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이 말을 걸어오자, 그는 생명을 불어넣었다

시민기자 박관식

발행일 2010.10.06. 00:00

수정일 2010.10.06. 00:00

조회 4,332


뚝도아리수정수센터 수도박물관에서는 현재 정크아트 초청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반쪽이의 고물 자연사 박물관’이라는 주제의 이색 전시회는 최정현 작가의 재활용 조형예술품 145점을 통해서 환경의 소중함은 물론 사물을 바라보는 인식 전환의 기회를 준다.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최정현 표'의 독특한 피조물들은 관람객들을 왁자지껄하고 수다스럽게 만든다. 깔깔거리거나, 그윽한 미소를 짓거나, '우와, 이것 좀 봐' 하며 감탄사를 연발하고 작품에 대해 즉석에서 이야기하느라 여념이 없게 한다. 하지만 몇 분 이내에 가슴 한 구석에는 진한 여운이 자리한다. 작가 최정현 이전에 『반쪽이의 육아일기』의 만화가로 더 많이 알려진 괴짜 입체조형 예술가, 대한민국 대표 정크아트 작가, 최정현 씨를 만나보았다.

말없이 말을 거는 고물의 힘

“이 작품들은 만화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과거의 만화나 현재의 작품이나 두루 시대를 풍자한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만화는 잉크로 그리지만, 이들 조형 작품은 입체로 그린 만화입니다. 소프트웨어 정신은 그대로 살아 있고, 하드웨어만 바꾼 셈이지요.”

최정현 작가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학과를 졸업한 화가로 애니메이션도 제작하고, 어른들이 즐겨보는 시사만화와 생활만화 『반쪽이의 육아일기』를 25년간 집필했다. 나무 재료를 이용한 DIY 생활용품을 제작해 오다가 수년 전부터 고물상, 철공소에서 버려진 산업쓰레기로 입체 조형물을 제작하고 있다.

모든 예술 작품이 다 그렇듯이, 보는 이가 스스로 깨달아야 진정한 예술적 감흥을 맛본다. 작가의 작업 의도나 작품에 담긴 비밀을 미리 알고 감상하면 재미가 반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간혹 너무 지나치게 추상적이거나 생략화한 작품은 외면을 받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최작가의 특작(特作)은 ‘말없이 말을 거는 고물의 힘’에 허탈한, 어떤 신비감마저 든다. 물론 처음에는 난감하다. 그러나 천천히, 아주 은밀하게 작품을 감상하노라면 금세 고물이 말을 건다. 가끔은 웃기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눈물도 찔끔 나오게 하고, 불현듯 주먹을 불끈 쥐게 한다. 곱씹으면 씹을수록 맛이 더해진다.



“만화를 안 그리는 이유도 그놈의 복제 때문입니다. 만화가 복제되는 것이 싫었어요. 요즘 가수들이 콘서트를 많이 하는 이유도 CD 불법 복제 때문이지요. 최근 3D 영화를 만드는 것도 복제를 막기 위한 처방입니다. 3D 영화는 복제가 안 되니까요. 인터넷 깡패 탓이지요. 일테면 제 작품도 3D 만화인 셈입니다. 현장 전시를 하다 보니 복제가 안 되지요.” 최정현 작가는 인터넷을 깡패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푸근한 첫인상과 시골 아저씨 같은 보드라운 웃음 역시 ‘3D적’이다. 마음을 비우고 착한 마음을 가진 고물 동물을 만들다 보면 자연 ‘3D 미소’가 나오는 모양이다. 하기는 그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우랴.

전시실에 들어가면 컴퓨터 자판으로 만들어진 코브라가 몰려드는 마우스들과 혈투를 벌이는 모습이 첫눈에 들어온다. 인터넷 세상의 잔인한 댓글 문화를 풍자한 ‘네티즌’이라는 작품이다. 2004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 출품해 세계적인 반향을 얻었다. ‘네티즌 2’는 손으로 터뜨리는 폭탄, 즉 컴퓨터 자판으로 만든 연막 수류탄에 비유했다. ‘네티즌 3’는 물속에 숨은 악어의 모습이다.



최작가의 작품은 이렇게 풍자와 해학이 번뜩인다. 처음에는 그냥 쓴웃음이 나오다가 슬그머니 감출 수밖에 없다. 자칫 빠지면 정신 줄을 놓칠 수 있는 탓이다. ‘국회의사당’에는 돔 대신에 변기흡착기의 고무 빨대를 올려놓았다. 일부 못난 국회의원들의 머리처럼 아주 간단하다. 민심과 이반된 정치권이 뻥 뚫리기를 기대하는 마음이다. 온갖 흉기들로 무장한 ‘새만금의 게’는 인간의 자연파괴에 대한 복수를 예고하는 듯 섬뜩하다. 미군용 도시락과 철모로 만든 ‘미국을 먹여 살리는 장수거북’도 마음에 칼질을 한다.

“클래식 공부한 사람이 대중음악은 물론 여러 장르의 음악을 좋아하듯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만화는 물론 조각, 공예까지 두루 다할 수 있는, 그런 자유가 좋습니다. 어떤 규격이나 틀에 얽매이면 진정한 예술이 아니니까요.” 최작가는 핸드폰뿐만 아니라 명함, 시계도 없다. 비즈니스에 사용되는 그런 물건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자연환경을 사랑하는 마음도 큰 도움

최정현 작가는 작품 속에 자연 사랑의 메시지도 즐겨 담는다. 사실 자연환경을 사랑하면 할수록, 그것을 파괴하는 인간사회에 대한 풍자와 해학은 저절로 나오게 마련이다. 빨간 소화기로 만든 ‘뜨거운 나라에서 온 펭귄가족’은 북극이 녹아 열 받은 펭귄을 표현한 작품이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이상기온으로 지구의 수난을 꼬집은 것이다. 최작가는 조만간 우리나라에 닥친 아열대성 기온으로 인해 ‘금치’가 된 김치를 고물로 작품화하지 않을까?

벽면에 붙어 진짜 기어가는 듯한 개미가 생동감 있다. 입에 나뭇잎 물고 가는 가위개미로 팥이 원료이다. 숟가락, 젓가락, 포크를 이용해 만든 수십 마리의 ‘플라밍고’도 재미있다. 에티오피아 여행을 가 만난 다리 긴 새이다. 아픈 새, 부상당한 새, 생각하는 새 등 다양한 모습이 인간사와 똑같다. ‘하마트면’은 하마를 표현한 작품이다. 너무 무게를 잡는 바람에 날지 못하는 가부장새, 무거운 인식표를 한 천연기념물 청둥오리도 있다. 도로에서 차에 깔려 죽은 동물을 폐타이어로 표현했다. 칼로 갈비뼈를 만들어 멸종되어 가는 침팬지의 현실도 그렸다. 엄마 침팬지가 죽은 새끼를 보며 슬퍼하는 모습이 생생하다. “사람이 만든, 사람이 사용한 것을 모티브로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요. 작품이 동물 모양을 하고 있지만 그 안에 숨은 이야기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최정현 작가는 최근 타계한 유명 번역가인 이윤기 소설가의 유언에 따른 작업도 겸하고 있다. 고인이 머물던 양평 거처에 마련한 색다른 조형 공간으로 훌륭한 명소가 될 듯하다. 이윤기 선생은 최작가에 대해 “그가 내 눈에는 조물주처럼 보인다. 마음은 한없이 따뜻하되 손길은 한없이 매운 그런 조물주…”라고 평했기에.

최정현 정크아트 초청기획전 '반쪽이의 고물 자연사 박물관'

전시가 열리는 수도박물관은 1908년 완공된 뚝도 제1정수장으로 1989년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72호로 지정됐으며, 2008년 수도박물관으로 재탄생되어 현재 20만명의 시민이 다녀갔다. 특히 이번 전시는 최작가의 조형예술작품을 무려 145점이나 선보이는 데다 다른 전시장에서는 유료로 보아야 할 작품들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기회다. 관람객의 층도 다양했다. 마냥 어린이만 좋아할 줄 알았는데 할머니들까지 찾는다. 성수동에서 온 윤서현(5)의 아빠는 “아이에게 상상의 날개를 달아주려고 왔다”며 시간이 날 때마다 자주 찾아와 반복 학습을 해야겠다고 말했다.

전시장소 : 수도박물관
전시기간 : 10월 28일까지
관람시간 : 평일 10:00~ 20:00, 토‧일‧공휴일 10:00~19:00, 월요일 휴무
문의: ☎ 3146-5938 / http://arisumuseum.seoul.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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