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 카세트테이프, 회수권…헌책방에서 만나는 옛날 물건들

시민기자 방윤희

발행일 2022.08.05. 13:00

수정일 2022.08.08. 17:17

조회 2,103

헌책에서 나온 사물들 ©방윤희
헌책에서 나온 사물들 ©방윤희

샤라라라~ 하는 등장 음악과 함께 검은 선글라스에 가죽 점퍼 차림을 한 차인표 오빠가 오토바이에서 내려 검지 손가락을 좌우로 쓰윽 한두 번 흔들면 여심이 흔들리며 꺄악~ 꺄아악~~. 상대 배우였던 신애라 언니가 마냥 부러웠던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 OST의 남녀 주인공 얼굴이 새겨진 LP판을 보니 두근두근하면서 90년대로 돌아간 듯했다. 

그 외에도 <MBC 강변가요제> 속 이상은, 손지창, 신승훈, 이승환, 윤상까지 타임머신을 타고 온 이곳은 멈춰버린 옛 시간들을 담고 있는 ‘헌책방의 사물展’이다.
시간이 멈춘 듯 공씨책방 추억의 LP 판이 서가 한 면 전체를 채우고 있다. ©방윤희
시간이 멈춘 듯 공씨책방 추억의 LP 판이 서가 한 면 전체를 채우고 있다. ©방윤희

뭐든 새로움을 추구하는 시대라서 그럴까. ‘헌’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니 오래되어 쓸모없다는 생각보다는 감성적이고 귀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레트로 감성이 트렌드로 떠오른 것도 그 시대만의 아련한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빛바랜 세월이 담긴 30년 간 사용한 재봉 가위(좌측부터 동신서림, 평화서림, 평화서림의 가위) ©방윤희
빛바랜 세월이 담긴 30년 간 사용한 재봉 가위(좌측부터 동신서림, 평화서림, 평화서림의 가위) ©방윤희

LP판에 이어 만난 옛 물건은 재봉 가위다. 노란 테이프로 칭칭 감긴 가위로 삐죽빼죽 삐져나온 책을 곱게 다듬었을 터. 오래되고 낡은 가위로 책의 모서리를 다듬어 새 책으로 만들어 준 장인의 마음이 전해진다.
로봇 태권브이 제2탄 <우주작전> 영화 포스터가 자리하고 있다. ©방윤희
로봇 태권브이 제2탄 <우주작전> 영화 포스터가 자리하고 있다. ©방윤희

만화영화 <로보트 태권브이> 포스터도 향수를 자극한다. 우리나라의 로봇물이라고 하면 로봇 태권브이가 시초이지 않을까? 포스터 왼쪽에 일렬로 늘어선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맞춰보며 옛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평화서림에 전시된 80년대 스타일의 연필과 빼빠(사포)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방윤희
평화서림에 전시된 80년대 스타일의 연필과 빼빠(사포)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방윤희

이번에 발견한 사물은 이름도 생소한 ‘빼빠’! 평화서림에 전시된 모양을 보고서 짐작해 본다. 꺼끌꺼끌한 표면 때문에 지금은 사포라고 불리지만 옛날에는 빼빠라고 불렸다. 필자는 빼빠라는 이름이 좀 더 정겹다. 빼빠로 헌 책의 거친 표면을 갈고, 묵은 때를 벗겨 내었다. 빼빠 옆에 있는 연필은 평범하지만 여기에선 특별하다. 아마 연필의 자리가 컴퓨터 키보드와 스마트폰의 터치로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사물을 도장으로 엽서에 담아올 수 있다. ©방윤희
오랜 역사를 지닌 사물을 도장으로 엽서에 담아올 수 있다. ©방윤희

체험 코너에는 가위, 의자, 부채 등 전시된 물건 모양이 찍히는 도장이 마련돼 엽서에 찍어볼 수 있다. 도장이 찍힌 엽서로 벽면을 장식했다. 그저 잡동사니 같은 것들도 이곳에서는 어엿한 제품이 된다. 보물 그 자체인 것이다. 엽서 만들기 이벤트 외에 헌책방 포토존 운영, SNS 인증숏 이벤트, 레트로 기념품 증정 등 다채롭게 준비되어 있다.
헌책방 포토존이 됨과 동시에 헌책방과 함께 동고동락한 의자가 빼꼼히 나와 있다. ©방윤희
헌책방 포토존이 됨과 동시에 헌책방과 함께 동고동락한 의자가 빼꼼히 나와 있다. ©방윤희

책과 함께 놓여있는 의자는 20년도 넘은 헌책방 주인의 것이다. 투박하게 테이프를 감아놓은 의자에 동아서점 사장님이 앉아 손님을 기다렸을 그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기다림의 의자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아니면 책과 사람을 이어주던 의자라고 해도 좋겠다.

헌책방에 돋보기안경은 빠질 수 없다. 가장 헌책방스러울 테니까. 문방사우를 연상케 하는 공씨책방의 붓, 벼루, 먹도 들여다볼 수 있다. 벼루의 모양이 독특한데, 이것 역시 사연을 안고 주인이 간직해왔을 것이다.
공씨책방에서 나온 사물들(비디오 테이프, 카세트 테이프, 붓·벼루·먹, 돋보기안경 등) ©방윤희
공씨책방에서 나온 사물들(비디오 테이프, 카세트 테이프, 붓·벼루·먹, 돋보기안경 등) ©방윤희

이번 전시의 또 다른 점은 서울책보고의 웹진 <e-책보고>의 ‘세렌디피티’ 칼럼에서 소개된 책 속의 사물들도 함께 전시되었다는 것이다. 헌책방에서 나온 각각의 사물에 엄청난 추억이 담겨져 있을 것만 같다. 사물의 주인이었던 사람들에게 오가며 있었을 이야기들 말이다.

‘세렌디피티(Serendipity)’의 사전적 의미는 ‘완전한 우연으로부터 중대한 발견이나 발명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이 전시는 헌 책으로 시작해 그 속에 간직해 온 물건들을 우연히 찾아냄으로써 중대한 발견이 되었다. 누군가 보관하지 않았다면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기에 그 시간마다 더욱 빛나는 순간이 된다.
동대문운동장 지명이 새겨진 동심서림의 이쑤시개 갑을 ‘책보고 반점’의 이쑤시개 갑으로 오마주했다. ©방윤희
동대문운동장 지명이 새겨진 동심서림의 이쑤시개 갑을 ‘책보고 반점’의 이쑤시개 갑으로 오마주했다. ©방윤희

‘책보고 반점’이라고 적힌 빨간 종이 상자들도 눈길을 끈다. ‘동대문운동장’ 지명이 새겨진 중국집 홍보물 이쑤시개 갑을 오마주해 ‘책보고 반점’의 이쑤시개 갑을 전시 기념품으로 제작한 것이다. 이 동대문운동장 지명은 1985년에 서울종합운동장으로 이름이 바뀌어 2009년부터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라고 불리고 있다. 지금은 사라진 역이자 건물 이름이지만 그 이름도 그 시절의 의미가 있다.
동아서점의 라디오 기능이 있는 구형 카세트 플레이어가 새록새록 하다. ©방윤희
동아서점의 라디오 기능이 있는 구형 카세트 플레이어가 새록새록 하다. ©방윤희

시선을 사로잡은 또 다른 물건은 고물 라디오다. 카세트테이프 뚜껑이 열려 있어 꺼내 보니 오성식의 ‘팝스 잉글리시 테이프’가 꽂혀있다. 한때 영어 공부를 한다며 썼던 워크맨이 떠오르는 걸 보면, 나도 옛날 사람인가 보다.
90년대 시대상을 알 수 있는 교육용 비디오테이프와 카세트테이프를 엿볼 수 있다. ©방윤희
90년대 시대상을 알 수 있는 교육용 비디오테이프와 카세트테이프를 엿볼 수 있다. ©방윤희
헌책에서 나온 것들을 모아두었다.(좌측부터 스테이플러, 카세트테이프, 붓) ©방윤희
헌책에서 나온 것들을 모아두었다.(좌측부터 스테이플러, 카세트테이프, 붓) ©방윤희

비디오테이프와 오래된 카세트테이프들도 있었다. 동화서점에서 판매하는 테이프들이다. ‘미피가 아프대요’, ‘동물을 그리자Ⅰ, Ⅱ’ 등은 90년대 당시 비디오테이프가 교육용으로 사용되었던 시대상을 보여준다.
누군가는 이런 걸 찾기도 한단다.(좌측부터 좌물쇠, 전라북도 도민증, 책갈피, 지하철 회수권) ©방윤희
누군가는 이런 걸 찾기도 한단다.(좌측부터 좌물쇠, 전라북도 도민증, 책갈피, 지하철 회수권) ©방윤희

대광서림에서는 일종의 보물들을 선보였다. 전라북도 도민증과 지하철 회수권, 자물쇠와 책갈피를 볼 수 있다. 자물쇠와 책갈피는 그렇다 치더라도 도민증(일정한 도(道) 안에 사는 주민임을 증명하기 위해 발행된 신분 증명서)과 회수권은 여기서만 볼 수 있는 유물이자 추억이다. 붓은 헌책에 쌓인 먼지를 탈탈 털어줬으리라 짐작해 본다.
좌측부터 ‘주디데이비스’ 화보와 ‘서태지와 아이들’ 화보 스크랩북  ©방윤희
좌측부터 ‘주디데이비스’ 화보와 ‘서태지와 아이들’ 화보 스크랩북 ©방윤희

좋아하는 스타의 브로마이드 하나씩은 집에 붙여둔 경험이 있을 것이다. 밍키서점 벽면에는 화보 브로마이드가 걸려있다. 옆에 먼지털이는 생뚱맞으면서도 나름 어울린다. 이곳은 헌책방에서 발견된 사물전이 펼쳐지는 전시회니까. 

그 밑으로 ‘서태지와 아이들’ 화보 스크랩 북도 만날 수 있다. 1993년 혜성처럼 등장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스크랩 북을 보자 필자도 HOT가 나온 잡지 책을 손수 모아 스크랩 북을 만들던 옛 기억이 스멀스멀 밀려온다. 스타를 생각하며 하나둘 모았을 정성이 느껴졌다. 이 자료들이야말로 근현대사의 한 획을 그었다고 볼 수 있겠다.
서울책보고에서 헌책과 함께 한 오래된 사물들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방윤희
서울책보고에서 헌책과 함께 한 오래된 사물들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방윤희

헌책에서 나온 사물전 관람을 마치며 돌아서는 길이 가볍지 만은 않았다. 헌책과 함께 한 사물들에 시간이라는 이야기로 누군가에게는 아련한 향수를, 또 다른이에게는 추억을 불러왔을 것이다. 주인 곁을 지키던 헌책 안의 사물들이 멈춰버린 시간을 뚫고 꿈틀대고 있다. ‘헌책방의 사물展’은 서울책보고에서 8월 28일까지다.

서울책보고 <헌책방의 사물展>

○ 주소 : 서울 송파구 오금로 1 서울책보고
○ 전시기간 : 5월 31일~8월 28일
○ 영업시간 : 화~금 11:00~20:00, 토·일 10:00~20:00(매주 월요일 휴무일)
홈페이지
○ 문의 : 02-6951-4979 (서울책보고)

시민기자 방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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