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드라마! 여자 펜싱 사브르 동메달의 주인공을 만나다

시민기자 박은영

발행일 2021.08.20. 15:46

수정일 2023.08.02. 18:53

조회 1,983

집념이 기적을 만들다

15-25, 10점이 뒤진 5라운드. 윤지수 선수가 상대보다 빠른 잔발로 공격, 무려 11점을 득점한다. 기세를 몰아 8라운드를 40-38로 마쳤다. 뒤이어 9라운드에 나선 김지연 선수가 45점에 먼저 도달하며 이탈리아 대표팀을 꺾고 우리나라 여자 펜싱 올림픽 최초로 사브르 단체전 동메달을 따낸다. 45-42 짜릿한 승부였다. 선수들의 집념과 노련한 경기력이 기적의 드라마를 만들었다. 

한계를 극복한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 치열한 훈련으로 아킬레스건이 파열되고 무릎 수술을 감행했지만, 그들이 선택한 것은 포기가 아닌 도전이었다. 지난 13일 화상 인터뷰를 통해 그 영광의 주인공 김지연, 윤지수 선수를 만나봤다.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은 길고 힘겨운 시간이다. 
어떤 날은 힘들고 어떤 날은 더 힘든 날들이 계속된다. 
그래도 참고 버텼다. 우리는 펜싱 국가대표니까. 

5년 간 올림픽을 준비했다. 윤지수 선수는 무릎 상태가 안 좋아져 수술 후 재활하는 복귀 과정과 코로나로 인해 7~8주 이상 선수촌에서 보냈다. 그래도 올림픽만 보고 올림픽만 생각하면서 버텨왔다.

여자 사브르 대표 팀의 맏언니 김지연 선수는 올림픽을 5개월 앞두고 훈련 중 아킬레스건이 파열돼 수술을 받았다. 올림픽 출전권을 얻기도 전에 찾아온 위기였다. 빠른 재활에 나선 김지연 선수는 국가대표로 선발 됐고, 그 사이 올림픽이 1년 미뤄져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김지연 : 의사 선생님이 올림픽 출전은 불가능하다고 하셨어요. 수술 후 공격적인 재활을 시작했고, 후유증을 계속 안고 올림픽을 준비하느라 좀 힘들었지만, 올림픽을 뛰겠다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에 잘 극복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윤지수 선수가 동메달 결정전에서 이탈리아 선수와 경기를 치르고 있다.  ⓒ연합뉴스
윤지수 선수가 동메달 결정전에서 이탈리아 선수와 경기를 치르고 있다. ⓒ연합뉴스

동메달을 따내기 위한 선수들의 노력은 필사적이었다. 이탈리아와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끈질긴 추격 끝에 역전승을 기록한 순간은 특별하게 기억될 것이다.

김지연 : 5년 동안 올림픽을 준비해 온 과정과 고생했던 게 생각나서 그냥 눈물만 났던 것 같아요.

윤지수 : 그 순간 기쁨을 느끼기보다 중압감을 이겨냈다는 사실에 눈물이 나왔어요.

단체전은 선수 3명이 돌아가며 경기하고, 1명의 선수는 후보로 교체 투입이 가능하다. 9번의 라운드를 펼쳐 45점을 먼저 득점하거나 경기가 끝난 후 가장 높은 점수의 팀이 승리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승부를 알 수 없는 펜싱 단체전에서 중요한 것은 팀워크다.
김지연 선수가 동메달 결정전에서 승리한 뒤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지연 선수가 동메달 결정전에서 승리한 뒤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지연 : 우선 단합된 팀워크와 지고 있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쉽게 포인트를 주지 않는 부분들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팀워크를 위해서 선수들끼리 긍정적인 얘기를 많이 해줬고, 서로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잡아주기도 하면서 힘을 실어주었죠.

윤지수 : 단체전은 단합이 중요하고, 지고 있더라도 언제든지 분위기를 뺏어 올 수 있을 거라는 긍정적인 생각과 포기하지 않는 근성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은 길고 힘겨운 시간이다. 어떤 날은 힘들고 어떤 날은 더 힘든 날들이 계속된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심적으로 힘들고 괴로울 때마다 선수들은 스포츠 심리 전문가와 상담하며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을 다독였다.
펜싱 여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금 은 동을 차지한 선수들이 함께 모여 자축하고 있다. ⓒ연합뉴스
펜싱 여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금 은 동을 차지한 선수들이 함께 모여 자축하고 있다. ⓒ연합뉴스

펜싱 국가대표 윤지수 선수의 아버지는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에이스이자 롯데 2군의 윤학길 전 감독이다. 운동과 친숙한 환경에게 자랐을 윤지수 선수가 펜싱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중학교의 ‘펜싱부’였다. 아버지의 지지와 윤지수 선수의 노력으로 이 자리까지 왔다.

김지연 선수의 남편이자 게임 캐스터인 이동진 씨의 외조는 특별했다. 결혼 후 아내와 함께 하기 위해 펜싱을 배웠고, 아마추어 대회에 출전한 경력도 있다. 뿐만 아니다. 김지연 선수의 부상, 재활의 기록 영상도 남겼던 이동진 씨는 아내의 동메달 수상 소식에 더 많은 울음을 보였다고.

김지연 : 항상 옆에서 힘이 돼 주고 잘 챙겨줬어요. 제가 아킬레스가 끊어졌을 때도 제일 힘이 많이 됐고, 어떨 때는 좀 선생님 같기도 하죠. 제가 멘탈이 좀 약해져 있을 때 강하게 바로잡아 주는 사람 역시 남편이었습니다.
지난 1997년 8월 24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윤학길 전 감독의 은퇴식 모습.  어린시절 윤지수 선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윤학길
지난 1997년 8월 24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윤학길 전 감독의 은퇴식 모습. 어린시절 윤지수 선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윤학길

두 선수가 생각하는 펜싱의 매력은 뭘까 궁금했다.

김지연 : 펜싱은 끝나는 순간까지 마음을 늦출 수 없거든요. 그런 스릴감과 짜릿함이 펜싱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윤지수 : 펜싱은 몸의 속도도 중요하지만, 두뇌 싸움이 계속되는 경기입니다. 거리를 유지하면서 공격과 수비 전략을 짜야 하죠. 머리를 계속 쓰면서도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게 펜싱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투구와 새하얀 펜싱복은 아직도 일부 사람들에게 낯설 수 있다. 한국 펜싱의 위상이 높아졌지만 쉽지 않은 종목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관전 포인트를 물었더니 윤지수 선수는 누가 먼저 공격 했는지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도쿄올림픽 여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역전승을 기록한 자랑스러운 얼굴들 ⓒ연합뉴스
도쿄올림픽 여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역전승을 기록한 자랑스러운 얼굴들ⓒ연합뉴스

코로나19 시국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도쿄올림픽. 선수촌 생활을 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훈련장과 숙소만 왔다갔다 했다. 너무 답답하고 긴장되면 자전거를 빌려 선수촌 한 바퀴씩 돌며 기분전환을 했다. 경기도 무관중으로 치러졌다. 국제경기 경력이 많은 두 선수에게 도쿄올림픽의 분위기는 이전과는 확실히 달랐다.

김지연 : 무관중이라 올림픽 느낌이 나지 않았어요. 올림픽이 맞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반대로 그만큼 게임에 집중하면서 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윤지수 : 코로나 때문에 올림픽이 미뤄졌고, 또 올림픽 시작하기 전까지 올림픽 개최 여부에 대한 말들이 많았는데, 정해지지 않은 채 훈련을 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도쿄올림픽 펜싱 여자 사브르 단체전 시상식 후 포즈를 취하는 수상자들ⓒ연합뉴스
도쿄올림픽 펜싱 여자 사브르 단체 시상식 후 포즈를 취하는 수상자들ⓒ연합뉴스

‘2012년 런던올림픽 사브르 개인전 금메달’, ‘2014년 2018년 아시안게임 단체 금메달’, ‘2017년 세계선수권 단체 은메달’ 역대 김지연의 선수의 기록이다. 이번 동메달은 한국 여자 사브르를 이끌어온 김지연 선수의 두 번째 올림픽 메달이자, 여자 사브르 사상 첫 단체전 메달이다. 아울러, 김지연 선수에게 마지막 올림픽일 수 있기에 메달의 의미는 더 크게 다가왔다.

김지연 : 저에게는 마지막 올림픽이었고, 1년이 미뤄져서 5년을 준비했었기 때문에 단체전 메달이 더 간절했었던 것 같아요. 그만큼 절실했던 올림픽 단체전에서 메달을 딸 수 있어서 후배들한테 고마운 마음입니다.

이제 선수들의 목표는 내년 아시안 게임이다. 당장 다음 주부터 코로나로 연기된 국내 경기가 시작된다. 보통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의 이어지는 단체 훈련이 끝나면 개인훈련으로 이어진다. 김지수, 윤지수 선수의 도전은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
공항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낸 펜싱 대표팀 선수들 ⓒ연합뉴스
공항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낸 펜싱 대표팀 선수들 ⓒ연합뉴스

김지연, 윤지수 선수는 서울시청 직장운동경기부 소속이다. 이들 외에도 사격-진종오, 체조-김한솔, 펜싱-전희숙, 태권도-이다빈 선수가 서울시청 소속으로 이번 도쿄올림픽에 참가했다. 이 중 태권도의 이다빈 선수가 은메달을, 펜싱 단체전의 김지연·윤지수 선수가 동메달을 획득했다. 하지만, 모든 선수가 온 힘을 다해 노력했고 메달보다 값진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번 2020 도쿄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펜싱 강국임을 입증했다. 이는 선수들의 성실함과 근성 덕분이었을 것이다. 녹취를 풀고 사진을 정리하며 클로즈업 된 선수들의 모습을 다시 봤다. 그 어려운 걸 해내는 선수들이 무척이나 크고 강해 보였다. 

시민기자 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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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도쿄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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