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4.07.11. 00:00

수정일 2014.10.05. 19:37

조회 3,076

(사진 와우서울 leejh4939)

젊음은 젊을 때 낭비 된다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서울톡톡] 버나드 쇼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 반세기 동안 영국 연극사상 가장 오랜 기간 가장 많은 작품을 내놓은 위대한 극작가이다. 하지만 처녀작이자 출세작인 <홀아비의 집>이나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인간과 초인>보다 더 많이 알려진 것이 이른바 '명언'이라 불리며 회자되는 그의 말들이다. 죽기 전에 스스로 지어놓았다는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묘비명(epitaph) 중의 하나일 것이다. 직역하면 "이 주변에서 머무를 만큼 머물다 보면, 이런 일이 생길 줄 알고 있었다" 정도일 터, 누가 했는지는 모르지만 원문보다 한국어 번역이 빛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어쨌거나 버나드 쇼의 '명언'들은 기묘하게 우습다. 일단 해학과 풍자의 작가답게 탁월한 유머 감각으로 삶의 폐부를 찌른다. 그 끝이 제법 날카로워 쿡, 찔리면 훅, 숨이 말려든다. 그리고 한 호흡이 지난 뒤에야 천천히, 그의 작품의 기조를 이루었던 '지성'과 '반란'의 작용으로 비로소 웃음이 터져 나온다.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것 일체를 배격하는 신랄함 때문에 그의 '명언'은 아프고 쓰리기도 하다. 하지만 그 쓴웃음이야말로 삶의 진실을 되짚고 곱씹는 데 필수불가결한 과정이다.

원문은 "Youth is wasted on the young", "젊음은 젊은이들에게 주기 아깝다"로 해석되기도 하는 이 말은 아마도 젊은 시절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장년 혹은 노년의 두덜거림일 것이다. 가수 이상은의 노래 <언젠가는>의 가사와 일맥상통하는,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는 이치다. 그토록 짧은 찰나에 스쳐지나갈 순간임을 미처 알지 못한 채 덧없이 허비한 젊음에 대한 회한이 뼈아프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나는 맹렬하게 젊음을 낭비했다. 가장 예뻤던 그때 가장 어두운 옷을 입었고, 가장 건강했던 몸을 가장 지독하게 혹사시켰다. 웃기보다는 많이 울었고, 미래를 계획하기는커녕 현재를 감당하기 버거워 쩔쩔맸다. 그 원인은 시대의 우울 때문이기도 했지만, 시대를 관통해 젊음을 잠식한 불안 탓이기도 했다. 끝없는 실패에 낙담하고 절망하기 일쑤였다. 내가 얼마나 아름다운 한 시절을 지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젊은 날에 가장 젊지 못했다. 그리하여 다시 <언젠가는>의 가사처럼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며 탄식한다.

언제까지나 잔고가 바닥난 빈털터리가 되어서야 젊음을 깨달아야 할까? 젊은 날에 젊음을 알고, 알뜰하게 그것을 불려나갈 방도는 없을까? 익살스런 예지자인 버나드 쇼는 풀이 죽어버린 젊음들에게 또 다른 '명언' 하나를 남겼다.

"나는 젊었을 때 10번 시도하면 9번 실패했다. 그래서 10번씩 시도했다."

무언가를 탕진했지만 그것이 낭비만은 아니기 위해서는 실패 속에서 무언가를 얻을 때까지 시도하는 길뿐이다. 이러쿵저러쿵해도 그 귀한 것을 펑펑 써댈 수 있는 때는 젊음, 그 찬란한 한 시절이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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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별아 #젊음 #조지 버나드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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