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정동' 시간여행 다녀왔습니다!
발행일 2022.10.18. 09:19
정동에 설치된 포토존, 복식체험을 하고 멋을 낼 수 있다. ©김해숙
10월은 축제의 주간이다. 그 많은 축제 중에서 '시월정동'을 마주했다. 정동은 서울의 근대 역사 문화의 발상지이다.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건너온 정치, 문화, 외교, 교육, 종교, 언론, 극장의 예술문화가 시작된 곳이며, 근대와 현대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늘 덕수궁 돌담길에서 시작했는데, 이 날은 송월동 국립기상박물관에서 시작하여 덕수궁 돌담길로 내려왔다. ‘시월정동’은 10월 6일 개막하여 복식체험, 정동마켓, 풍류마당, 티켓투어의 행사를 진행했다. 이 중 필자는 티켓투어 11코스 중 7코스를 둘러봤다.
더욱 즐거웠던 것은 평소 가까이서 보았던 곳을 다시 방문해 그 곳 역사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흥분이 되기도 했고 속상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늘 덕수궁 돌담길에서 시작했는데, 이 날은 송월동 국립기상박물관에서 시작하여 덕수궁 돌담길로 내려왔다. ‘시월정동’은 10월 6일 개막하여 복식체험, 정동마켓, 풍류마당, 티켓투어의 행사를 진행했다. 이 중 필자는 티켓투어 11코스 중 7코스를 둘러봤다.
더욱 즐거웠던 것은 평소 가까이서 보았던 곳을 다시 방문해 그 곳 역사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흥분이 되기도 했고 속상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시월정동' 티켓투어 코스 ©김해숙
국립기상박물관→돈의문박물관마을→여한중화기독교 한중교회→주한 캐나다대사관→국토발전전시관→이화박물관→덕수궁 중명전을 살펴보았다. 을사늑약의 장소인 덕수궁 중명전에서는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울분과 서글픔이 느껴지는 장소였다.
1939년에 지은 건물, 지금은 국립기상박물관 전시관이다. ©김해숙
국립기상박물관
국립기상박물관을 찾는 일은 조금 어려울 수 있다. 돈의문박물관에서 서울시 교육청을 뒤로하고 언덕길을 한참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힘든 만큼 탄성도 나오는 곳이다. 국립기상박물관은 시민대학 본부 바로 뒤에 있다. 올라가는 길 옆에는 아카시아 나무들이 즐비했다. 꽃이 피는 계절을 상상해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건물 옆에는 초등학교 때 교과서에 있던 모습과 똑같은 기상관측소가 있다.
지금 국립기상박물관이 되었지만 1932년 '경기도립경성측후소' 청사로 신축되었고, 1939년 현재의 2층 건물을 지었다. 1948년부터 1961년까지 국립중앙관상대로 사용되었다. 건물은 근대 모더니즘 형식이고, 내부에 이층으로 올라가는 원형계단은 특히 인상적이고 재미있었다. 100년 관측소의 명예를 갖고 있으며 1932년부터 계절 관측목인 멋진 벚나무가 시내를 바라보고 있다.
박물관 내부에는 ‘하늘을 섬기다’, ‘다른 하늘을 만나다’, ‘하늘을 가까이하다’의 제목으로 기상학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지금 국립기상박물관이 되었지만 1932년 '경기도립경성측후소' 청사로 신축되었고, 1939년 현재의 2층 건물을 지었다. 1948년부터 1961년까지 국립중앙관상대로 사용되었다. 건물은 근대 모더니즘 형식이고, 내부에 이층으로 올라가는 원형계단은 특히 인상적이고 재미있었다. 100년 관측소의 명예를 갖고 있으며 1932년부터 계절 관측목인 멋진 벚나무가 시내를 바라보고 있다.
박물관 내부에는 ‘하늘을 섬기다’, ‘다른 하늘을 만나다’, ‘하늘을 가까이하다’의 제목으로 기상학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돈의문역사박물관, 벽면의 사인이 수시로 바뀌며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 ©김해숙
돈의문 역사박물관
돈의문역사박물관은 볼거리와 체험거리가 많아 충분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오래 앉아 있어도 지루하지 않은 곳이다. 2003년 새문안 동네를 비롯하여 교남동 일대가 뉴타운으로 지정되어 사라질 동네를 도시재생의 방법으로 지키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새문안 동네는 돈의문역사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철거되기 전 마을의 모습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만약 자신이 살았던 집과 마을길을 발견한다면 반가운 마음이 들 수도 있다.
새문안 동네는 돈의문역사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철거되기 전 마을의 모습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만약 자신이 살았던 집과 마을길을 발견한다면 반가운 마음이 들 수도 있다.
영화관 모습, 영화 <고교얄개> 시절의 모습이 새록새록 느껴진다. ©김해숙
필자는 이태리 레스토랑 아지오 2층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오래 앉아 있었다.
돈의문역사박물관에서 내려와 신호등을 건너서 정동에 들어섰다. 점심을 마친 직장인들이 커피를 들고 재잘거리며 무리지어 지나갔다. 카페와 음식점들에도 사람들이 가득했다.
간단하게 주한 캐나다대사관 사진을 찍고, 여한중화기독교 한성교회로 향했다.
돈의문역사박물관에서 내려와 신호등을 건너서 정동에 들어섰다. 점심을 마친 직장인들이 커피를 들고 재잘거리며 무리지어 지나갔다. 카페와 음식점들에도 사람들이 가득했다.
간단하게 주한 캐나다대사관 사진을 찍고, 여한중화기독교 한성교회로 향했다.
여한중화기독교 한성교회 입구 ©김해숙
여한중화기독교 한성교회
이름이 참 어렵다. 쉽게 말하면 화교교회이면서 이민자 교회다. 1912년에 세워졌으니 110년이나 된 교회다. 화교들은 1882년 임오군란 직후 청나라 군대를 따라 인천에 들어온 상인들의 후예다.
1898년에 중국인 청년 처다오신(車道心)은 교회를 다녔다는 이유로 아버지의 박해를 피해 조선으로 왔다. 한의원을 차리고 복음을 전하던 그는 미국인 CS 데밍 선교사가 경성YMCA에서 화교를 위한 집회를 열면서 복음 활동을 하다가 한성교회를 만들었다. 일제의 조선 강점기, 만보산사건, 중일전쟁, 한국전쟁, 남북냉전, 한중수교와 같은 굴곡들을 거치면서 그들이 겪었을 애환은 우리의 그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1912년부터 한성교회의 창립과 성장, 그리고 화교 배척의 시련으로 시작된 지금까지의 역사가 벽면에 빼곡하게 그려져 있는 것을 보면서 전하고 싶은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1898년에 중국인 청년 처다오신(車道心)은 교회를 다녔다는 이유로 아버지의 박해를 피해 조선으로 왔다. 한의원을 차리고 복음을 전하던 그는 미국인 CS 데밍 선교사가 경성YMCA에서 화교를 위한 집회를 열면서 복음 활동을 하다가 한성교회를 만들었다. 일제의 조선 강점기, 만보산사건, 중일전쟁, 한국전쟁, 남북냉전, 한중수교와 같은 굴곡들을 거치면서 그들이 겪었을 애환은 우리의 그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1912년부터 한성교회의 창립과 성장, 그리고 화교 배척의 시련으로 시작된 지금까지의 역사가 벽면에 빼곡하게 그려져 있는 것을 보면서 전하고 싶은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교회를 들어서면 오른쪽 벽면에 빼곡하게 생생한 역사가 적혀 있다. ©김해숙
국토발전전시관 ©김해숙
국토발전전시관
국토발전전시관은 투어지도를 보면서도 어딘지 몰라 찾기 막막했는데, 정동길 바로 옆에 있었다.
국토발전 전시관은 교통, 주택, 도시재생, 다리, 빌딩, 수자원, 에너지, 통신, 항만 등과 건설업계의 해외진출 현황들, 첨단기술 등 우리나라의 과거와 현재까지의 발전 과정을 볼 수 있다. 4층에서부터 관람해 내려오면 자연스러운 관람이 될 수 있다.
마포아파트와 압구정 현대아파트, 여의도 시범아파트를 비롯 세운상가 아파트 등 건축물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국토발전 전시관은 교통, 주택, 도시재생, 다리, 빌딩, 수자원, 에너지, 통신, 항만 등과 건설업계의 해외진출 현황들, 첨단기술 등 우리나라의 과거와 현재까지의 발전 과정을 볼 수 있다. 4층에서부터 관람해 내려오면 자연스러운 관람이 될 수 있다.
마포아파트와 압구정 현대아파트, 여의도 시범아파트를 비롯 세운상가 아파트 등 건축물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이화박물관은 우리나라 여성들의 최초 교육장이다. 동그라미는 최초의 여의사 김정동 ©김해숙
이화박물관
‘약한 이 힘 되고 어둠에 빛 되는’ 한국 여성 최초 교육 발상지로서의 맥을 이어나가는 이화박물관은 이화여자고등학교 앞 정동길에 위치해 있다. 이화박물관은 이화학당 설립 120주년을 기념하여 2006년 5월 31일에 개관하였고, 유관순교실을 비롯하여 이화를 빛낸 우리나라의 앞서가는 여성들을 볼 수 있다.
심슨홀이라고 불리며 이화여고 내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1915년 미국인 사라 심슨이 위탁한 기금으로 준공했다. 1886년 5월 31일 최초로 여성이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이화는 벌써 130년이 되었다. 이곳에서도 많은 역사와 이야기가 있다. 다시 한 번 정동길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중명전으로 향했다.
심슨홀이라고 불리며 이화여고 내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1915년 미국인 사라 심슨이 위탁한 기금으로 준공했다. 1886년 5월 31일 최초로 여성이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이화는 벌써 130년이 되었다. 이곳에서도 많은 역사와 이야기가 있다. 다시 한 번 정동길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중명전으로 향했다.
덕수궁 중명전 모습 ©김해숙
덕수궁 중명전
중명전과 예원학교 자리는 선교사들의 거주지였는데 1897년 덕수궁(옛 경운궁) 확장시 궁궐에 포함되어 황실 도서관으로 지어졌다. 1901년 화재가 있었고, 지금의 건물로 다시 지어졌다. 1905년 을사조약을 맺은 비운의 장소, 중명전을 처음 가 보았다. 이곳은 꼭 봐야한다는 해설사의 말이 아니어도 건물을 바라보는데 쓸쓸함이 몰려왔다.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나간 후에는 적막감이 흘렀다.
을사늑약 당시 사진은 남아 있지 않다. 일본에서 발행한 삽화는 참석하지도 않았던 고종이 회를 주관하고 동의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 1905년 11월 18일 새벽 2시경, 주한 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와 대한제국 외부대신(현재의 외교부장관)이 날인하여 중명전에서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었다.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보호한다는 내용이다. 최소한의 형식과 절차도 갖추지 않았던 이 조약은 국제법상 원천적으로 무효였다. 그러나 이 조약 이후 우리나라는 일제치하로 들어갔다. 을사늑약을 반대한 고종은 헤이그로 밀사를 보내 대한제국의 지지를 호소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고종은 강제 퇴임을 당하게 된다.
을사늑약 당시 사진은 남아 있지 않다. 일본에서 발행한 삽화는 참석하지도 않았던 고종이 회를 주관하고 동의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 1905년 11월 18일 새벽 2시경, 주한 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와 대한제국 외부대신(현재의 외교부장관)이 날인하여 중명전에서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었다.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보호한다는 내용이다. 최소한의 형식과 절차도 갖추지 않았던 이 조약은 국제법상 원천적으로 무효였다. 그러나 이 조약 이후 우리나라는 일제치하로 들어갔다. 을사늑약을 반대한 고종은 헤이그로 밀사를 보내 대한제국의 지지를 호소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고종은 강제 퇴임을 당하게 된다.
을사늑약 당시를 재현했다. 아래는 을사오적 ©김해숙
7코스를 완료하고 받은 선물 ©김해숙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다는 담당자의 말을 들으며 시간여행 7코스를 마쳤다. 나머지 코스는 다음 기회로 미뤘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시간을 충분히 들여서 다시 한 번 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7코스 완료 인증샷 ©김해숙
시월정동
○ 홈페이지
○ 문의 : 0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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