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 이전엔 유성기가 있었다! 음원으로 듣는 옛 유성기 음반

시민기자 최은영

발행일 2023.06.20. 09:08

수정일 2023.06.22.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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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원과 재단법인 아름지기 협력 전시 <유성기집, 소리를 보다>

"기관이 되는 작은 기계를 바꾸어 꾸미면 먼저 넣었던 각항 곡조와 같이 그 속에서 완연히 나오는지라, 보고 듣는 이들이 구름 같이 모여 모두 기이하다고 칭찬하며 종일토록 놀았다더라"
1899년 4월 20일, 독립신문은 서울 삼청동 감은정(현재 총리공관 자리)에서 조정의 관리들이 소풍을 즐기며 유성기에서 나오는 음악을 듣는 모습을 이렇게 전했다. LP가 나오기 이전, 옛날 사람들이 모여 유성기로 음악을 듣는 모습은 과연 어땠을까?
국립국악원과 재단법인 아름지기 협력 전시 <유성기집, 소리를 보다> ⓒ최은영
국립국악원과 재단법인 아름지기 협력 전시 <유성기집, 소리를 보다> ⓒ최은영

국립국악원과 재단법인 아름지기는 유성기 음반을 주제로 한 전시 <유성기집, 소리를 보다>5월 26일부터 6월 30일까지 종로 통의동에 있는 아름지기 사옥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그간 국립국악원 아카이브가 수집과 기증 등을 통해 보유한 유성기 음반의 음원을 복각하고 유성기 음반을 소비했던 당시의 공간을 꾸며 시민들에게 공개하기 위해 마련했다.

유성기(Gramophone)는 소리가 녹음된 원반(SP; Standard Play)을 재생하는 장치로, 19세기 전후 조선에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당시 유성기가 있는 집에 삼삼오오 모여 소리를 듣던 곳을 유성기 처소라고 불렀던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모여 어떻게 소리를 듣고 즐겼을지 궁금해진다.
 1층 전시관 '소리를 기록하다' ⓒ최은영
1층 전시관 '소리를 기록하다' ⓒ최은영
유성기집과 포터블 유성기 ⓒ최은영
유성기집과 포터블 유성기 ⓒ최은영

국립국악원은 이번 전시를 위해 전시공간의 이름을 ‘유성기집’이라 정하고, 실제 ‘유성기 처소’가 많았던 종로구 통의동 인근의 전통문화 전시공간인 아름지기에서 이번 전시를 진행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국립국악원의 유성기 음반 중 대중들이 쉽게 들을 수 없었던 음반과 명인 명창들의 인기 음반 약 30여 점의 61개 음원을 당시 사진과 홍보물 등 관련 자료와 함께 소개한다.

전시는 아름지기 사옥의 3층으로 구분된 공간에서 진행되며, 유성기 음반 관련 자료 전시를 관람하고 음원을 직접 들을 수 있다.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궁중음악 음반 '조선아악'을 비롯하여, 이화중선, 임방울, 김소희 등 당대 명창이 부른 '춘향가' 등을 비교해 들어 볼 수 있다.
'조선아악' 음반 ⓒ최은영
'조선아악' 음반 ⓒ최은영
유성기 음반의 복각 과정 ⓒ최은영
유성기 음반의 복각 과정 ⓒ최은영

1층 ‘소리를 기록하다’에서는 국내에 유성기가 소개되고 음반 산업이 시작된 역사와 음반에 담긴 음악과 인물을 소개한다.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궁중음악 음반이자 대중들에게 궁중음악을 널리 알리는 주요한 계기가 되었던 ‘조선아악'(1928)과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이화중선, 임방울, 김창룡, 박녹주, 김소희 명창 등의 음반을 신문 광고, 노래 가사지, 사진 등의 자료를 통해 읽어 볼 수 있다.  유성기 음반을 통해 대중문화가 조금씩 형성된 과정을 보니 흥미롭다.
2층 전시관 '음반에 담긴 100년 전 소리를 듣다' ⓒ최은영
2층 전시관 '음반에 담긴 100년 전 소리를 듣다' ⓒ최은영

2층은 한옥 풍류방과 오디오룸으로 구분해 한옥 공간에서는 당시 ‘유성기 처소’에서 들었던 유성기 음반을 유성기로 직접 들어 볼 수 있게 했다. 국립국악원은 이번 전시를 위해 1925년 제작된 크레덴자(Credenza) 유성기를 구해 전시 기간 중 감상 프로그램인 ‘유성기로 듣는 우리 소리’를 진행한다. 매일 오후 2시 30분부터 20분간 1930년대와 50년대의 민요 관련 음반을 들려 준다.

‘유성기로 듣는 우리 소리’를 감상해 보니 조선 시대로 돌아간 느낌이 들고 신기했다. 1930년대부터 1950년대에 걸쳐 우리나라 민요 '아리랑', '도라지 타령'을 영어로 부른 것이 음반에 녹음되어 있었다. 전시를 보러 온 시민들이 모여 함께 들었는데, 마치 1920년대 유성기집에서 이렇게 음악을 감상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레덴자 유성기로 듣는 감상 프로그램 '유성기로 듣는 우리 소리' ⓒ최은영
크레덴자 유성기로 듣는 감상 프로그램 '유성기로 듣는 우리 소리' ⓒ최은영
유성기 시대 이전의 풍류방 재현 ⓒ최은영
유성기 시대 이전의 풍류방 재현 ⓒ최은영

3층 공간에서는 옛 소리를 활용한 예술가의 음악을 소개한다. 국립국악원 소장 음원을 활용해 제작한 한국관광공사의 ‘강강술래’를 비롯하여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Feel the Rhythm of Korea)’와 국립국악원의 영상 및 전통음악인 이희문의 작업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아늑한 공간에서 조용히 음악을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3층 전시관 '영감의 원천이 된 우리 소리' ⓒ최은영
3층 전시관 '영감의 원천이 된 우리 소리' ⓒ최은영

이번 전시와 관련한 연계행사도 풍성하다. 6월 매주 토요일 오전 11시에는 한국음반아카이브연구소장 배연형, JTBC ‘풍류대장’ 프로듀서 황교진, 국악음반박물관장 노재명, 소리꾼 이희문의 강연 및 토크 콘서트를 진행한다.

오후 2시에는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단원들의 가야금산조, 대금산조, 경기잡가, 판소리 공연도 선보인다. 전시 관람은 무료이고, 전시 연계행사는 아름지기의 네이버 예약을 통해 신청할 수 있다.
전시 연계 특강 ‘유성기 음반 속 음악 문화’ ⓒ최은영
전시 연계 특강 ‘유성기 음반 속 음악 문화’ ⓒ최은영
‘유성기 음반 속 음악 문화'를 강연한 배연형 한국음반아카이브연구소 소장 ⓒ최은영
‘유성기 음반 속 음악 문화'를 강연한 배연형 한국음반아카이브연구소 소장 ⓒ최은영

6월 3일 ‘유성기 음반 속 음악 문화’ 강연에서는 조선에 유성기가 전래된 1888년부터 1930년대 유성기 음반의 변화와 당시 대중문화의 흐름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강연을 한 배연형 한국음반아카이브연구소 소장은 유성기 음반이 소비되고 향유된 사회 문화적 환경과 유성기 음반의 변화를 통해 전통음악의 변화를 꼭 알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전통음악은 상당히 많이 바뀌어 왔는데, 전통음악의 모습을 유성기 음반의 모습 속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잡음도 있고 해서 듣기가 어려운 면도 있지만, 애정을 가지고 들어 보면 지금의 연주인들이 찾을 수 없는 거장들의 음악을 알 수 있다고도 했다. 흥미 있게 들으려면 요즘 국악부터 거슬러 올라가면서 듣고, 국악원 자료실이나 도서관 등, 음반들을 커넥션해 놓은 곳에서 빌려서 듣거나 살 수 있는 곳도 있다고 한다.
디지털 음원으로 변환한 결과를 들을 수 있는 2층 오디오룸 ⓒ최은영
디지털 음원으로 변환한 결과를 들을 수 있는 2층 오디오룸 ⓒ최은영
옛날 유성기집을 재현한 전시관 2층 ⓒ최은영
옛날 유성기집을 재현한 전시관 2층 ⓒ최은영

이번 전시를 통해 현대음악을 듣는 방법의 모태가 된 유성기 음반에 대해 알 수 있었고, 그 속에 담긴 전통음악에 대해 들을 수 있어서 신선했다. 당시 유성기 음반을 들으면서 함께 웃고 울었을 사람들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100여 년 전의 전통음악의 현대적 계승을 통해 전통음악도 현대음악도 상생하며 발전하길 기대해 본다. 
영어로 녹음된 '도라지 타령'을 유성기로 들을 수 있다. ⓒ최은영 

'유성기집, 소리를 보다' 전시

○ 기간 : 2023. 5. 26.(금) ~ 6. 30.(금)
○ 장소 : 서울시 종로구 효자로 17 아름지기 통의동사옥
○ 교통 :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4번 출구에서 269m
○ 관람시간 : 10:00~17:00 (월요일 휴관)
○ 관람료 : 무료
누리집
○ 문의 : 아름지기 02-741-8375, 국립국악원 02-580-3375

시민기자 최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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