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주변 29살 여자 중에...

하이서울뉴스 조선기

발행일 2011.11.15. 00:00

수정일 2011.11.15. 00:00

조회 8,279

[서울시 하이서울뉴스] 지난 주 연희 어머니를 만났다. 연희는 88년도 그러니까 88올림픽이 열리는 그 해 4월 사라졌다. 과자를 사러 슈퍼에 간다고 나간 후 23년이 지났다. 세 딸 중 막내딸로 그 때 나이 6살. 지금이면 29살이 됐을 터였다. 웃는 얼굴이 너무 예쁜 아이. 말도 잘하고 영특해서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아이. 사진 속의 연희는 너무도 해맑게 웃고 있었다.
연희 어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듣다보니, 조금만 노력하면 연희를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부디 주변에 29살 여자 중에 아래 사진과 비슷한 얼굴을 봤거나 어린시절 기억이 비슷한 사람이 있다면 지나치지 말기를 바란다. 옛 여자친구나 오래된 동창도 찾는 세상인데, 가족을 찾지 못한 채 23년이 흘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연희 어머니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 5분이라도 좋다. 연희와 연희 가족을 위해 주변을 살펴보는 건 어떨까. 작은 관심이 큰 결과를 만든다고 믿는다. 이 기사가 연희를 찾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연희 특징

- 눈썹 아래 흉터 : 4살 쯤 연희가 계단에서 넘어져서 생긴 흉터. 두 세 바늘 꼬맸음.
- 팔꿈치 점 : 왼쪽인가 오른쪽 팔꿈치에 까만 점이 있음.

연희가 기억할지도 모르는 것들

- 집 뒤에 돌산(용마산)이 있었음.
- 중랑구 면목 4동 신진연립에 살았음.
- 동네슈퍼에 자주 드나듬. 슈퍼마켓 이름은 동산슈퍼.  
- 다섯 살 쯤 삼촌이 함께 살고 있다가 결혼했음.
- 잃어버릴 당시 언니들 이름, 주소, 전화번호 모두 기억하고 있었음.
- 옆집에 사는 6학년 아이가 살았음. 양숙이 언니라고 하며 잘 따랐음.

연희의 둘째 언니 모습. 연희가 둘째 언니를 가장 많이 닮아 비슷하게 성장했을 것으로 유추하고 있다.

과자 사러 나가서 23년째 돌아오지 않는 딸

"내 머리의 반은 썩은 것 같아요. 잠이나 들어야 생각이 안나지 눈 뜨고서는 생각 안날 때가 없어요. 남들은 잊어버리라고 하는데, 겪어보지 않는 사람은 몰라요. 진짜 찾으면 한 번 꼭 안아보고 싶은데…."

인터뷰 내내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이제는 눈물이 말랐을 법도 한데 연희란 말이 나올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고 했다. 하긴 어느 누가 자식을 잃어버리고 맘 편히 살아갈 수 있을까. 그 아픈 마음을 다시 헤집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연희가 사라졌을 때 상황에 대해 물었다.

"오전 11시쯤인가 과자 사러 나간다고 했던 게 다에요. 그리고는 안돌아왔어요. 그때 꽃자주색 원피스에 노란구두를 신었고요, 머리는 뒤로 묶었고요. 근데 옷차림이야 바뀌는 거니까."

연희가 사라진 뒤 전화 한 통이 왔었다. 어머니가 아이를 찾으러 나가고, 연희 아버지가 전화를 받았는데 여자 목소리라고 했다. 그런데 워낙 아버지 목소리가 카랑카랑하다보니 집에 형사가 와 있는 줄 알고 전화를 끊은 것 같단다.

"전화추적을 하려고 했어요. 마침 옆집에 전화국에 근무하는 분이 계셨거든요. 근데 그게 살인사건이나 유괴사건일 경우에만 추적할 수 있는데, 우리 같은 경우는 돈을 요구하는 게 아니니까 하지 못한다고 하는 거예요. 그때는 왜 이렇게 규제가 많았는지."

연희가 사라졌을 당시 입고 있던 자주색 원피스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 실종아이가 접수되면, 즉각 아이를 찾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때는 달랐다. 누구하나 따뜻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지 않았다. 보육시설에 가도 아이들이 충격 받는다고 보여주지 않았고, 병원에서 사람 하나 확인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뿐인가. 그런 그들을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번은 MBC 프로그램에 출연했어요. 아이 찾아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제 얼굴이랑 아이들 이름, 전화번호까지 다 공개했죠. 그랬더니 사기전화가 오더라고요. 어떤 사람은 전화해서 영등포 롯데백화점 앞에 애기를 데리고 올 테니까 돈을 가지고 오래요. 근데 나가도 안오더라고요. 집에 오니까 어느 다방으로 오래요. 경찰도 끼지 말고 아무도 따라오게 하지 말래요. 근데 나가니까 또 안오더라구요. 몇 번을 그러다가 결국은 제가 장난치지 말라고 했어요. 우리 애 데리고 있으면 밖으로 내놔라, 우리가 찾을 테니까. 그랬더니 그 뒤로 전화가 안와요. 이 세상엔 좋은 사람도 있지만 우리 같이 힘든 사람한테 사기치는 나쁜 사람도 많아요."

결정적인 제보, 그러나 찾지 못하고…

그 뒤로는 연희 찾는 것을 포기하다시피 했다. 방송에 얼굴이 공개되고, 큰 아이들 이름이 공개된 상황에서 아이들이 곤경에 빠질까봐 어머니는 더욱 마음을 졸이고 살았다. 그러나 허송세월만 보낸 건 아니다. 결정적인 제보도 받았다.

"어린이재단에서 담뱃갑에 연희 사진을 넣어준 적이 있어요. 경북 예천인가, 그쪽에서는 환갑집에 가면 담배하고 수건을 답례품으로 준대요. 근데 제보한 아줌마가 안동에 있는 병원에 갔다가 50대 아줌마가 꼬마 아이를 데리고 가는 걸 봤대요. 그래서 늦둥이냐 손자냐 물어봤대요. 그랬더니 늦둥이도 아니고 손자도 아니라고 하더래요. 누가 우리 아들만 둘 있으니까 키워보라고 데려다 줬는데, 자기가 아프니까 맡길 사람이 없어서 데리고 나왔다고 하더래요. 무심코 지나고 집에서 보니까 담뱃갑에 있는 사진이랑 똑같더래요. 우리 애가 입 위가 살짝 들렸는데 그것까지 똑같다고 하더라구요. "

그땐 정말 찾는 줄 알았다. 병원에 기록된 사람들 주소를 받아다가 안동, 영주, 청송, 영양을 돌아다녔다. 차트 나온 사람들은 다 만났는데 결국 찾지 못했다. 워낙 오지이기도 했고, 주소가 정확하게 기재돼 있지 않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연희의 어린시절 사진들

연희가 182로 연락만 하면 찾을 수 있을 텐데

"이젠 연희가 우리를 찾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외국에 버린 핏덩이 아기도 지금쯤 찾고 그러는데, 저는 연희가 20살 넘으면 찾을 줄 알았거든요. 여자는 남자 같지 않아서 집 생각을 많이 하는데도 아직 연락이 없네요. 182만 연락해 봐도 될텐데. 거기 우리 DNA 다 있거든요."

가족들은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친 듯 했다. 연희가 사라진 뒤 어느 순간부터 가족들은 연희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 단어가 얼마나 큰 아픔인지 알기에 다들 마음속으로 연희를 그리워하면서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그렇게 가족들은 가슴에 커다랗고 무거운 이름 하나를 묻어두고 살아왔다. 

"둘째 언니가 특히 연희랑 많이 닮았어요. 어릴 때 사진이 거의 똑같거든요. 이게 둘째 사진인데, 연희가 컸으면 둘째랑 많이 닮았을 거예요."

연희 어머니가 사진 하나를 가리켰다. 둘째가 입사할 때 찍었다던 증명사진이었다. 연희가 컸으면, 둘째 언니랑 비슷하게 닮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언제 연희생각이 많이 나는 지 물었다.

"항상 생각나죠. 날만 궂으면 나 혼자 중얼거리는 거예요. 그러면 애들이 '엄마 왜 그래' 그래요. 그럼 다시 내가 '그래 정신 바짝 차려야지' 그랬어요. 특히 연희 생일이나 실종됐을 때. 그리고 크리스마스, 새해만 돼도 힘들어요. 날이 추워지잖아요. 그러면 더 걱정돼요. 어디서 떨고 있지 않나 하고..."

어머니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바람소리가 세차게 들렸다. 이제 다시 겨울이다. 부디 올 겨울, 이 가족에게 따뜻한 소식이 찾아오길……. (*)

문의 및 제보 : 경찰청 실종아동찾기센터 ☎ 02-182

 

우리 아이를 찾아주세요

#실종아동 #연희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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