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사는 어르신에게 생일 케이크를 드려요~ 행복을 굽는 빵가게

시민기자 강사랑

발행일 2023.06.07. 11:04

수정일 2023.06.07. 17:08

조회 1,879

[우리동네 시민영웅] 이웃에게 빵과 케이크를 기부하는 천혜란 사장
서울 곳곳을 밝히는 ‘우리동네 시민영웅’을 찾아서...
서울 곳곳을 밝히는 ‘우리동네 시민영웅’을 찾아서...

어느 독거 어르신의 93번째 생일날, 주민센터 직원과 자원봉사자가 어르신 댁을 찾았다. 고기를 비롯한 먹거리와 함께 이들이 꺼내놓은 것은 바로 생일 케이크였다. 케이크에 초를 꽂고 불을 붙인 다음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자 어르신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고마워요. 나도 기억 못하는 생일에 이렇게 찾아오고 축하도 해주니 정말 고마워요."

가족 없이 오랫동안 홀로 생일을 맞이했던 어르신이기에 생일 케이크를 들고 찾아온 이웃들의 존재가 반가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웃들의 진심 어린 축하에 어르신은 모처럼 활짝 웃으셨다. 어르신의 생일 케이크를 준비한 이는 천혜란 씨다. 그녀는 주변에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생일 케이크를 제공하는 선행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천혜란 씨가 운영하는 길음뉴타운에 위치한 제과점 ©강사랑
천혜란 씨가 운영하는 길음뉴타운에 위치한 제과점 ©강사랑

Q. 안녕하세요.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A.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2006년부터 길음뉴타운에서 프랜차이즈 빵집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가 특별한 선행을 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인터뷰를 하게 되어서 쑥스럽고 약간 얼떨떨하기도 하네요.

Q. 먹음직스러운 빵들이 참 많네요. 푸드뱅크마켓센터에 빵을 기부하는 일을 오랫동안 해오셨다고 들었습니다.
A. 2006년에 가게를 오픈했는데, 그 다음 해에 푸드뱅크마켓센터를 알게 되어서 빵을 기부해 왔죠. 푸드뱅크마켓센터는 개인이나 기업으로부터 식품이나 물품을 기부받아서 어려운 이웃분들께세 무상으로 제공하는 곳이에요. 자치구마다 센터가 있는데, 저는 성북구에 거주하고 있어서 성북푸드뱅크마켓센터에 빵을 기부하고 있죠. 저희 가게가 당일 판매를 원칙으로 하다 보니까 다음 날에 빵이 남거든요. 저와 가족들, 직원들이 먹을 정도로 아무 문제가 없는 빵이에요. 때로는 주변 이웃분들과 나눠 먹기도 했는데 이게 한계가 있더라고요. 고민하던 차에 주민센터 직원분이 푸드뱅크에 기부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을 하셨어요. 그래서 2007년부터 2019년까지 푸드뱅크에 빵을 기부해 왔고, 이후에는 성북장애인복지관에 빵을 기부하고 있습니다.
기부를 통해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천혜란 씨 ©강사랑
기부를 통해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천혜란 씨 ©강사랑

Q. 취약 계층 어르신들의 생일을 축하하는 케이크를 제공하고 있어요.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셨나요?
A. 처음엔 길음1동 주민센터에서 제안을 해주셨어요. 가족 없이 홀로 거주하는 고령의 어르신들에게 생일 이벤트를 하고 있는데, 혹시 케이크를 협찬해 줄 수 있냐고 물어보셔서 기꺼이 응했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일이 올해 6년 차가 되었어요. 연초에 주민센터 직원분이 돌봄 대상 어르신들 나이, 생일 날짜가 적힌 명단을 주세요. 그럼 생일 날짜에 맞춰서 케이크를 만들어서 주민센터에 제공하는 거죠. 주민센터 직원분과 봉사자분이 케이크를 들고 어르신 댁으로 가셔서 생일상을 차려서 축하해 드리고요. 보통 1년에 30개 정도의 생일 케이크를 제공하고 있어요. 어르신들이 한꺼번에 다 못 드실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케이크의 신선도를 무척 신경 써요. 가장 최상의 상태로 어르신들에게 제공하려고 노력해요.

Q. 명단을 보면 80세 이상 고령의 어르신들이 많네요?
A. 작년에는 90세 이상 어르신들이 더 많았어요. 코로나19 이전에는 명단의 절반 이상이 90세 이상의 어르신들이었고요. 그런데 올해 명단을 보면 90세 이상 어르신들이 별로 없어요. 몸이 좋지 않아 다른 기관으로 옮겨 가셨을 수도 있고, 어쩌면 돌아가셨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면 마음이 좋지 않아요. 개인 정보 보호 때문에 제가 어르신들의 자세한 신상을 알 순 없어요. 명단에 있는 어르신들이 모쪼록 아픈 데 없이 건강하셨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천혜란 씨의 정성이 들어간 케이크로 취약 계층 어르신의 생일상을 준비했다. ©길음1동 주민센터
천혜란 씨의 정성이 들어간 케이크로 취약 계층 어르신의 생일상을 준비했다. ©길음1동 주민센터

Q. 혹시 돌봄 대상 어르신들의 반응을 알고 계시나요? 현장에 직접 가보신 적이 있나요?
A. 쑥스러워서 직접 가보진 못했어요. 제가 큰일을 한 것도 아닌데요. 직원분을 통해 이야기를 듣긴 해요. 사실 제 딸아이가 최근에 성북구 공무원이 되었는데, 어르신 생일 파티 사진을 봤대요. 어르신 한 분이 생일 케이크를 앞에 두고 환하게 미소 짓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고요. 어머니가 하고 있는 나눔의 가치를 그때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제가 특별한 선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딸의 말을 들으면서 거꾸로 제가 하는 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어요. 고단한 삶을 이어가시는 어르신들께서 제 케이크를 통해 조금이나마 시름을 잊으신다면 저는 만족해요.
매장 내 신선한 빵과 케이크가 주기적으로 기부되고 있다. ©강사랑
매장 내 신선한 빵과 케이크가 주기적으로 기부되고 있다. ©강사랑
매장 내 신선한 빵과 케이크로 따뜻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강사랑
매장 내 신선한 빵과 케이크로 따뜻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강사랑

Q. 오랫동안 빵과 케이크를 기부해 오시면서 우리 사회의 나눔 문화에 대해 느끼신 바가 크실 것 같습니다.
A. 저는 애초에 나눔이라든지 봉사, 선행에 뜻이 있었던 사람은 아니에요. 그런데 한 살, 두 살 나이들수록 사회 속에서 어른 역할을 수행하며 자연스럽게 마음이 움직였던 것 같아요. 나와 가족들 말고 주변 이웃들, 특히 어렵게 살아가시는 분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 거죠. 알고 보니 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좋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더라고요. 저랑 친하게 지내는 지인도 자세한 이야기는 안 하시지만 여러 단체에 후원을 하고 계시고요. 저는 다만 빵집을 운영하고 있다 보니 빵과 케이크로 나눔을 하는 거고요. 저희 가게가 제공하는 빵을 민관에 속한 자원봉사자분들께서 필요한 곳에 가져다주시는 걸 보면 '나 혼자서 하는 일이 아니구나',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협력해서 선을 이루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더 멋진 것 같아요.

Q. 별일 아니라고 하시지만 좋은 마음가짐으로 묵묵히 선행을 지속해 오셨어요. 덕분에 좋은 기운을 얻어갑니다.
A. 앞으로도 빵집을 운영하면서 빵과 케이크를 이웃들에게 꾸준히 기부하고 싶어요. 아침이면 빵을 가지러 어김없이 찾아오시는 자원봉사자분들이 반가워요. 마치 배턴터치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달까요. 다같이 하는 좋은 일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고 재미도 있어요. 모든 일이 그렇지만 나눔도 선행도 내 마음이 즐거워야 오래오래 할 수 있으니까요!
천혜란 씨외 직원들이 카메라 앞에서 다정하게 포즈를 취했다. ©강사랑
천혜란 씨외 직원들이 카메라 앞에서 다정하게 포즈를 취했다. ©강사랑

인터뷰를 하는 동안 천혜란 씨는 "제가 하는 일은 별거 아니에요"라는 겸양적 표현을 여러 번 했다. 그는 자신이 한 일들이 어떤 특별한 선행이라기보다는 '일상 속 루틴'이라고 강조했다. 1년 365일 가게를 운영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지금까지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보통 선행이라고 하면 크게 마음먹어야 할 수 있는 일, 시간이나 비용적으로 부담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세상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가며 뜻깊은 일을 하는 훌륭한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천혜란 씨의 나눔 행보일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도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지역 내 공무원과 자영업자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복지 시스템 덕분이었다. 이처럼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일들이 우리 사회에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또 지속적으로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시민기자 강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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