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현궁의 봄을 거닐어보자!
발행일 2021.03.11. 09:55
서울 도심 속 왕실 문화의 전당으로 떠나는 역사 속 시간여행
서울 도심에는 많은 역사 유적지가 살아 숨쉬고 있다. 아직은 코끝을 스치는 바람이 차갑지만, 봄이 다가오고 있는 3월이다. 혼자여도 좋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여도 좋을, 서울 도심 속 근대역사를 만나는 '운현궁'을 찾았다. 탁트인 야외임에도 운현궁은 현재 정문 입구에서 마스크 착용 확인, 열체크, QR코드 인증, 손 소독제 사용 등 코로나 예방 방역이 잘 이루어지고 있었다. 종로구 안국역에서 3분 거리로 무료 입장이다.

종로구에 자리한 운현궁 입구 ⓒ조성희
운현궁(사적 제257호)은 조선 26대 임금인 고종이 12세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살았던 곳이자, 생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집이다. 흥선대원군은 이곳 운현궁에서 10여년간 어린 아들을 대신해서 정치를 했다. 운현궁의 형성과 확장, 축소는 흥선대원군의 흥망성쇠와 함께 했음을 짐작할 수 있기에 역사적 상징성이 크다. 궁 이름은 조선시대 기상관측소인 서운관 앞에 있던 고개 ‘운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이 서운관 앞 고개 너머에 흥선대원군의 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운현궁의 건물은 수직사, 노안당, 노락당, 이로당, 유물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1864년(고종 1년)에 노안당과 노락당을 짓고, 1869년(고종 6년)에는 이로당과 영로당을 세웠다. 창덕궁을 쉽게 드나들도록 고종 전용 경근문과 흥선대원군을 위한 공근문을 두었으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았다. 흥선대원군이 세상을 떠난 후 큰 아들인 이재면을 거쳐 손자 이준용에게 상속되었으나 한국전쟁 이후 상당 부분이 팔리면서 운현궁의 규모는 크게 줄었다.
현재 운현궁의 건물은 수직사, 노안당, 노락당, 이로당, 유물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1864년(고종 1년)에 노안당과 노락당을 짓고, 1869년(고종 6년)에는 이로당과 영로당을 세웠다. 창덕궁을 쉽게 드나들도록 고종 전용 경근문과 흥선대원군을 위한 공근문을 두었으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았다. 흥선대원군이 세상을 떠난 후 큰 아들인 이재면을 거쳐 손자 이준용에게 상속되었으나 한국전쟁 이후 상당 부분이 팔리면서 운현궁의 규모는 크게 줄었다.

운현궁의 행각 수직사 ⓒ조성희
운현궁 입구로 들어서면 오른쪽에 ‘수직사’가 보인다. 길게 지어진 수직사는 운현궁의 경비와 관리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사용하던 행각이다. 고종이 왕위에 오른 후 흥선대원군은 어린 나이에 왕이 된 아들을 대신해 정치 전반에 걸쳐 관여했다. 그러다 보니 흥선대원군의 권력이 점차 막강해지면서 경호가 필요해지자 궁에서 운현궁으로 군졸을 파견하고 관리인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수직사의 방 안에 화로·가구·호롱불 등의 생활용품으로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흥선대원군의 주된 거처였던 노안당 ⓒ조성희
‘노안당’은 운현궁의 사랑채로 흥선대원군의 주된 거처였다. 노안은 논어 가운데 ‘노자(老子)를 안지(安之)하며’라는 구절에서 따왔는데 ‘노인을 공경하며 편안하게 한다’는 뜻이다. 1864년 지어진 노안당은 정면 6칸, 측면 3칸이고 공간 구성과 깔끔한 목조 구조, 세부기법은 궁궐에 버금가는 품격을 보여준다.
온돌방과 툇마루가 이어져 있어 전체적으로 T자형 평면의 건물이다. 처마는 모두 서까래만의 홑처마로 되어 있으나 전면과 동서양 측면의 남쪽 일부에는 모두 차양을 달아 그 시대의 특징을 볼 수 있다. 노안당 편액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다. 추사 김정희의 제자였던 흥선대원군은 글자와 그림을 배웠고 수묵으로 난초를 그린 묵란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원래 노안당에 게시된 편액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06호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으며, 현재 운현궁에 게시된 편액은 모각된 것이다.
온돌방과 툇마루가 이어져 있어 전체적으로 T자형 평면의 건물이다. 처마는 모두 서까래만의 홑처마로 되어 있으나 전면과 동서양 측면의 남쪽 일부에는 모두 차양을 달아 그 시대의 특징을 볼 수 있다. 노안당 편액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다. 추사 김정희의 제자였던 흥선대원군은 글자와 그림을 배웠고 수묵으로 난초를 그린 묵란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원래 노안당에 게시된 편액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06호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으며, 현재 운현궁에 게시된 편액은 모각된 것이다.

노안당 내부 모습 ⓒ조성희
노안당 내부에는 당시 왕실 가족의 생활상을 재현해놓은 병풍과 이불, 가구 등 생활용품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이곳은 흥선대원군이 나라의 주요 정책들을 논의한 장소다. 1994년 노안당 보수공사 당시에 발견된 상량문에는 당호의 유래와 대원군의 호칭, 지위에 관한 것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상량문에 의하면 대원군의 호칭을 ‘전하(殿下)’ 다음의 존칭어인 ‘합하(閤下)’라고 했으며, 지위는 모든 문무백관의 으뜸이라고 했다. 당시 흥선대원군의 힘이 얼마나 컸는지 엿볼 수 있다. 아마도 운현궁의 문턱이 닳도록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지 않았을까.

운현궁의 안채인 노락당 ⓒ조성희
노락당은 운현궁의 안채다. 흥선대원군과 부대부인 민씨가 사용했으며 궁의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주로 가족들의 회갑이나 잔치 등 큰 행사 때 이용했다. 1866년(고종 3년)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식이 열렸던 곳으로 규모는 궁궐에 비해 손색이 없을 정도로 화려하고 웅장했다고 한다. 이 행사 준비에만 1,641명의 수행원과 700필의 말이 동원되었다고 하니 규모가 어떠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노락당 부엌 모습 ⓒ조성희
아마도 흥선대원군은 궁궐이 아닌 운현궁에서의 가례를 통해 고종에게는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명성황후에게는 왕권을 위협하는 정치 활동에 대한 경고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정치적 의미가 큰 행사가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도 노락당에서는 운현궁 공식 홈페이지(https://www.unhyeongung.or.kr/) 신청을 통해 전통 혼례식이 진행되고 있다.
노락당은 정면 10칸, 측면 3칸으로 평면은 'ㅡ'자 형으로 구성되었는데, 복도각을 통해 이로당까지 이어지게 한 방식은 운현궁의 매우 특별한 점이다. 노락당은 운현궁 안에서 유일하게 기둥머리에 익공(새 날개 모양으로 뾰족하게 생긴 공포의 일종)을 장식해 높은 위계를 느낄 수 있다.
노락당은 정면 10칸, 측면 3칸으로 평면은 'ㅡ'자 형으로 구성되었는데, 복도각을 통해 이로당까지 이어지게 한 방식은 운현궁의 매우 특별한 점이다. 노락당은 운현궁 안에서 유일하게 기둥머리에 익공(새 날개 모양으로 뾰족하게 생긴 공포의 일종)을 장식해 높은 위계를 느낄 수 있다.

고종과 명성황후 가례 이후 새로 지어진 안채 이로당 ⓒ조성희
‘이로당’은 노락당과 함께 운현궁의 안채로 쓰였다. ‘이로(二老)’는 흥선대원군과 부대부인 여흥민씨를 의미하는 말로 해석한다. 1866년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 이후, 그들이 운현궁을 방문할 때 노락당을 거처로 사용했다. 노락당이 안채에서 별궁으로 역할이 바뀌자 새로운 안채가 필요해졌고 노안당, 노락당보다 뒤늦은 1869년에 이로당을 지었다. 이로당 뒤편의 ‘운니동 김승현 가옥’은 원래 운현궁에 속한 건물 중 하나로 ‘영로당’이라고 불렸었다. 이로당은 ‘ㅁ’자 형 건축물이라는 점도 특색있다.

노락당 뒤쪽에서 이로당 쪽을 향하는 풍경(좌), 이로당 수로(우) ⓒ조성희
운현궁 뒤쪽으로 돌아서 보는 풍경도 멋지다. 노락당 뒤쪽으로 돌아서 이로당 쪽으로 가려고 보니 아치형 나무 문양이 마치 액자처럼 이로당 앞 나무들의 멋진 풍경을 담고 있다. 운현궁 곳곳에서 이런 한옥과 자연의 조화로움을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다. 도심 속에서 잠깐의 여유와 전통의 숨결을 느끼며 휴식할 수 있는 힐링 공간이다.
이로당 앞에 있는 커다란 돌로 된 수조는 화재발생 시 사용할 물을 저장해둔 방화수통이라고 한다. 수조 아래 쪽에는 구름 모양과 함께 ‘운하연지(雲下硯池)’라고 쓰여 있는데, ‘구름 아래 벼루 물을 담아 둔 연못’이라는 의미다.
이로당 앞에 있는 커다란 돌로 된 수조는 화재발생 시 사용할 물을 저장해둔 방화수통이라고 한다. 수조 아래 쪽에는 구름 모양과 함께 ‘운하연지(雲下硯池)’라고 쓰여 있는데, ‘구름 아래 벼루 물을 담아 둔 연못’이라는 의미다.

유물전시관 입구 ⓒ조성희
운현궁에 있는 유물전시관은 운현궁과 흥선대원군 관련 유물 전시를 통해 운현궁의 가치와 조선 말기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운현궁 모형,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초상화, 왕과 왕비가 가례를 올릴 때 착용한 예복, 운현궁의 각종 생활 유물 등을 볼 수 있다. 현재 이곳에 전시되는 유물은 복제품이고, 실제 유물은 서울역사박물관에 보관·전시되고 있다.

운현궁 배치도, 친영례 복식, 척화비, 당백전 (시계방향으로) ⓒ조성희
전시관을 둘러보는 동안 운현궁 전체 배치도와 각 건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볼 수 있다.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 가운데 친영례(신부 집에 온 신랑을 맞이하는 예법) 복식이 재현되어 있다. 또한 서양을 물리치기 위해 만든 척화비는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등 서구열강의 통상 압력을 비롯해 남연군의 묘 도굴사건 등이 발생해 통상거부정책을 강력히 추진하겠다는 당시 흥선대원군의 의지가 보였다. 경복궁 중건으로 고갈된 재정을 메우기 위해 주조했던 원납전, 당백전 등의 화폐를 통해 당시 백성들의 고달픔까지 엿볼 수 있다.

운현궁 꽃담 ⓒ조성희
아직은 앙상한 나뭇가지와 차가운 바람이 조선의 기울어져 가는 현실을 마주한 것만 같아서 조금은 쓸쓸했다. 하지만 운현궁 꽃담을 보니 다가오고 있는 봄이 더욱 기다려진다. 곧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고 꽃피는 봄이 오면 이곳 운현궁의 아름답고 화려했던 시절을 떠올려 볼 수 있지 않을까. 고즈넉한 한옥의 정취와 자연의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매력 가득한 운현궁의 봄을 거닐어보자!
■ 운현궁 관람 안내
○ 주소: 서울시 종로구 삼일대로 464
○ 가는법: 지하철 3호선 안국역 4번 출구 (도보 3분)
○ 개장 시간: 하절기(4월~10월) 9:00~19:00 / 동절기(11월~3월) 9:00~18:00 / 월요일 휴무
○ 입장료 : 무료
○ 홈페이지
○ 문의: 02-766-9090
○ 가는법: 지하철 3호선 안국역 4번 출구 (도보 3분)
○ 개장 시간: 하절기(4월~10월) 9:00~19:00 / 동절기(11월~3월) 9:00~18:00 / 월요일 휴무
○ 입장료 : 무료
○ 홈페이지
○ 문의: 02-766-9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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