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 발차기', '엄지척'…태권도 이다빈의 올림픽 도전기

시민기자 이성희

발행일 2021.08.19. 17:05

수정일 2021.08.20. 19:09

조회 3,348

태권소녀의 첫 올림픽 도전기

경기 종료까지 단 1초. 모두 체념하고 있던 그 순간 태권도의 이다빈 선수는 짜릿한 ‘역전 발차기’로 도쿄올림픽 준결승전의 승기를 거머쥐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에 많은 이들이 진한 감동을 느꼈다. 

지난 13일, 2020 도쿄올림픽에서 태권도 여자 +67kg급 은메달을 획득한 이다빈 선수를 온라인에서 만났다. 올림픽 이후 간만의 달콤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이다빈 선수에게 인기를 체감하는지 묻자 아직 잘 모르겠다며 수줍게 웃었다.

이다빈 선수는 서울시 직장운동경기부 소속이다. 서울시 직장운동경기부는 8월 현재 21개 종목 22개팀 179명의 지도자와 선수가 소속되어 있다. 이달 안에 스키팀도 창단될 예정이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태권도와 펜싱에서 은메달, 동메달을 획득했다.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후회 없는 준비를 하고, 후회  없는 결과를 만들자.

은메달을 딴 그 날의 훈련일지에는...

이다빈 선수는 올해 초 발목 부상으로 1월, 4월 두 차례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현재는 호전되어 간단히 진료만 받고 있으며 잠시 휴식기를 가진 뒤 훈련에 돌입할 예정이다. 하지만 예상보다 부상 회복 기간이 길어졌었고, 올림픽 출전이 어려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었다.

허나 걱정도 잠시,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후회 없는 준비를 하고, 후회 없는 결과를 만들자” 그는 선수생활을 하며 매일 작성하고 있는 훈련일지에 불안한 감정을 솔직히 풀어낸다고 한다. 감정을 정리하면 말미에는 자연스레 해결방법도 쓸 수 있다고.

“은메달 딴 날의 훈련일지에는 스스로에게 정말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썼습니다. 마음고생 많이 했는데 잘 견뎌줘서 고맙다. 지금의 영광은 잠시 뒤로 두고, 다음 올림픽까지 마음을 다 잡아서 열심히 준비해보자. 제 입으로 직접 말하니 조금 부끄럽네요. 하하.”
준결승전에서 역전승을 이루어 낸 뒤 환호하는 이다빈 선수. ©연합뉴스
준결승전에서 역전승을 이루어 낸 뒤 환호하는 이다빈 선수. ©연합뉴스

“처음 스파링 했을 때는 쌍코피 터지고 울고 그랬죠”

이다빈 선수가 초등학교 시절 여러 운동을 접해보며 가장 흥미를 느낀 종목은 축구였다. 축구대회 수상을 하며 선수의 꿈까지 키웠지만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혔다. 그러던 중 친한 친구가 태권도 선수를 준비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다빈 선수도 함께 도전을 시작했다.

“태권도를 시작했을 때요? 처음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다른 사람과 겨루어 볼 실력도 안 됐거든요. 매일 벽 잡고 혼자 기본기만 연습하고…. 시작할 때는 별로 재미가 없었어요. 처음 스파링(겨루기) 했을 때는 쌍코피 터지고 울고 그랬죠. 시합에 나가도 예선 탈락하거나 첫 판에서 지거나.”
세르비아 만디치 선수와의 결승전에서 쭉 뻗은 발차기 실력을 보인 이다빈 선수.
세르비아 만디치 선수와의 결승전에서 쭉 뻗은 발차기 실력을 보인 이다빈 선수. ©연합뉴스

중학교 2학년 무렵, 전국종별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따고 난 뒤 이다빈 선수의 세상이 점차 넓어지기 시작했다. 

“다음 대회에서도 메달 딸 수 있을까? 이런 기대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욕심이 생기고, 더 노력하게 되면서 태권도에 진심이 됐습니다.”

태권도 선수로서 본인의 매력을 묻자 그는 상대에게 파고들어 격한 공방전을 벌이는 경기 스타일을 꼽았다. 이다빈 선수의 시합이 아주 재밌었다며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면 무척이나 기분이 좋다고 한다.
아쉽게도 결승전에서 패배했지만, 이다빈 선수는 밝은 표정을 잃지 않았다.
아쉽게도 결승전에서 패배했지만, 이다빈 선수는 밝은 표정을 잃지 않았다. ©연합뉴스
결승에서 패한 이다빈 선수가 인사하는 승자 세르비아 만디치 선수에게 '엄지척' 하는 순간
결승에서 패한 이다빈 선수가 인사하는 승자 세르비아 만디치 선수에게 '엄지척' 하는 순간©연합뉴스

승자에게 ‘엄지 척’...“고생했을 거 알기에 축하해주고 싶었어요”

이다빈 선수는 아시안게임과 세계 선수권 대회 메달리스트지만 올림픽 출전은 처음이다. 긴 시간 동안 준비한 것들을 모두 보여줄 수 있을까, 지금 잘 하고 있는 것이 맞을까 걱정이 많아졌을 때는 김소희 선수(리우올림픽 태권도 여자 49kg급 금메달리스트)에게 연락해 조언을 얻기도 했다고. 

“가장 떨렸을 때는 준결승전 입장 전에 장비를 착용하고 기다릴 때였어요. 상대 선수인 영국 비안카 워크던 선수가 세계 랭킹 1위이기도 했고, 저와의 전적이 2:2였기 때문에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겠더라고요.”

이다빈 선수는 경기 중 제스처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준결승전 경기에서 도복 안으로 물을 흘려 넣는 장면, 결승전 경기에서 승자에게 엄지척 해주는 모습이 많은 이들의 마음에 남았다. 

“물 붓는 건 긴장을 좀 해소하려고 하는 거고요. 차가운 물이 닿으면 순간적으로 진정이 돼서 호흡이 돌아오거든요. 결승전에서 세르비아 선수에게 ‘엄지 척’ 했던 건 축하해주려는 의도였습니다. 물론 이길 각오로 그 자리에 서긴 하지만, 올림픽 무대에 서기까지 다들 간절한 마음으로 준비했으니까요.”
태권도 국가대표팀과 함께 귀국하는 이다빈 선수.
태권도 국가대표팀과 함께 귀국하는 이다빈 선수. ©연합뉴스

최선을 다해도 이루지 못할 수 있다, 그럼에도 후회는 남기지 말자

지금의 이다빈 선수를 만든 건 고등학교 시절 국가대표라는 꿈을 심어주고 가꿔준 김민호 코치였다. 김민호 코치와 합을 맞추면서 선수로서 많이 성장했다. 

“고등학교 때는 코치님께 훈련일지를 제출했었어요. 언젠가 코치님이 달아주신 한 코멘트가 있습니다. ‘다빈이가 최고의 선수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선수가 됐으면 좋겠다.’ 그걸 떠올리면서 항상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선수가 되어야겠다고 느껴요.” 

이다빈 선수는 이제 많은 이들의 꿈이 되었다. 경기를 보면서 마음을 다잡았다는 이들도 생겼다. 그래서 주어진 모든 시간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다.  

“최선을 다해도 이루지 못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후회는 남기지 말자고 생각해요. 이번 올림픽을 통해 하루하루 성실히 임하는 자세의 중요함을 많이 느꼈거든요. 지금 이렇게 쉬는 시간조차 다시 돌아오지 않아요.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이다빈 선수가 시상대에서 은빛 희망을 손에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하루하루 착실하게 노력한 결실이 은빛 희망으로 다가왔을 때. ©연합뉴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매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오랜 잔소리가 있다. 진부하게만 느껴졌던 그 말이,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는 이다빈 선수의 목소리를 통해서는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다빈 선수는 10월 예정된 전국체전에 서울시 대표로 출전한다. 최선을 다하는 최고의 선수가 보여 줄 금빛 발차기가 기대된다.

시민기자 이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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