 영화나 TV프로그램에 등장하기도 한다. 사실 이 아파트보다도 더 오래된 집합주거들이 이 근처에 여럿 있다. 미쿠니 아파트(1930)나 취산아파트 (1936)가 대표적이다.
취산 아파트(1936)와 그 왼쪽의 삼풍아파트(왼),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현존 아파트인 회현동의 미쿠니 아파트 (1930) (우)
취산 아파트(1936)와 그 왼쪽의 삼풍아파트(왼),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현존 아파트인 회현동의 미쿠니 아파트 (1930) (우)

인접한 소월길을 따라가다 보면 공공건축인 남산도서관(건축가 이해성 작, 1964)도 있다. 건립 당시 가장 규모가 큰 도서관이었던 이곳은 여전히 많은 시민이 찾고 있으며, 도서관의 기능도 조금씩 업그레이드 되고 있다.

또한 바로 인근의 옛 조선신궁 터에는 남산 분수대 및 식물원(1960)의 흔적과 안중근기념관(디림건축, 2010),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한양도성유적전시관 등 역사적인 장소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남대문교회(1969), 구 서울역사(1925) 등의 문화 시설, 서울로7017, 복합문화 공간인 피크닉, 남대문시장 등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공간들이 있다. 대부분 과거의 건축물을 아예 철거하지 않고, 그 기억을 물리적으로 살리고 보존 또는 개발하여 한양도성과 함께 시민의 관심이 몰리는 곳들이다.
벛꽃이 필때의 남산 도서관
벛꽃이 필때의 남산 도서관
하얀 지붕의 한양도성유적전시관과 좌측 남산도서관, 우측 구 어린이회관, 그너머에 힐튼호텔이 일부 보인다
하얀 지붕의 한양도성유적전시관과 좌측 남산도서관, 우측 구 어린이회관, 그너머에 힐튼호텔이 일부 보인다
구 서울역은 현재는 전시관인 문화역 서울284로 사용되고 있다
구 서울역은 현재는 전시관인 문화역 서울284로 사용되고 있다

남다른 공간의 격을 가진 힐튼호텔

남산을 둘러싼 건축들 중에서도 가장 격이 높은 공간은 ‘밀레니엄 힐튼서울’(이하 힐튼호텔, 건축가 김종성, 1983)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2022년 12월 31일로 영업을 종료하고 철거와 보존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곳은 그동안 호텔이라는 특성과 위치상 일반 시민들이 쉽게 다가가긴 어려운 공간이었다.
힐튼호텔의 로비와 공용공간. 이런 공간은 지금도 세계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격을 갖췄다
힐튼호텔의 로비와 공용공간. 이런 공간은 지금도 세계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격을 갖췄다

그러나 40년이 지난 지금도 전혀 손색이 없이 훌륭한 공간감을 유지하고 있는 로비 등 포디움(건물의 기단부)을 포함해 1980년대 초반 우리가 구사할 수 있는 기술과 디테일을 넘은 건물 자체는 우리나라의 현대 건축사를 축약시켜 놓은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영업 종료후 불꺼진 2023년 4월의 힐튼호텔과 한양도성
영업 종료후 불꺼진 2023년 4월의 힐튼호텔과 한양도성

한양도성의 복원과 인근 후암동과 소월길의 상업적 발전으로 일반 시민들의 접근성이 높아졌기에 이 품격있는 공간이 보다 시민들에게 친근하게 활용이 된다면 남산 전체가 시민 공간으로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본다. 

구순을 앞두고 있는 건축가 김종성은 이곳의 새로운 개발 주체에게 힐튼호텔의 일부를 보존하면서 적극적이며 서로 상생할 수 있는 공간적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했으며, 건축계도 이러한 의견에 뜻을 더하고 있다.

다음세대의 시민도시공간

이러한 시간성을 간직하고 있는 서울의 남산 주변과 그곳에 위치한 힐튼호텔이 개발되면, 지금까지 서울의 재개발이 그러하듯, 지금보다 더 관심도가 떨어지는 장소가 될 가능성이 크다.

기존 힐튼호텔이 가지고 있는 풍부한 건축적 자산과 기술적, 미적 성취를 적극 활용하여 그 역사가 가진 ‘시간성’을 더한 ‘시간복합개발’을 했을 때, 남산이 다음세대 시민 공간으로 발전할 기대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남산에서 바라본 남산 주변 도심 풍경. 이 안에 수십년의 시간이 쌓여있다
남산에서 바라본 남산 주변 도심 풍경. 이 안에 수십년의 시간이 쌓여있다

10년, 20년, 30년 후 우리의 다음세대들은 단지 오래돼 의미있는 장소뿐만 아니라 7~80년이 넘은 세계 수준의 건축 공간을 통해서 공간의 감각과 시선의 깊이, 풍요로움을 느끼며 자라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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