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엔 내 방이 없지만 우리동네엔 있다!

지정우 건축가

발행일 2023.03.24. 15:30

수정일 2023.03.24. 15:38

조회 2,900

지정우 건축가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에 게시된 중학생들이 요즘 고민하고 있는 내용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에 게시된 중학생들이 요즘 고민 하는 내용

아빠건축가의 다음세대 공간 탐험 (5) 자신만의 방

대한민국엔 방이 많다. 상업건물은 벽에 붙은 간판만큼이나 많은 방을 품고 있고 빽빽한 아파트도 결국 방들이 모인 집합이다. 그런 방들은 벽과 벽, 칸과 칸으로 나누어져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한다. 놀이도, 배움도, 일도, 공부도, 휴식도 모두 각각의 방에서 이뤄지다 보니, 그 공간이 어떠한 지보다는 방의 유무나 개수가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청소년들은 피시방이나 편의점을 
자신의 방 대신 가곤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엔 방이 부족하다. 지역에 따라 격차에 따라 세대에 따라 방의 부족한 정도는 차이가 크다. 특히 경제권이 없고 선택권이 없는 어린이·청소년의 경우 방이 없는 경우가 많다. 자기 가족만의 집이 없는 경우도 있고, 집은 있으나 자신만의 방이 없는 경우도 있다.

저층 도시 주거 밀도가 빽빽할수록 이런 상황에 놓인 다음세대들이 많다. 그래서 그들은 집에서 발코니를 자신의 방처럼 쓰거나 피시방이나 편의점을 자신의 방 대신 가곤 한다.
시흥시 정왕동에는 어린이들이 마음 놓고 갈 수 있는 동네 속 우리집인 ‘모두의 집’이 있다.
시흥시 정왕동에는 어린이들이 마음 놓고 갈 수 있는 동네 속 우리집인 ‘모두의 집’이 있다.

여러 문화권이 함께 어울려 산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는 다양한 문화권과 이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산다.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러다 보니 정글과 같은 도시적 긴장감이 더해지고, 어린이·청소년이 마음 놓고 머물 장소가 부족한 경우가 생겨나고 있다. 

그래서 각 복지단체나 사회기관은 학교나 집 말고도 어린이·청소년이 마음 놓고 활동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려 노력해왔다. 공공기관의 세심함이 닿지 못하는 곳에서 이런 장소들은 더욱 가치를 가진다. 

이전에는 교실, 놀이방 등으로 방과 칸을 나누어 각기 다른 기능을 수용하는 건조한 공간들로 채워졌다면, 최근에는 다양한 활동을 담으면서도 다음세대들이 마음 편하게 지낼 만한 곳으로 변화하고 있다. 
모두의 집에는 여러 개의 다음세대 집과 방들이 모여 있다.
모두의 집에는 여러 개의 다음세대 집과 방들이 모여 있다.

방가방가! 나와 내 친구가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방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시흥시 정왕동에 ‘다어울림아동센터’를 만들고 필자의 건축사무소에 공간 디자인을 요청해왔다.

우리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다어울림센터가 그들의 ‘방’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마음을 둘 수 있는 방’이 모여 우리의 방을 이루는 곳. 그러나 동네의 집들처럼 막혀 있는 방이 아닌, 열린 방으로 그날의 기분과 행동에 따라 각각 다른 방을 선택할 수 있는 곳. 나와 내 친구가 함께 이야기를 담아갈 수 있는 ‘우리’의 방을 설계하고자 했다.
동네 집들처럼 막혀 있는 방이 아닌 
그날의 기분과 행동에 따라 
각각 다른 방을 선택할 수 있는 
‘우리’의 방을 설계하고자 했다

그렇게 탄생한 공간을 우리는 ‘방가방가’라고 부르기로 했다(센터에서 실제 정해진 이름은 ‘모두의 집’이다). 그들의 마음을 ‘반갑게’ 환대하는 공간, 방과 집이 여러 개 있다는 의미에서의 ‘방가방가’. 간척지에 만든 시흥의 평평한 주거지와는 달리, 높고 낮은 방들이 이어지며 개인 활동과 그룹 활동을 자유롭게 펼쳐갈 수 있도록 했다.
‘방가방가’, ‘모두의 집’으로 불리는 어린이 청소년의 방들은 다양한 활동을 담으며 주변 동네를 투영한다.
어린이·청소년의 방들은 다양한 활동을 담으며 주변 동네를 투영한다.
내 집엔 내 방이 없지만 이곳에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열린 내 방이 있고 어떤 활동이든 가능하다.
내 집엔 내 방이 없지만 이곳에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열린 내 방이 있고 어떤 활동이든 가능하다.

근처에 있는 공원은 다소 삭막한 곳이었으나, 밝은 통창 안에 있는 모두의 집 ‘방가방가’가 생기면서 동네 분위기를 변화시키는 데 조금이라도 일조하고 있다. 모두의 집 ‘방가방가’ 안에서 어린이·청소년들은 주체적인 활동을 채워가고 있다. 

열린 아치의 공간 시흥스펙트럼(SIS)

이 지역의 또 다른 복지기관에도 청소년 공간 개선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시흥스펙트럼’이라 이름 붙인 ‘시스(SIS)’는 텅 비어 있는 작은 강의실을 더 나은 공간으로 개선하여 청소년들이 자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프로젝트였다.
기존 건물의 단조로운 실내를 칸으로 나누기보다 아치를 통해 연결하고 구별되도록 했다.
기존 건물의 단조로운 실내를 칸으로 나누기보다 아치를 통해 연결하고 구별되도록 했다.
기존 아치 창문이 실내로 투영되면서 더 확장, 발전되어 공간에 이야기가 더해졌다.
기존 아치 창문이 실내로 투영되면서 더 확장, 발전되어 공간에 이야기가 더해졌다

이곳은 원래 유치원이었던 건물로, 관습적으로 사용하던 동그란 창과 아치창 그리고 성과 같은 외관을 가지고 있었다. 건물 2층의 절반을 청소년 활동 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해 정왕동에 거주하는 청소년과 대면, 비대면 워크샵을 가졌다. 그렇게 그들의 경험과 마음에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을 시작으로 ‘시스’를 설계하게 되었다.

이곳 청소년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이 상당히 무기력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청소년들은 새로운 공간에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고민 끝에 원래의 건물이 가지고 있던 아치형 창문을 모티브로 하여 그들의 우울한 생각을 밝고 명랑한 모습으로 바꿀 수 있는 공간을 구성했다. 비좁은 내부 공간을 벽으로 경계 짓는 것이 아니라 열린 아치의 연속으로 공간을 구분하고 연결했다.
시선이 막히지 않고 기존 창문을 통해 밖으로 확장되고 그 사이에 여러 활동이 벌어질 여지가 생겼다.
시선이 막히지 않고 기존 창문을 통해 밖으로 확장된다. 그 사이에 여러 활동이 벌어질 여지가 생겼다.
똑바로 또는 거꾸로 세워진 아치는 
벽을 만들고, 오픈된 공간을 만들어냈다. 

똑바로 또는 거꾸로 세워진 아치는 벽을 만들고, 오픈된 공간을 만들어냈으며, 책장으로 사용하거나 걸터앉는 가구가 되기도 했다. 

공간은 마치 달팽이처럼 내부로 말려 들어가는 형태인데, 크게 4개의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무언가를 만들어보고, 공부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뒹굴뒹굴 쉬고 노는 공간을 각각 ‘슥슥’, ‘똑똑’, ‘두런’, ‘뒹굴’로 네이밍하여 공간을 구성했다. 각각의 영역에 약간의 단차를 두어 다양한 활동이 담길 수 있도록 했다. 

공간의 가장 안쪽 자리에는 그물로 된 다락을 두어 좁지만 시각적으로 볼륨감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아치창과 원형창에서 들어오는 햇빛과 실내 내부의 분위기가 조화롭게 어울리면서 기존의 삭막했던 공간은 활기를 되찾았다. 
같은 요소여도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다른 기능을 하는 것이 무기력했던 아이들에게도 새로운 의미를 줄 수 있을지 모른다.
같은 요소여도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다른 기능을 한다. 무기력했던 아이들에게도 새로운 의미가 될 수 있다.

‘시흥스펙트럼’의 연속적인 아치는 다양한 문화와 배경을 가진 청소년들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공간이 만들어지기 전 다소 무기력했던 아이들은 이제 아주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이 공간을 사용하고 있다. 작은 공간이 그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를 바란다. 
무슨무슨 방 보다는 친근한 이름으로 영역을 표시한 사이니지
무슨 무슨 방보다는 친근한 이름으로 영역을 표시했다.
 다소 무기력했던 아이들은 이제 아주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이 공간을 사용하고 있다.
다소 무기력했던 아이들은 이제 아주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이 공간을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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