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꽃과 향기 꼭 기억하세요!" 어르신 위한 산림치유 프로그램

시민기자 윤혜숙

발행일 2021.10.27. 14:50

수정일 2021.10.27. 15:17

조회 976

한낮을 제외하곤 제법 차가운 바람이 분다. 청명한 이 가을, 실내에 머무르는 것은 가을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가까운 공원이나 숲을 찾아서 가을 정취를 만끽하고 싶다. 필자의 마음을 헤아리기라도 하듯 그런 기회가 주어졌다. 서울시 중부공원녹지사업소와 중구치매안심센터가 함께하는 ‘가을철 남산둘레길 산림(숲) 치유 프로그램에 동행했다. 
남산둘레길 숲 산책에 앞서 어르신들이 간단한 준비운동을 하고 있다.
남산둘레길 숲 산책에 앞서 어르신들이 간단한 준비운동을 하고 있다. ⓒ윤혜숙

코로나19 장기화로 어르신의 우울감 및 인지기능 저하가 심해지고 외부활동 제약에 따른 심리적인 고립감도 심화하고 있다. 이에 서울시 중부공원녹지사업소는 중구치매안심센터와 함께 일반 및 경도인지장애 어르신을 대상으로 가을철 남산둘레길 산림(숲) 치유 프로그램을 10월 한 달간 운영한다.

참여 대상자에 맞춰 숲 해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구성했는데, 필자는 경도인지장애(치매고위험군) 어르신을 대상으로 공원 내 산책과 함께 자연물을 활용해 인지 능력 향상을 돕는 기억이 속삭이는 숲 프로그램(4회)에 함께했다.  

평일 오전 10시 남산야외식물원 근처 공원이용지원센터를 방문했다. 김양숙 숲해설사(중구사업소 소속)와 어르신들이 둥글게 원을 그리고 서 있다. 해설사가 어르신들에게 “지금부터 남산둘레길을 걸을 겁니다. 걷다 쉬고 걷다 쉬면서 느릿느릿 걷습니다.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하세요”라면서 당부한다. 본격적인 산책에 앞서 간단한 준비운동을 시작했다.     
어르신이 허리에 지팡이를 대고 걸으니 허리가 덜 아프다고 한다.
어르신이 허리에 지팡이를 대고 걸으니 허리가 덜 아프다고 한다. ⓒ윤혜숙

해설사는 가슴에서 먼 부분부터 준비운동을 시작하는 게 좋다면서 발, 손, 머리, 고개, 허리 순으로 시범을 보여준다. 어르신들은 해설사가 하라는 대로 곧잘 따라서 신체 일부를 가볍게 움직인다. 특히 해설사는 허리 운동을 강조했다. 대부분 어르신은 허리가 구부정하거나 아프다. 기다란 지팡이를 두 팔로 허리 뒤에 끼우고, 허리를 좌우로 돌린다. 이렇게 운동을 꾸준히 하다 보면 아픈 곳을 자극해 허리가 덜 아프다고 한다. 집에서 수시로 허리 운동을 하면 좋다고 강조했다.

평지를 걷다가 곧 오르막길이 나타난다. 오르막길에서 어르신들은 일렬로 걷는다. 어르신들은 지팡이에 의지해서 걸으니 한결 걷기가 수월하다고 한다. 허리에 지팡이를 대고 걷는 어르신은 해설사의 말대로 허리가 덜 아프다고 한다. 
 어르신들이 잠시 벤치에 앉아서 휴식하며 남산숲의 가을 정취를 즐기고 있다.
어르신들이 잠시 벤치에 앉아서 휴식하며 남산숲의 가을 정취를 즐기고 있다. ⓒ윤혜숙

어르신들이 잠시 앉아서 쉬는 시간을 가진다. 해설사는 어르신들에게 그동안 고생한 눈에 잠깐 휴식을 주자면서 두 눈을 감았다가 떠보라고 한다. 필자도 어르신을 따라 눈을 감았다가 떴다. 해설사의 말대로 눈이 훨씬 밝아지는 것 같다. 해설사는 “지금은 여러분이 자연을 찾아갈 수 없어요. 대신 여기서 자연적인 풍경, 향기, 소리를 찾아볼까요?”라고 말한다.

어르신들은 코를 벌름거리면서 바람결에 실린 향기를 맡아본다. 남산숲에 있는 나무, 꽃, 열매, 흙 등의 냄새가 난다. 해설사는 다음 주에 이곳에 오면 지금 이 풍경은 사라질 거라고 한다. “가을이 짧아요. 그러니 지금 이 순간 가을의 정취를 마음껏 즐기셔야겠죠?”라고 말하니 어르신들은 숲을 주시하면서 숲의 풍경을 두 눈에 담아내고 있다. 
꽃밭이 보이자 어르신들이 꽃을 구경하며 감탄하고 있다.
꽃밭이 보이자 어르신들이 꽃을 구경하며 감탄하고 있다. ⓒ윤혜숙

다시 일어나 거닐 시간이다. 해설사는 어르신들에게 앉았다 일어날 때 그냥 일어나지 말라고 당부한다. “일어날 때엔 꼭 다리에게 신호를 보내주세요. 발부터 시작해서 다리, 무릎을 회전하면서 천천히 일어나세요”라고 말한다. 어르신들은 해설사의 말을 듣자 일어나려다 다시 주저앉으면서 천천히 발을 움직여준다. 

꽃밭이 가까워졌다. 어르신들은 꽃을 바라보면서 감탄을 연발한다. 해설사가 “어떤 꽃이 가장 마음에 드세요? 지팡이로 가리켜보세요”라고 하니 어르신들이 각자 마음에 드는 꽃을 지팡이로 가리킨다. 그러니 해설사가 “그럼 이 꽃은 어르신 꽃이에요”라고 말하자 활짝 웃는다.

어르신 중에서 한 분이 “나는 40대에 너무 바빠서 꽃을 제대로 볼 시간이 없었어요”라고 말한다. 해설사는 “아름다운 꽃을 보니 기분 좋으시죠? 그 기분으로 오늘을 사세요. 여기를 떠나더라도 꽃의 색깔과 그 느낌을 마음 한구석에 쌓아두고 잊으시면 안 돼요”라고 말하니 어르신들이 “네”라고 대답한다.
어르신들이 실뜨기 놀이를 하면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듯하다.
어르신들이 실뜨기 놀이를 하면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듯하다. ⓒ윤혜숙

어르신들은 걸으면서 주위의 풍경에 자꾸만 가던 발길을 멈추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낙엽이 많이 쌓여 있는 곳에 이르자 해설사는 어르신들에게 앉으라고 했다. “요즘 오징어게임이 인기라고 해요. 그래서 어르신들과 추억의 놀이를 해볼까 해요”라면서 실뜨기 놀이를 제안했다.

2인 1조가 되어 어르신들은 손가락에 실을 걸고 실뜨기 놀이를 시작했다. 놀이를 하는 동안 어르신들은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듯하다. 실뜨기 놀이에서 이긴 어르신이 웃음을 띠고 "내가 어릴 적에 실뜨기 놀이 많이 했지"라고 우승 소감을 말한다. 해설사가 어르신들에게 다음엔 공기 놀이를 준비하겠다고 하니 어르신들이 박수를 치면서 좋아한다.
어르신이 땅바닥에 떨어진 낙엽들을 줍고 있다.
어르신이 땅바닥에 떨어진 낙엽들을 줍고 있다. ⓒ윤혜숙

이어서 2인 1조로 가위바위보를 한 뒤 이긴 사람이 눈을 감는다. 진 사람은 눈을 뜬 채 이긴 사람의 손을 잡고 향기를 찾아서 걷는다.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이 소복이 쌓여 있다. 해설사가 어르신들에게 “이번엔 여러분이 놓치거나 잃어버렸던 것을 주울 거에요. 낙엽들을 주워 보세요”라고 하니 어르신들이 이곳 저곳에 떨어진 낙엽들을 줍는다.

어르신이 각자 주워온 낙엽들을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는다. 해설사가 낙엽을 들고 냄새를 맡으라고 한다. 그런데 푸른 잎에선 향기가 안 난다. 잎을 으깨어서 맡아보니 비로소 향이 난다. 한 어르신이 “빵 냄새가 나요”라고 하니 해설사가 “자기가 좋아하는 향이 날 거예요”라고 말한다. 해설사는 “푸른 잎은 향기가 나지 않아요. 푸른 잎이 말라서 낙엽이 되면 주위와 어울려서 향기가 납니다”라고 말한다. 마치 제 할 일을 마치고 땅에 떨어진 낙엽이 어르신들의 자화상은 아닐까. 
어르신들이 테이블에 기대어 해설사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
어르신들이 테이블에 기대어 해설사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 ⓒ윤혜숙

해설사는 어르신들에게 “기대어 사는 삶은 편하죠. 여러분의 삶도 그렇습니다”라면서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은 부끄럽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어르신들은 “집에 있지 않고 나오길 잘했다”라고 말한다. 코로나19 이전엔 집에서 남산이 가까워 산책 삼아 이 부근을 자주 걸었던 어르신도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론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또래 어르신들과 남산둘레길 산책에 나서니 그동안 답답했던 마음이 후련해졌다고 안도했다. 동행한 필자도 그 기분이 어떨지 공감할 수 있었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어르신들이 남산에서 가을의 풍경과 정취를 즐겼으니 당분간 이 기분으로 일상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외부활동이 쉽지 않은 어르신과 치매 어르신을 위한 맞춤형 산림치유 프로그램이 더욱 많아지길 기대해본다.

중구치매안심센터

○ 주소: 서울 중구 청구로8길 22 중구치매안심센터
○ 가는법 : 청구역 1번 출구에서 150m
홈페이지
○ 문의 : 02-2238-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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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윤혜숙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서울시 구석구석의 다양한 소식을 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