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 달빛야행! 낙산에서 '경성의 밤거리'로 떠나다

시민기자 이선미

발행일 2022.06.08. 11:07

수정일 2022.06.08. 15:49

조회 607

혜화문 건너 성곽으로 오르는 계단 입구에 ‘운명의 붉은실’이 시간여행의 시작을 알린다.ⓒ이선미
혜화문 건너 성곽으로 오르는 계단 입구에 ‘운명의 붉은실’이 시간여행의 시작을 알린다. ⓒ이선미

한양도성 낙산에 올랐다. ‘조선의 핫플레이스 경성으로 떠나는 시간여행’에 초대를 받았다. 한양 도성이 축조되자 사람들은 ‘순성(巡城)놀이’를 즐겼다. <한경지략(漢京識略)>은 “봄, 여름이면 한양 사람들은 짝을 지어 성 둘레를 한 바퀴 돌며 안팎의 경치를 구경한다”고 전하고 있다. 과거시험을 보러 상경한 이들이 순성을 하며 합격을 기원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때처럼 모든 것이 죽은 것 같던 겨울을 지나 봄이 무르익고 여름이 열리고 있다.

혜화문 바로 아래로 난 횡단보도를 건너니 성곽으로 오르는 계단 앞에 ‘운명의 붉은실’이 보였다. 사람들을 맺어준다는 월하노인의 붉은실이라고 했다. 초록색 계단에 매달린 등이 이미 불을 밝히고 있었다. 
성곽길에 접어들자 ‘모단보이, 모단걸’들이 보인다. 앞에 가는 두 인물은 오늘 공연의 출연자들이었다. ⓒ이선미
성곽길에 접어들자 ‘모단보이, 모단걸’들이 보인다. 앞에 가는 두 인물은 오늘 공연의 출연자들이었다. ⓒ이선미

성곽길에 접어들자 미남자 ‘모단보이’, 멋진 ‘모단걸’들이 아무렇지 않게 오갔다. 사실 너무 자연스럽고 예뻐서 기자도 개화기 의상을 입고 싶어졌다. 곳곳에 마련된 포토 포인트에서 100년 전 소품과 함께 사진도 찍고 싶었다. 어느 순간 제대로 시간여행자가 된 듯했다.
100년 전 소품으로 꾸민 공간들이 시간여행을 돕는다. ⓒ이선미
100년 전 소품으로 꾸민 공간들이 시간여행을 돕는다. ⓒ이선미
경성에서 온 듯한 외국인은 특별히 섭외된 분이라고 했다. 오가는 시민들에게 특별한 인증샷을 찍어주었다.ⓒ이선미
경성에서 온 듯한 외국인은 특별히 섭외된 분이라고. 오가는 시민들에게 특별한 인증샷을 찍어주었다. ⓒ이선미

‘카페369마실’은 ‘경성 카페’가 됐다. 이날 카페에서는 ‘스페샬쎄일’이 있었다. 메뉴는 ‘도성컵피와 돌과자’ 세트였다. 시민들이 줄을 설 만큼 인기만점이었다.
경성 카페 오늘의 ‘스페샬’ 가배 세트 ⓒ이선미
경성 카페 오늘의 ‘스페샬’ 가배 세트 ⓒ이선미

카페 아래 ‘369예술터’는 경성 시절의 소품들을 마련해놓은 ‘경성사진관’이 됐다. 시민들이 모자와 장갑, 안경 등 다양한 소품들을 바꿔 가며 세 컷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경성사진관도 줄이 길었다. 해가 지는데도 긴 줄이 줄어들지 않았다.ⓒ이선미
해가 지는데도 긴 줄이 줄어들지 않았던 '경성사진관' ⓒ이선미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관계자들이 준비를 하느라 분주했다. 천천히 낙산 성곽을 소요했다. 비가 내릴 것처럼 삽상한 바람이 불었다. 달빛야행은 암문까지 이어졌다. 
성곽마을 여행자센터를 지날 때 ‘월하노인’의 붉은실을 손목에 매주었다.ⓒ이선미
성곽마을 여행자센터를 지날 때 ‘월하노인’의 붉은실을 손목에 매주었다. ⓒ이선미
암문을 나와 만나는 북한산과 성곽길, 장수마을ⓒ이선미
암문을 나와 만나는 북한산과 성곽길, 장수마을 ⓒ이선미

오며가며 순라꾼들을 만났다. 한양도성지킴이들이 QR순라꾼이 되어 시민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함께 사진도 찍어주었다. 산책 나온 가족과 연인들은 곳곳에 놓인 소품에 관심을 보이고 함께 사진을 찍곤 했다.
한양도성지킴이들이 ‘QR순라꾼’이 되어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에 답해 주었다. ⓒ이선미
한양도성지킴이들이 ‘QR순라꾼’이 되어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에 답해 주었다. ⓒ이선미

드디어 호외가 도착했다. ‘경성을 뒤흔든 연애 사건이 일어났다!!’ 유명 극작가 김우진과 성악가 윤심덕이 시모노세키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연락선 위에서 몸을 던졌다고 한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음악이 흐르는 스토리극 ‘경성스캔들’이 경성카페 앞에서 진행됐다. ⓒ이선미
음악이 흐르는 스토리극 ‘경성스캔들’이 경성카페 앞에서 진행됐다. ⓒ이선미

해가 지고 어두워지자 카페 앞에서는 백 년 전 경성을 뒤집어놓은 세 가지 사랑 이야기가 펼쳐졌다. 아직도 회자되는 윤심덕과 김우진의 고통스러운 사랑이야기와 오늘의 길상사를 있게 한 대원각 주인 기생 자야와 시인 백석의 애틋한 사랑이 백 년 전 숨막히는 혼돈의 시대로 이끌었다. 유교적 사고방식에 쩍쩍 균열이 생기던 당시, ‘사랑’도 숱한 혼란과 모순 앞에 고됐을 것이다. 한성대 학생들의 풋풋한 감각으로 펼쳐지는 공연에 시민들이 금세 몰입했다.
한 시민이 누렇게 색바랜 종이 호외를 들여다보고 있다. ⓒ이선미
한 시민이 누렇게 색바랜 종이 호외를 들여다보고 있다. ⓒ이선미

윤심덕의 목소리인 듯 그의 ‘사의 찬미’가 깊어가는 초여름밤 낙산에 배어들었다. “광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 / 너의 가는 곳 그 어데이냐 /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 너는 무엇을 찾으러 가느냐…”

거창하지 않고 번잡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저 오다가다 만난 듯 자연스러운 축제였다. 물론 준비한 사람들이야 많은 수고를 했겠지만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는 편안하게 즐겼다. 다만 살짝 아쉬운 것도 있었다. 공연이 너무 비좁은 데서 진행돼서 그 슬프도록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온전히 만나기 힘들었다. 더욱이 어르신들은 소싯적 들은 윤심덕 이야기에 더 공감할 텐데 아쉬웠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카페 앞 마당. 조금 더 넓은 공간이었으면 좋았겠다 싶었다. ⓒ이선미
공연이 시작되기 전 카페 앞 마당. 조금 더 넓은 공간이었으면 좋았겠다 싶었다. ⓒ이선미

지금은 아무 자취도 찾을 수 없지만 한양도성 낙산 구간에는 백 년 전 포도밭이 있었다. 혜화문은 원래 있었던 자리에서 옮겨져 느닷없이 언덕에 복원됐다. ‘사의 찬미’ 가사처럼 모든 것이 사라진다. 모든 것이 달라져간다. 모든 것이 허무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라지기 때문에, 붙잡을 수 없기 때문에 이 순간은 더 애틋하게 귀하다. 
원래 있던 자리에서 옮겨져 복원된 한양도성 동쪽 작은 문, 혜화문에 불이 켜졌다. ⓒ이선미
원래 있던 자리에서 옮겨져 복원된 한양도성 동쪽 작은 문, 혜화문에 불이 켜졌다. ⓒ이선미

600년 동안 서울의 역사를 함께한 도성마을에 오늘 또 다른 이야기가 생겨난다. 서울시와 성곽마을, 그리고 그 마을에 깃들어 공부하는 한성대학교 학생들이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간다. 이곳에, 또 한양도성 다른 구간들에 어떤 이야기들이 만들어질까 자못 기대가 커진다. 

낙산 달빛야행은 끝났지만 한양도성은 여전히 아름답게 길을 열고 있다. 언제든 찾아가 교교한 달빛 아래 물들어보시라. 백 년 전 ‘조선견문록’을 쓴 언더우드 부인이 그랬듯이 황홀한 달빛에 젖어 우리 발 아래 고요히 머무는 오늘의 서울을 만나보는 일은 언제나 허락된다. 달빛 아래든 비가 내리든 바람 불고 눈발 날리는 날이든 모든 날이 도성 순성에 안성맞춤이다.

한양도성 낙산구간

○ 교통: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4번 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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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이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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