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은행나무 옆, 붉은색의 이 집은?

시민기자 김아름

발행일 2021.03.09. 11:50

수정일 2021.03.09. 15:35

조회 1,309

독립문역에서 10분 거리, 높은 언덕에 자리한 ‘딜쿠샤(DILKUSHA)’는 조선에서 금광과 테일러 상회를 경영했던 앨버트 W.테일러와 그의 가족이 거주했던 곳이다. 커다란 은행나무와 붉은색 벽체의 이국적인 건물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미국 네바다주에서 태어난 앨버트 와일더 테일러(Albert Wilder Taylor)는 광산기술자였던 아버지의 일을 돕기 위해 조선에 입국했고, 이후 영국인 메리 린리 테일러(Mary Linley Taylor)를 만나 인도에서 결혼 후, 서대문의 ‘작은 회색집(The little Gray Home)’이라고 불리던 한옥에서 신혼 생활을 했다. 1923년 이곳의 큰 은행나무 앞에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뜻의 ‘딜쿠샤(DILKUSHA)’를 짓고 이듬해 입주했으며, 조선총독부의 외국인 추방령(1942년)에 따라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 거주했다.

앨버트 W.테일러는 ‘연합통신(AP, Associated Press)’의 통신원이기도 했는데 고종 국장과 3.1 운동, 제암리 학살사건, 독립운동가의 재판 등을 취재하여 한국의 독립투쟁 소식을 국제사회에 알리는데 공헌했다.

앨버트 W.테일러 가족이 한국을 떠난 뒤 오랜 기간 방치되어 본모습을 잃어갔던 건물은 2006년 앨버트의 아들 브루스 테일러가 어린 시절 살던 집을 찾으면서 다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복원 공사와 고증 연구를 통해 1·2층 거실은 거주 당시의 모습을 재현했고, 나머지 공간은 테일러 가족의 삶과 앨버트 W.테일러의 언론 활동 등을 소개하는 전시실로 구성했다. 2021년 3.1절을 맞아 시민들에게 공개된 딜쿠샤는 ‘서울특별시 공공서비스예약’에서 사전예약을 통해 관람할 수 있다. 

국내 환경과 여건을 고려하여 건축된 서양식 건축이자, 1920~30년대의 국내 서양식 집의 건축기법과 생활양식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축물로서 문화적 가치가 있으며, 일제강점기에 한국에서 살았던 외국인의 삶과 그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의 모습을 볼 수 있던 귀한 장소였다. 무엇보다 앨버트 W.테일러, 프랭크 스코필드 (Frank W. Schofield), 어니스트 베델(Ernest Thomas Bethell) 등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서양인 독립유공자들을 알아갈 수 있어 더욱 감사한 시간이었다.
앨버트 W.테일러와 메리 L.테일러 부부가 살던 집으로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딜쿠샤'가 이 집의 이름이다. ⓒ김아름
앨버트 W.테일러와 메리 L.테일러 부부가 살던 집으로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딜쿠샤'가 이 집의 이름이다. ⓒ김아름
딜쿠샤 앞에는 임진왜란 때 행주대첩을 이끈 도원수 권율(1537~1599) 장군의 집터가 있는데 이곳에 수령 450년이 넘은 큰 은행나무가 있다. ⓒ김아름
딜쿠샤 앞에는 임진왜란 때 행주대첩을 이끈 도원수 권율(1537~1599) 장군의 집터가 있는데 이곳에 수령 450년이 넘은 큰 은행나무가 있다. ⓒ김아름
기독교인이었던 앨버트 W.테일러는 정초석에 “DILKUSHA 1923 PSALM CXXⅦ-Ⅰ(딜쿠샤 1923 시편 127편 1절)”을 새겨 넣었다. ⓒ김아름
기독교인이었던 앨버트 W.테일러는 정초석에 “DILKUSHA 1923 PSALM CXXⅦ-Ⅰ(딜쿠샤 1923 시편 127편 1절)”을 새겨 넣었다. ⓒ김아름
지인들을 초대하여 파티를 여는 공간으로 사용된 1층 거실의 모습. 노란 페인트를 칠한 벽과 벽난로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벽난로 양쪽에 앉을 수 있는 공간인 잉글누크(Inglenook)가 인상적이다. 왼쪽 계단 옆에는 커다란 괘종시계가 크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김아름
지인들을 초대하여 파티를 여는 공간으로 사용된 1층 거실의 모습. 노란 페인트를 칠한 벽과 벽난로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벽난로 양쪽에 앉을 수 있는 공간인 잉글누크(Inglenook)가 인상적이다. 왼쪽 계단 옆에는 커다란 괘종시계가 크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김아름
거실과 방에 벽난로를 설치하여 한국의 추운 겨울에 대비했고, 무더운 여름철 대비를 위해 넓은 창문과 개방적 베란다를 두었다. ⓒ김아름
거실과 방에 벽난로를 설치하여 한국의 추운 겨울에 대비했고, 무더운 여름철 대비를 위해 넓은 창문과 개방적 베란다를 두었다. ⓒ김아름
앨버트 W.테일러의 가족사진 ⓒ김아름
앨버트 W.테일러의 가족사진 ⓒ김아름
테일러 상회에서 판매했던 것과 같은 종류의 제품을 전시해 두었다. (언더우드 타자기, 샤프펜슬, 잉거솔 시계, 테일러 상회의 책자 등) ⓒ김아름
테일러 상회에서 판매했던 것과 같은 종류의 제품을 전시해 두었다. (언더우드 타자기, 샤프펜슬, 잉거솔 시계, 테일러 상회의 책자 등) ⓒ김아름
앨버트 W.테일러와 메리 L.테일러를 이어준 호박 목걸이 ⓒ김아름
앨버트 W.테일러와 메리 L.테일러를 이어준 호박 목걸이 ⓒ김아름
메리 L.테일러의 회고록 「호박 목걸이(1992년)」와 아들 브루스 T.테일러가 쓴 「은행나무 옆 딜쿠샤(2010년)」 ⓒ김아름
메리 L.테일러의 회고록 「호박 목걸이(1992년)」와 아들 브루스 T.테일러가 쓴 「은행나무 옆 딜쿠샤(2010년)」 ⓒ김아름
1917년 인도에서 결혼식을 올린 후, 한국에 입국한 테일러 부부는 딜쿠샤를 짓기 전, ‘작은 회색집(The little Gray Home)’이라고 불리던 서대문의 한옥에서 신혼 생활을 했다. 또한, 인도-한국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김아름
1917년 인도에서 결혼식을 올린 후, 한국에 입국한 테일러 부부는 딜쿠샤를 짓기 전, ‘작은 회색집(The little Gray Home)’이라고 불리던 서대문의 한옥에서 신혼 생활을 했다. 또한, 인도-한국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김아름
앨버트 W.테일러 가족들은 평소에 그를 ‘브루스’라 불렀는데 황동 문패에 그 이름을 사용했다. 가운데는 한자 음을 빌린 ‘태락(台樂)’으로 표기했고 양옆에는 영문 BRUCE TAYLOR를 새겼다. ⓒ김아름
앨버트 W.테일러 가족들은 평소에 그를 ‘브루스’라 불렀는데 황동 문패에 그 이름을 사용했다. 가운데는 한자 음을 빌린 ‘태락(台樂)’으로 표기했고 양옆에는 영문 BRUCE TAYLOR를 새겼다. ⓒ김아름
메리 L.테일러가 수채화로 그린 한국의 마을 풍경 ⓒ김아름
메리 L.테일러가 수채화로 그린 한국의 마을 풍경 ⓒ김아름
테일러 부부가 여가 시간 대부분을 보낸 2층 거실. 1층과 마찬가지로 가운데 벽난로가 있고, 양옆에는 잉글누크가 설치되었다. 벽난로 위에는 당시의 사진처럼 앨버트 W.테일러가 수집한 고려청자와 말 모형들이 놓여 있다. ⓒ김아름
테일러 부부가 여가 시간 대부분을 보낸 2층 거실. 1층과 마찬가지로 가운데 벽난로가 있고, 양옆에는 잉글누크가 설치되었다. 벽난로 위에는 당시의 사진처럼 앨버트 W.테일러가 수집한 고려청자와 말 모형들이 놓여 있다. ⓒ김아름
2층 거실의 모습 ⓒ김아름
2층 거실의 모습 ⓒ김아름
2층 거실, 고풍스러운 한국의 미를 뽐내는 장식장 ⓒ김아름
2층 거실, 고풍스러운 한국의 미를 뽐내는 장식장 ⓒ김아름
자수화조도병풍 ⓒ김아름
자수화조도병풍 ⓒ김아름
한국 근대건축에서 유사 사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희귀한 벽돌 쌓기 방식인 딜쿠샤의 ‘공동벽 쌓기’를 설명하고 있는 건축모형 ⓒ김아름
한국 근대건축에서 유사 사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희귀한 벽돌 쌓기 방식인 딜쿠샤의 ‘공동벽 쌓기’를 설명하고 있는 건축모형 ⓒ김아름
앨버트 W.테일러가 1919년 3월 3일 고종 국장 행렬을 찍은 사진 ⓒ김아름
앨버트 W.테일러가 1919년 3월 3일 고종 국장 행렬을 찍은 사진 ⓒ김아름
연합통신(AP, Associated Press) 통신원이기도 했던 앨버트 W.테일러는 아내가 출산으로 입원해 있던 세브란스 병원에서 일제의 눈을 피해 침대 속에 감춰져 있던 종이 뭉치를 발견했는데 이 종이뭉치가 독립선언서임을 알고, 관련 기사를 써서 우리나라가 독립을 선언했음을 국제사회에 알리는데 공헌했다. ⓒ김아름
연합통신(AP, Associated Press) 통신원이기도 했던 앨버트 W.테일러는 아내가 출산으로 입원해 있던 세브란스 병원에서 일제의 눈을 피해 침대 속에 감춰져 있던 종이 뭉치를 발견했는데 이 종이뭉치가 독립선언서임을 알고, 관련 기사를 써서 우리나라가 독립을 선언했음을 국제사회에 알리는데 공헌했다. ⓒ김아름
“서울, 3월 12일(Associated Press) - 한국의 독립선언서에 2천만 민족의 목소리를 대표하고, 정의와 인도의 이름으로 말한다.”라는 내용으로 보도된 뉴욕타임즈 기사(1919.3.13.) ⓒ김아름
“서울, 3월 12일(Associated Press) - 한국의 독립선언서에 2천만 민족의 목소리를 대표하고, 정의와 인도의 이름으로 말한다.”라는 내용으로 보도된 뉴욕타임즈 기사(1919.3.13.) ⓒ김아름
테일러 부부의 추방 경로 및 서류 등을 전시해 둔 공간.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일제는 한국에 거주하던 적국 국민들을 수용소에 구금했고, 이후 조선총독부의 외국인 추방령에 따라 한국을 떠나야만 했다. ⓒ김아름
테일러 부부의 추방 경로 및 서류 등을 전시해 둔 공간.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일제는 한국에 거주하던 적국 국민들을 수용소에 구금했고, 이후 조선총독부의 외국인 추방령에 따라 한국을 떠나야만 했다. ⓒ김아름
한국을 그리워한 앨버트 W.테일러는 미국 국무부 고문인 아서 에몬스와 특수부대 등에 편지를 쓰며 한국으로의 파견을 요청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앨버트는 1948년 6월에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숨을 거두었다. ⓒ김아름
한국을 그리워한 앨버트 W.테일러는 미국 국무부 고문인 아서 에몬스와 특수부대 등에 편지를 쓰며 한국으로의 파견을 요청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앨버트는 1948년 6월에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숨을 거두었다. ⓒ김아름

■ 앨버트 테일러 가옥 (딜쿠샤 DILKUSHA, 등록문화재 제687호)

○ 주소 : 서울시 종로구 사직로2길 17, 딜쿠샤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3번 출구) 도보 10분)
○ 관람방법 : 인터넷 사전 예약 + 현장접수 (3월 9일부터 해제 시까지 전시 해설 없이 자유관람)
○ 서울시공공서비스예약 홈페이지 바로가기
○ 관람시간 : 1차(10:00~11:00) / 2차(13:30~14:30) / 3차(15:00~16:00) / 4차(16:30~17:30)
○ 휴관일 : 1월 1일, 매주 월요일

시민기자 김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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