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터가 교실, 공원이 운동장" 생태친화 어린이집에 가보니...

시민기자 윤혜숙

발행일 2021.07.09. 14:55

수정일 2021.09.03. 13:54

조회 4,815

서울시 생태친화 어린이집 서초구립잠원햇살어린이집 방문기
어린이집 건너편 너른 공터는 아이들의 무한한 놀이터다.
어린이집 건너편 너른 공터는 아이들의 무한한 놀이터다. ⓒ윤혜숙

서초구 잠원역 인근 고층 아파트 사이에 아담한 건물이 있다. 서초구립잠원햇살어린이집이다. 매일 오전 10시 반에 교사의 인솔하에 아이들이 바깥 놀이터로 향한다. 목적지는 어린이집 건너편에 있는 너른 공터다. 공터에는 커다란 나무 그늘이 있다. 바닥은 흙으로 되어 있는 운동장이다. 공터에 도착한 아이들은 망설임 없이 흙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서 흙을 만지면서 논다. 아이들에게 흙바닥은 놀이터이자 장난감이다. 아이들은 공터에서 노느라 옷과 신발이 흙투성이가 되어도 개의치 않는다. 과연 처음부터 그랬을까? 
아이들이 공원에서 뛰어다니며 신나게 놀고 있다
아이들이 공원에서 뛰어다니며 신나게 놀고 있다 ⓒ윤혜숙

처음 공터에 가서 흙을 밟을 때만 해도 불안해 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신발에 흙이 묻을까 봐 조심스레 발걸음을 내딛던 아이들이 하루 이틀 지나면서 서서히 달라져 갔다. 이제는 아이들에게 흙바닥은 친숙한 공간이다. 부모도 흙투성이가 되어 하원하는 아이를 보면서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다. 부모의 암묵적 동의하에 교사는 아이들을 데리고 매일 오전에 공터로 나간다.
교사의 인솔하에 아이들이 연못의 물고기를 보고 있다.
교사의 인솔하에 아이들이 연못의 물고기를 보고 있다. ⓒ윤혜숙

필자가 방문한 날은 공터 한쪽에서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먼지가 많이 발생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린이집에선 아이들을 데리고 공터 대신 근린공원으로 갔다. 아파트 사이에 있는 작은 공원이지만, 아이들이 뛰어놀기에는 충분한 공간이다.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주황색 조끼를 입고 있는 아이들이 각자 놀이에 한창이다. 교사는 아이들의 놀이에 개입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본다. 아이들은 주도적으로 놀이를 하면서 창의력이 발달한다. 어린이집을 벗어난 바깥은 비정형화, 비구조화된 환경이다. 그러다 아이들이 지루해 하면 놀이를 확장할 수 있도록 말을 걸면서 관심을 유도한다. 아이들의 표정만 봐도 신나고 즐거워 보인다. 
아이가 바닥을 내려다보며 개미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다.
아이가 바닥을 내려다보며 개미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다. ⓒ윤혜숙

자연에서 노는 게 아이들에게 주어진 어린이집에서의 오전 일과다. 비가 오는 날도 개의치 않고 나간다. 교실에 우비를 비치해두고 있다. 비가 온다고 실내에서 대체활동을 하지 않는다. 우비를 입은 아이들이 빗물이 고인 곳에서 첨벙거리면서 논다. 흙바닥에 그림을 그리면서 비가 내릴 때 훨씬 그림이 진하게 그려진다는 것을 인지한다. 아이들은 진흙을 만지면서 놀다가 스스로 물웅덩이에 손을 씻기도 한다.

교사의 관찰 아래 모든 아이를 바깥에서 뛰어놀도록 하는 어린이집의 정체가 궁금했다. 바로 서울시에서 지정한 ‘생태친화 어린이집’이었다. ‘생태친화 어린이집’은 원장과 교사, 영유아, 부모가 함께 ‘생태친화 보육’을 실천하는 어린이집이다. ‘생태친화’라는 수식어구가 뜻하는 것처럼 유아숲 체험 등 자연친화적인 보육활동을 넘어 아이의 욕구를 중시하고 아이다움의 구현을 도와주는 보육이다. 실내활동 위주의 기존 보육과정과는 달리 자연 경험, 놀이 체험 그리고 교사와 부모의 인식 변화를 중시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2019년 4개 자치구 20개소를 생태친화거점형 어린이집으로 선정했다. 그중 필자가 방문한 서초구립잠원햇살어린이집도 있다. 생태친화교육의 목표는 “더불어 살고 자연에서 마음껏 뛰어놀고 건강해지자”이다.
어린이집 입구에 식물이 든 물병이 매달려 있다.
어린이집 입구에 식물이 든 물병이 매달려 있다. ⓒ윤혜숙

생태친화 교육이 좋아서 일부러 이곳에 보낸다고 하는 부모들도 있다. 유아기 시절의 아이는 자연에서 흙을 밟고 놀아야 한다. 아이가 자라서 성인이 되었을 때 지금보다 훨씬 환경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연에서 마음껏 뛰어놀던 아이는 어릴 적부터 친환경적인 사고가 내면에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한다. 원장을 비롯한 교사들도 환경을 훼손하지 않는 삶으로 전환하자고 다짐하면서 일상에서 친환경적인 삶을 실천한다.
어린이집 담벼락을 따라 텃밭상자가 설치되어 있다.
어린이집 담벼락을 따라 텃밭상자가 설치되어 있다. ⓒ윤혜숙

‘생태친화 어린이집’은 시설 면에서도 남달랐다. 어린이집 건물을 둘러싼 담벼락을 따라 텃밭상자가 설치되어 있다.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토마토, 수박, 옥수수 등 다양한 작물을 재배한다. 아이들은 텃밭상자에 심은 작물이 성장하는 과정을 관찰하면서 식물의 성장을 배운다. 이른바 자연학습이다. 
텃밭상자에서 수박이 열매를 맺었다.
텃밭상자에서 수박이 열매를 맺었다. ⓒ윤혜숙

텃밭상자는 어린이집 아이들뿐만 아니라 근처 노인정 어르신들에게도 인기가 있다. 노인정을 드나드는 어르신들이 일부러 텃밭상자의 작물을 구경하러 오신다. 심지어 아파트에 거주하는 아이들까지 시간이 날 때마다 텃밭상자 가까이 와서 놀고 있다. 어린이집 아이들은 매일 작물의 성장을 지켜보다가 어느 순간 열매를 맺은 식물을 본다. 그럴 때면 "와~~" 하는 탄성을 지르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조심스레 작은 수박을 만져보기도 한다. 
교실 바닥에 멍석이 깔려 있다.
교실 바닥에 멍석이 깔려 있다. ⓒ윤혜숙

어린이집 입구에 들어서니 아치 모양으로 물병이 매달려 있다. 물병에는 파릇한 식물이 자라고 있다. 어린이집을 드나들면서 아이들은 까치발을 돋우면서 식물을 쳐다본다. 또한 복도에는 아이들이 실내놀이할 때 만지고 노는 장난감이 있다. '탈 플라스틱'을 실천하기 위해서 어린이집은 아이들의 장난감을 플라스틱에서 점차 나무나 천으로 바꾸고 있다. 바닥에도 매트 대신에 멍석이 깔려 있다. 아이들은 멍석을 손바닥으로 만지면서 까칠까칠한 느낌을 신기해 한다.
교실 벽면엔 플랜트월이 설치되어 있어 어린이집 실내에서도 싱그러운 자연을 느낄 수 있다.
교실 벽면엔 플랜트월이 설치되어 있어 어린이집 실내에서도 싱그러운 자연을 느낄 수 있다. ⓒ윤혜숙

교실의 한쪽 벽면에는 플랜트월이 설치되어 있다. 테이블 위에 있는 화분을 투명한 용기로 바꿨다. 자연에서 뛰어논 아이들은 오후에 어린이집 실내에서 지낼 때도 복도나 교실 곳곳에서 식물을 보면서 싱그런 자연을 느낄 수 있다.  

어린이집에서 '3세대 통합활동'을 진행하는 점도 독특했다. 아이, 부모, 어르신이 함께하는 활동이다. 마침 어린이집 인근에 노인정이 있다. 아이들이 노인정의 어르신과 함께 매실청을 담그거나 아이들이 재배한 옥수수를 쪄서 어르신과 나눠 먹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3세대 통합활동에 참여하는 어르신들은 아이들보다 더 좋아하신다. 평소 가정에서는 어르신과 아이들이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낼 기회가 드물다. 핵가족 시대를 살아가면서 아이들은 조부모를, 어르신은 손주를 자주 만나지 못한다. 그래서 어르신들은 손주를 대하듯 아이들을 보면서 마냥 귀여워하신다. 아이들은 어르신들과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배려, 나눔 등의 가치를 체득한다.    
교실 테이블에 놓인 투명한 용기에서 식물이 자라고 있다.
교실 테이블에 놓인 투명한 용기에서 식물이 자라고 있다. ⓒ윤혜숙

만 3세~5세(5세~7세)는 매주 1회 우면산 자연학습장으로 나간다. 원장, 보조교사 4인, 숲교사까지 동행한다. 처음에는 산에 간다고 하니, 아이들에게 위험하다는 생각에 우려하는 부모가 있었다. 하지만 산에 가서 아이들이 활동한 사진을 보고 부모들의 생각도 바뀌었다. 처음에 산에 갈 때 벌벌 떨었던 아이도 지금은 산에서 뛰어다닌다. 그만큼 대범해진다. 아이들은 산에서 자생하는 식물들을 보면서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호기심을 갖고 교사에게 질문한다.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우리 아이를 산에 데려가느라 애쓰시는 선생님께 감사하다”라는 인사를 건네는 부모들이 많아졌다. 처음엔 일부 교사가 부모님이 염려할까 봐 아이들을 데리고 산에 가는 것을 주저했다. 그런데 부모가 개의치 않는 것을 보고 이제는 용기를 내서 진행하고 있다. 생태친화교육 프로그램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세시놀이, 언니 오빠 역할놀이 등 다양하다. 
김선희 원장이 아이들의 놀잇감을 분류해서 정리하고 있다.
김선희 원장이 아이들의 놀잇감을 분류해서 정리하고 있다. ⓒ윤혜숙

주변의 여러 어린이집이 연합해서 생태놀이를 할 때도 있다. 김선희 원장은 “아이들의 주요 놀잇감이 스마트폰 게임이라며 걱정하는 부모들이 많다. 그런 아이들이 자연에서 마음껏 뛰어놀면 스마트폰을 찾지 않는다. 스마트폰보다 더 신나는 바깥 놀이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조언했다. 스마트폰 과의존을 우려하는 부모라면 새겨들을 만하다.
어린이집에서는 플라스틱 재질의 장난감을 나무나 천으로 교체하고 있다.
어린이집에서는 플라스틱 재질의 장난감을 나무나 천으로 교체하고 있다. ⓒ윤혜숙

그동안 서울시는 아이들이 아이답게 놀 권리를 보장하고, 이를 통해 창의성과 사회성을 키운다는 목표 아래 ‘생태친화 어린이집’을 확대해 왔다. 2021년 현재 10개 자치구에 50개소가 있다. 추후 12개 자치구 총 60개소로 확대한다. 

서울시는 텃밭, 산책로, 놀이터 등을 조성해 어린이들이 다양한 생태체험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각 어린이집의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을 발굴‧적용할 수 있게 도와주는 생태친화 보육 안내서와 전문가 컨설팅도 제공한다. 우수 사례는 서울시 보육포털 ‘생태친화 보육소식’에 게시해 공유할 예정이다.
교사는 아이들의 놀이에 개입하지 않고 지켜본다.
교사는 아이들의 놀이에 개입하지 않고 지켜본다. ⓒ윤혜숙

서울시의 ‘생태친화 어린이집’을 둘러보면서 무엇보다 아이들의 신나는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아이들은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표정과 행동으로 보여준다. 자연 속 놀 권리를 보장해 주는 생태친화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체험한다. 서울과 같이 복잡하고 삭막한 대도시에서도 아이들을 친환경적으로 키울 수 있다면 그것은 생태친화 어린이집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서울시 전 자치구의 어린이집이 생태친화 어린이집으로 바뀌는 가까운 미래를 그려본다. 

■ 서초구립잠원햇살어린이집

○ 위치 : 서울 서초구 잠원로 8길 25 1층 (잠원동, 래미안신반포팰리스)
○ 찾아가는 길 : 잠원역 4번 출구에서 244m
홈페이지
○ 문의 : 02-536-8725
○ 서울시 보육담당관 : 02-2133-5094

시민기자 윤혜숙

시와 에세이를 쓰는 작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다양한 현장의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매일 아침을 여는 서울 소식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 신청 내가 놓친 서울 소식이 있다면? - 뉴스레터 지난호 보러가기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