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일러家의 추억과 애정이 담긴 ‘딜쿠샤’에 가다

시민기자 정유리

발행일 2021.08.20. 09:05

수정일 2021.08.20. 18:11

조회 313

3·1운동을 세계에 알린 미 특파원의 서양식 2층 가옥
테일러 가문이 살던 종로 행촌동의 딜쿠샤 정문, 고풍스러운 서양식 2층 벽돌집이다.
테일러 가문이 살던 종로 행촌동의 딜쿠샤 정문, 고풍스러운 서양식 2층 벽돌집이다. ⓒ정유리

1919년 3·1운동 독립선언서를 외신으로 처음 보도한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 그는 외국인이었지만 우리나라를 사랑해 독립운동에 힘을 보탰다. 서울 종로 행촌동에 지난 3월 1일 개관한 딜쿠샤는 테일러와 그의 아내가 살던 곳으로, 1924년 완공된 고풍스러운 서양식 2층 가옥이다. 딜쿠샤는 페르시아어로 ‘기쁜 마음’을 뜻한다.

딜쿠샤는 월초에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원하는 시간대에 관람하기 어려울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매달 서울시공공서비스예약(https://yeyak.seoul.go.kr/web/main.do) 사이트에서 접수를 받고 있으며, 1일 4회 회차 당 1시간씩 최대 20명이 관람할 수 있다. 현장예매는 당일 오전 9시 30분부터 가능하지만, 온라인 예약 인원에 따라 사정이 달라질 수도 있다.

종로구 주택가 사이에 난 골목길을 따라 걷다보니 고풍스러운 벽돌집이 보인다. 현대에 와서 주변에 서양식 건물이 많이 생겼지만, 딜쿠샤만의 멋 덕분인지 뚜렷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서구의 문물이 낯설었을 조상들의 눈엔 이곳이 얼마나 신비스러웠을까? 서양식 건물이지만 한국적인 면모도 있다. 건설할 당시 우리나라 기후와 풍경에 맞추어 집을 남향으로 배치했고 인왕산을 등지게 했다. 집 앞엔 커다란 은행나무가 자라고 있고, 그 아래엔 임진왜란 행주대첩에서 승리를 거둔 권율장군 집터가 있다.
손님을 대접하고 가족이 식사를 하던 1층 거실. 원목 가구, 벽난로, 소파가 있어 분위기가 따뜻하다.
손님을 대접하고 가족이 식사를 하던 1층 거실. 원목 가구, 벽난로, 소파가 있어 분위기가 따뜻하다. ⓒ정유리
20세기 초반 우리나라의 풍경을 담은 사진과 그림이 벽에 걸려있다.
20세기 초반 우리나라의 풍경을 담은 사진과 그림이 벽에 걸려있다. ⓒ정유리

안내데스크가 있는 현관을 지나면 가장 먼저 1층 거실이 보인다. 이곳에서 테일러 부부는 지인들을 초대해 대접하고 벽난로 앞에서 겨울을 보냈다. 벽난로가 거실 한가운데에 자리했고 주위에 의자, 테이블, 괘종시계 등 소품이 자리잡고 있다. 사진 자료를 바탕으로 내부를 재현해 냈다고 한다. 인테리어 재현과정 영상을 보면 꼼꼼한 수작업으로 가구 하나하나를 새것처럼 복원했음을 알 수 있다.

방마다 사진자료, 유물, 옛날 서류 등이 전시돼 있다. 1층에 있는 방들을 둘러보면 테일러 부부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그중 그림과 사진이 많이 놓인 한 공간에서는 그들이 한국의 무엇에 매력을 느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금강산 풍경 그림, 한복을 입은 인물들의 초상화 등 우리나라의 자연과 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서양과 동양의 멋이 조화를 이룬 2층 거실, 목재 가구, 벽난로, 장식품, 소파 등이 놓여있다.
서양과 동양의 멋이 조화를 이룬 2층 거실, 목재 가구, 벽난로, 장식품, 소파 등이 놓여있다. ⓒ정유리

2층으로 올라가면 또 다른 거실이 나온다. 고풍스러운 가구와 수집품들로 장식한 이곳은 테일러 부부가 여가시간을 보내던 곳이다. 1층 거실과 마찬가지로 중앙에 놓인 벽난로를 둘러앉을 수 있게 해 식구들과 따뜻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서양식 가정집이지만 우리나라 전통 병풍, 도자기 등이 놓여 동서양의 조화가 이색적이다.

2층 방에선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에 기여한 테일러의 행보를 만날 수 있다. 테일러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에 관련된 기사를 작성해온 미 특파원이었다.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아내가 아이를 출산하고 우여곡절 끝에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은 그는 3·1독립운동에 관한 기사를 작성했다. 그는 이 특종을 동생인 빌 테일러를 통해 일본 도쿄 지국으로 보냈고, 1919년 뉴욕타임즈에 기사가 실리며 3·1운동의 배경과 우리나라의 독립 의지가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딜쿠샤의 복원 과정을 소개하는 방. 큰 창문이 뚫려 있어 햇빛이 잘 들어온다.
딜쿠샤의 복원 과정을 소개하는 방. 큰 창문이 뚫려 있어 햇빛이 잘 들어온다. ⓒ정유리

영영 잊혀질 뻔했던 딜쿠샤는 어떻게 복원된 것일까? 2006년 정부와 서울시는 독립운동 유적지이자 근대문화 유산인 딜쿠샤 보존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무단거주자 점유와 건물 안전 문제 등으로 오랜 시간 복원은 지지부진했다. 마침내 딜쿠샤는 2017년에 등록문화재 제687호로 등록됐고, 2018년에 이곳에 살던 마지막 거주자가 이주하면서 본격적인 복원 공사가 시작되었다. 

건축학적으로 딜쿠샤 건물의 ‘공동벽 쌓기’ 기법도 주목받았다. 공동벽 쌓기는 벽돌로 벽을 세울 때 두 개를 세워 그 사이에 빈 공간을 두는 방식인데, 벽 사이에 생긴 공간 덕분에 단열, 보습, 방습 등의 효과를 볼 수 있다. 통상적으로 벽 두 겹을 세우는데, 딜쿠샤는 세 겹이 있어 더욱 안정적이라고 한다.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 역사를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는 딜쿠샤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독립운동의 의미를 다시금 깨우치게 한다. ‘역사는 어렵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평범한 주택가에 자리한 역사적인 공간 딜쿠샤를 둘러보다보면 우리 일상 가까이에 역사가 숨쉬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 딜쿠샤 전시관

○ 위치 : 서울 종로구 사직로 2길 17
○ 운영시간 : 화~일요일 09:00~18:00, 매주 월요일 휴무
○ 가는법 : 5호선 서대문역 4번 출구, 3호선 독립문역 3번 출구 이용, 도보 10~15분
○ 관람시간 : 일 4회(10:00, 13:30, 15:00, 16:30) 1시간 관람, 회차별 최대 20명
○ 관람방식 : 사전예약 후 자유관람제
- 서울시공공서비스예약(https://yeyak.seoul.go.kr) 사전예약 10명, 현장접수 10명
- 거리두기로 인해 전시해설 미운영, 오디오 가이드로 대체
○ 입장료 : 무료
○ 문의 : 070-4126-8853

시민기자 정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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