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아래 첫 마을 '해방촌' 나들이 코스

시민기자 김혜민

발행일 2021.05.06. 12:30

수정일 2021.05.06. 16:50

조회 23,910

해방촌 신흥시장, 루프탑 카페 그리고 후암동 108계단까지
해방촌에서 바라본 남산타워
해방촌에서 바라본 남산타워 ⓒ김혜민

산동네 비탈진 길을 따라가다 보면 성냥갑처럼 다닥다닥 어깨를 맞대고 들어서 있는 집들이 있다. 고개를 돌리면 남산타워가 무심히 하늘에 걸려 있다. 평지에 더 이상 집 지을 땅이 없었던 사람들이 오갈 데가 없으니 이 높은 곳까지 올라와 집을 짓고 살았고, 그렇게 형성된 집이 하나 둘 늘어나 마을을 형성했다.

예전에는 이곳을 달동네라 불렀다. 땅보단 달과 더 가까운 곳이라는 뜻도 있지만, 이른 새벽달을 보고 출근해 늦은 밤 달을 보며 퇴근하는 고된 삶을 뜻하기도 한다. 이왕이면 전자의 뜻이었으면 좋겠다. 달과 가까운 곳이 왠지 더 낭만 있으니 말이다.

어찌 되었든 달과 가까운 곳이니, 이곳까지 걸어서 올라왔다면 땀 범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린 초록색 마을버스를 이용했다. 마을버스가 힘겹게 꼬부랑길을 올라 도착한 해방촌 오거리. 해방촌 오거리에 도착하면 이제 신발 끈을 동여맨다. 우리의 첫 목적지는 해방촌 신흥시장이다.
신흥시장 입구
신흥시장 입구 ⓒ김혜민
해방촌오거리에서 신흥시장으로 가는 길 만난 첫 골목
해방촌오거리에서 신흥시장으로 가는 길 만난 첫 골목 ⓒ김혜민

해방촌 신흥시장

해방촌 오거리에서 신흥로를 따라 60m 걸어간 다음 좁다란 골목길로 들어선다. 입구가 아닌, 뒤편으로 향해서일까. 마치 숨바꼭질하듯 숨어 있는 골목. 그렇게 비좁은 골목길을 따라 내려가면 1953년 해방 이후 '해방촌 시장'으로 불리며 운영되어 온 '신흥시장'이 나온다. 
신흥시장 골목을 거닐며 바라본 건물과 하늘
신흥시장 골목을 거닐며 바라본 건물과 하늘 ⓒ김혜민
신흥시장에서 만난 정겨운 정육점
신흥시장에서 만난 정겨운 정육점 ⓒ김혜민

전쟁에서 고향을 잃는 이들, 타국에서 떠나온 정착민들과 공장을 찾아 일하러 온 노동자들 그리고 꿈을 찾아 떠나온 예술가들이 한데 어우러져 살았던 '해방촌'에 자리한 시장답게 신흥시장만의 독특한 매력을 선보인다. 켜켜이 쌓인 역사가 보이는 오래된 벽돌, 이제는 벗겨진 페인트칠, 좁다란 골목, '코너를 돌면 뭐가 있을까' 예상할 수 없는 각양각색의 가게들이 한데 어우러져 재미를 더한다. 골목을 걷는 재미가 있는 시장이다. 

하지만 우리가 방문했을 땐 도로 공사가 한창이라 제대로 둘러볼 수 없었다. 아쉬움이 발끝까지 차지만, 더 많은 손님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거라 생각하면 조금은 위안이 된다.  
신흥시장 콤콤 전자오락실
신흥시장 콤콤 전자오락실 ⓒ김혜민

콤콤 전자오락실

80년대부터 90년대 사이 우리 동네에도 전자오락실이 하나 있었다. 언제부터 그 오락실이 사라졌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도 PC방이 생기기 시작한 90년대 말쯤이었던 것 같다.  

드르륵 문을 열고 전자오락실 안으로 들어간다. 주머니엔 짤랑짤랑 동전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왕이면 학원 마치고 와 잠깐 즐겨도 좋지만, 왜 학원 가기 전에 하는 오락이 더 재밌을까? 학원 시간이 다가올수록, 그래서 엄마에게 들키면 혼날까 조바심이 날수록 게임은 절정에 달한다. 휘황찬란한 네온간판엔 이렇게 쓰여 있다. 

'인생은 쪼렙, 게임은 만렙'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포스터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포스터 ⓒ김혜민

"여기가 동백꽃 필 무렵 촬영지래." 
그러고 보니 황용식(강하늘)이 강필구(김강훈)에게 건넸던 대사가 탁 떠오른다.

"내가 말이여, 어른이 돼 보니깐 말이여, 학원보다는 오락실에서 인생을 배운 게 더 많더라고."

그렇다. 우린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해방촌, 루프탑 수제버거 레스토랑에서 잠시 휴식
해방촌, 루프탑 수제버거 레스토랑에서 잠시 휴식 ⓒ김혜민

루프탑 맛집과 카페

공사 중인 신흥시장을 뒤로하고 해방촌 어귀에 자리한 루프탑 카페로 향했다. 고작 3층 높이의 카페인데 뒤를 돌면 남산타워가 보이고, 앞을 보면 서울 시내가 펼쳐진다. '남산 아래 첫 마을'답게 일석이조의 전망이다. 

해방촌은 사실 이태원, 경리단길과 제법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해방촌은 해방촌만의 매력이 있다. 특히 해방촌에서 인기 많은 곳이 바로 루프탑 카페이다. 안 그래도 높은 곳에 자리한 마을인데 거기에 옥상까지 올라가니 전망대 부럽지 않은 전망이 펼쳐진다. 그간 나를 괴롭혀 온 편두통이 한 번에 사라지는 기분이 든다. 도시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도시가 보이는 높은 곳에서 훌훌 날려보낸다.
후암동 108계단 경사형 승강기
후암동 108계단 경사형 승강기 ⓒ김혜민

후암동 108계단

이제 마지막 목적지는 후암동이다. 후암동 108계단은 신흥시장에서 300m도 채 되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후암동 108계단의 볼거리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자리한 경사형 승강기다. 계단 시작점부터 꼭대기까지 총 4층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오르락내리락 하는 데는 1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덕분에 무릎을 짚으며 올라가야 하는 108개의 계단을 이젠 후다닥 올라갈 수 있게 되었다. 
걸었다면 아찔했을 후암동 108계단
걸었다면 아찔했을 후암동 108계단 ⓒ김혜민

후암동 108계단 승강기는 서울 내 주택가에 설치된 첫 번째 경사형 승강기로 주민들의 이동 편의를 위해 설치됐다. 108계단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 전몰장병을 추모하고자 경성호국신사를 지으며 참배길로 지은 계단이다. 불교에서는 중생의 번뇌를 108가지로 분류했고, 이를 백팔번뇌라고도 한다. 그렇게 지어진 계단이지만, 이젠 신사의 흔적은 사라지고 계단만 남아 그저 인근 주민들이 이동하는 수단으로만 이용됐다. 그런데 이제 승강기가 설치되어 해방촌의 접근성이 더 좋아졌다. 덕분에 해방촌으로 가는 발걸음이 더 가벼워졌다.

시민기자 김혜민

프리랜서 번역가이자 여행 칼럼리스트로 활동 중인 유튜버 여행작가 봄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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