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 불가한 공간의 미학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시민기자 김혜민

발행일 2021.03.12. 11:14

수정일 2021.03.12. 16:34

조회 8,920

2019년 서울시건축상 최우수상 수상한 아름다운 공간
지하 3층에 자리한 하늘광장
지하 3층에 자리한 하늘광장 ⓒ김혜민

서울시건축상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건축물

서소문 역사공원은 서울역에서 걸어서 10분여 거리에 위치해 있다. 서울역에서 조금 더 걸어가면 서울역 서북쪽 경의선 철로와 서소문 고가 도로가 교차하는 지역에 조그마한 공원이 나온다. 이곳이 바로 서소문 역사공원이다. 그런데 우리의 목적지는 서소문 역사공원이 아닌,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이다.

아무런 정보 없이 찾아갔기에 들어가는 입구부터 나오는 순간까지 건물의 형태를 예측할 수 없었다. 보통 '예측 불가능함'은 불안함을 주지만, 이 건물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욱 호기심을 자극하고 재미를 선사해 준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서소문 역사공원
서소문 역사공원 ⓒ김혜민
서소문 역사공원
서소문 역사공원 ⓒ김혜민

서소문 밖 네거리, 천주교 순교 성지

조선시대 한양에는 경복궁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을 잇는 성곽을 쌓아 도성을 보호했다. 그 사이사이 도성으로 향하는 네 개의 문이 있는데 차례대로 남대문(숭례문), 동대문(흥인문), 서대문(돈의문), 북대문(숙천문)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다시 동북의 홍화문(동소문), 남서의 소의문(서소문), 동남의 광희문(수구문), 서북의 창의문(자하문) 등 사소문이라는 작은 문을 두었다. 그중 서소문은 남대문과 서대문 사이에 자리한 작은 문으로, 강화군이나 인천으로 향하는 관문으로 활용되었으나 1914년 일제강점기 당시 철거되었다.

'서소문 밖 네거리'는 서소문 전투의 군인 등 사회 개혁 세력뿐만 아니라 신유박해부터 병인박해까지 많은 천주교인이 처형된 천주교 성지로 조선시대 국가 공식 처형지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이곳에서 처형된 천주교인 중 44명이 성인으로 추앙돼 ‘우리나라 최대 천주교 성지’라고도 부른다. 왜 하필 이곳에서 처형이 이루어졌을까?

그 이유는 조선시대 때 사형 집행이 많은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어 범죄를 예방하려는 목적으로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에서 처형이 행해졌다고 한다. 현재 이 근방은 1974년 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순교자를 기리는 현양탑이 세워졌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입구로 가는 진입로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입구로 가는 진입로 ⓒ김혜민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입구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입구 ⓒ김혜민

지상에는 공원, 지하에는 박물관

2019년 이곳 지하주차장은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으로 탈바꿈했다.

일단 박물관을 찾아왔는데 공원 내 어디에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는지 찾기 어렵다. 마치 문을 꽁꽁 숨겨 두고 보물 찾기라도 하듯 박물관 입구와 숨바꼭질을 한다. 지하주차장을 리모델링해 박물관으로 탈바꿈한 덕에 평지에서 위로 올라가는 다른 건물과 달리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은 평지에서 더 아래로 파고 들어간다.

박물관을 들어서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경사로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빛의 광장에 자리한 형틀 조각상
빛의 광장에 자리한 형틀 조각상 ⓒ김혜민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 설치된 전시물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 설치된 전시물 ⓒ김혜민

그렇게 아래로 내려가면 진입광장이 나온다. 이 진입광장의 이름은 ‘빛의 광장’.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지하 1층으로 들어오는 빛이 따사롭다. 빛의 광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보이는 조각물은 죄인의 목을 옥죄었던 형틀 조각상이다.

이제 체온을 체크하고 문진표를 작성한 후 안으로 들어간다. 가장 먼저 로비와 뮤지엄숍이 나온다. 로비를 지나 지하 2층으로 가면 기회 전시실과 상설 전시실이 나오고, 지하 3층으로 가면 콘솔레이션 홀과 하늘광장, 하늘길이 나온다.
콘솔레이션 홀
콘솔레이션 홀 ⓒ김혜민
콘솔레이션 홀
콘솔레이션 홀 ⓒ김혜민

위안과 평화로움을 주는 '콘솔레이션 홀'

‘콘솔레이션(consoliation)’이란 위안, 위로를 뜻하는 말이다. 지하3층에 자리한 콘솔레이션 홀은 조선시대 이 땅에서 목숨을 다한 과거 모든 이들을 위로하고, 바쁜 일상에 지친 현대인에게 위안과 평화로움을 주는 공간이다. 콘솔레이션 홀을 지나 앞으로 걸어가면 하늘광장이 펼쳐진다.
지하3층에 자리한 하늘광장
지하3층에 자리한 하늘광장 ⓒ김혜민
지하3층에 자리한 하늘광장
지하3층에 자리한 하늘광장 ⓒ김혜민

본래 하늘광장이라고 하면 건물에서 가장 높은 층에 자리하기 마련인데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의 하늘광장은 지하 3층에 자리하고 있다. 안으로 들어서니 온통 붉은 벽돌이 에워싼다. 우후죽순으로 세워진 서울 속 건물들은 커다란 벽에 가려 보이지 않고 보이는 건 온통 하늘뿐이다. 하늘광장은 사상과 종교의 자유를 외치다 희생당한 사람들의 정신을 기리는 추념의 의미를 담아 하늘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이 공간에 서 있으면 어느새 자연스럽게 고개와 눈동자가 하늘을 바라보게 된다.
하늘길
하늘길 ⓒ김혜민
곡선이 아름다운 전시실
곡선이 아름다운 전시실 ⓒ김혜민

하늘광장 바로 옆에는 하늘길이 있다. 입구부터 지금까지 예측할 수 없는 공간이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보이는 건 전시실이다. 전시실마저도 예사롭지 않다. 전시 건물이 이렇게 멋질 일인가! 멀리서 보면 곡선의 조화가 아름답다.

현재 상설전시관 제1전시실에는 '조선 후기 사상계의 전환기적 특성'을 다루고 있으며, 제2전시실에는 '서소문 밖 역사유적지'의 특성과 역사성을 보여주는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참고로 서소문 역사공원과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은 2019년, 제37회 서울시건축상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필자는 이 건물을 ‘예측 불가능한 공간’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 이유는 건물 내부가 한눈에 들여다볼 수 없으며 동선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전시실
전시실 ⓒ김혜민

이리저리 길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막다른 길에 도달한다. 하늘길을 따라 올라가다 코너를 도니 막다른 길, 전시실을 보다 칸막이 너머를 보니 또 막다른 길이다. 장소마다 층고가 다르고, 공간마다 깊이가 다르다. 역사적 의미가 깊은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은 이렇게 공간의 아름다움까지도 배울 수 있는 공간이다.

■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 위치: 서울특별시 중구 칠패로 5(서소문 역사공원 내)
○ 가는법: 충정로역 4번 출구에서 도보 6분, 서울역 2번 출구, 서대문역 7번 출구에서 도보 10분
○ 운영시간: 매일 09:30~17:30
○ 휴뮤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추석 당일
○ 관람료: 무료
○ 홈페이지
○ 문의: 02-3147-2401

시민기자 김혜민

프리랜서 번역가이자 여행 칼럼리스트로 활동 중인 유튜버 여행작가 봄비입니다

매일 아침을 여는 서울 소식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 신청 내가 놓친 서울 소식이 있다면? - 뉴스레터 지난호 보러가기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