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인의 손끝에서 살아나는 서울의 자연

admin

발행일 2010.05.17. 00:00

수정일 2010.05.17. 00:00

조회 3,781

요세프 뮐르너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가 한 말을 인용하자면 그는 '여러 세계의 사이에서 사는 사람'이다. 음악가들을 비롯한 수많은 예술가들을 배출한 오스트리아 사람이지만 '중국에 뿌리를 둔 말레이시아 여인과 결혼하여' 일찍이 '아시아 문화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발견'했으며, 8년째 한국에 머물며 최근에는 아차산을 그리는 데 온통 빠져 있다. 서울에 사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자는 취지의 '인터뷰 서울人'에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서울 사람, 프란츠 브란드너 씨를 종로의 한 갤러리에서 만났다.

꽃들이 화사하고 연초록의 나무들이 아름다운 5월, 아차산 그림으로 이런 만남을 갖게 해주어 반갑다. 한국에 온 지는 얼마나 되었나?

세월이 참 빠르다. 벌써 8년이다. 1962년 오스트리아의 소도시 슈타이어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줄곧 고향에서 그림 공부를 해왔는데, 우연히 방문한 한국의 매력에 빠져 고향으로 돌아가는 걸 잊고, 아예 정착하고 말았다.

이번 전시회 주제가 ‘자연과의 대화’인데, 한국의 산과 들, 특히 아차산을 소재로 이런 전시회를 기획한 배경이 궁금하다.

자연은 우리의 역사가 말하듯이 모든 위대한 예술가들의 작품 제작에 항상 영감을 얻는 근원이 되어왔다. 예술가란 그의 눈이 자연을 관찰하는 데 훈련돼야 하며 그 자연의 풍부함과 서로 다른 사물이나 자연이 서로 맞물려서 다양한 관계를 연출하는지를 이해하여야 한다. 유럽은 지나치게 자연 환경을 보호하려다 보니 인공적인 냄새가 난다. 한국도 공원 같은 곳은 인공적이지만 산은 손대지 않은 자연의 느낌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한국의 산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영감을 떠오르게 하는, 한시도 떨어질 수 없는 소중한 친구다. 서울 광진구 구의동 집 뒤편으론 아차산이 병풍처럼 자리잡고 있다. 매일 산에 올라 나무와 풀, 돌을 관찰하고 햇살과 그림자가 만들어 내는 조화를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재창조해 낸다. 한국의 소나무를 특히 좋아한다. 줄기가 굽고 가지가 휜 소나무를 보고 있노라면 그림에 대한 아이디어가 샘솟는 느낌이다. 커다랗고 길게 뻗은 웅장한 유럽의 소나무들과는 또 다른 멋이 있다.

구체적으로 그림공부를 어떻게 해왔는지, 학력과 이력을 알고 싶다.

슈타이어 아트컬리지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했고, 오스트리아 스테이르에 있는 예술학교(Art School)에서 수학하면서 세계 유수한 박물관의 다양한 명화들의 전통적 기법을 배웠다. 20살이 되면서는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초상화의 대가 볼프강 슈러(Wolfgang Schuler) 문하생이 되었다. 또한 풍경화가로 잘 알려진 구엔터 프로만(Guenter Frohmann)과 교우하면서 논리적인 원근화 기법뿐 아니라 삶의 경험이 닮긴 그림을 그리는 법을 배우는 기회를 갖게 되어 화가로서의 틀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본인의 화풍은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는지?

후기 인상파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림은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예술가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감정과 느낌으로 반영하고 있어야 한다. 나는 사람과 자연을 사랑한다. 우리는 사람과 문화의 차이점만 보지 말고,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하모니와 통합을 추구해야 한다! 작품을 탄생시키는 것 또한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우리는 명작을 만들기 위해서 다른 모양과 컬러를 구성요소로서 사용한다. 이렇게 예술은 상호이해와 다른 문화의 사람들 간의 평화를 위해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부드러운 이미지가 그림에서도 그대로 느껴진다. 본인의 그림에 대한 컬러를 좀 설명해 줄 수 있나?

자연을 담은 풍경을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나의 특징은 빛과 그림자를 잡기 위해서 사용하는 생생한 붓 터치다. 건물과 자연은 하나의 하모니로 녹아든다. 녹색, 블루, 퍼플 컬러의 그림자들은 따뜻한 톤과 대비를 이룬다. 보통 인상주의 화가들이 어떤 상황의 한 순간을 그림에 담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기법이다.

8년 동안 작품 활동을 하면서 전시회는 몇 차례나 가졌나?

1989년 이후 오스트리아, 한국, 미국 독일, 프랑스 등에서 50여 회의 개인전을 가졌었다. 2002년 이후 한국에 정착하면서도 그림 작업과 전시 등을 위해 유럽 여행을 자주 하였다. 이곳 한국에서도 여덟 번째 전시회다. 평균 1년에 한 번씩은 전시회를 열어온 셈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한국 속담이 있는데, 아직 10년은 안 됐지만 한국의 변화, 서울의 변화를 얼마나 느끼고 있나?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디자인 서울’에 대한 의견도 듣고 싶다.

서울 어디를 가나 아주 깨끗해졌고, 친환경적인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레저 공간도 많이 확충되고 있어서, 시민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지나친 현대화나 급속한 변화는 아무래도 반작용과 마이너스적인 것이 따를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사회 속에서 바쁘고, 자기 일에 열심이다 보니까 진정한 인간적인 관계는 소홀하고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소통과 관계를 위해 좀 더 진지한 시선과 여유가 필요할 것 같다. ‘디자인 서울’ 참 멋지다. 거리를 새롭게 조성하는 공사 현장도 자주 봤다. 가족 중심,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디자인이라면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가족관계가 궁금하다. 자녀들의 교육문제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아내는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이다. 아이들은 3남 2녀에 애완견 ‘보니’까지 모두 여덟 식구다. 첫딸 고2, 둘째 고1, 셋째 중3, 넷째 초등6, 막내 초등4학년이다. 첫딸은 발레를 10년간 해왔는데 키가 좀 작은 편이서 중도포기를 하고 말았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이런 제한이 없는데 정말 많이 아쉽다. 아이들이 많다 보니까, 역시 예능을 키워주는 데 어려움이 많다. 그리고 아이들이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만은 사실이다. 학교에서 방과후학교를 해야 하고, 학원도 가야 하고, 한국 학생들과 똑같다. 성적으로 지나치게 비교를 당하는 것 같아서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작품 활동에 대한 앞으로의 계획은?

처음엔 풍경에 반했지만 이제는 한국 음식과 살가운 사람들이 좋아 한국을 떠날 생각이 없다. 특히 김치찌개와 순두부찌개, 해물탕을 좋아한다. 작품 전시를 위해서 고향에도 자주 가는데 이젠 유럽에 가면 한국이 고향처럼 그리워진다. 전시회 일정때문에 작품 준비는 끊임없이 하고 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림, 문학, 철학에 빠진 것 같았다. 통역을 도와준 유재력 사진작가가 다섯 자녀나 있는데 또 입양까지 하려고 했다고 슬쩍 얘기를 하다 말았는데, 아이들에 대한 욕심인가, 아니면 사랑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작업과 관련한 미술관(觀)에 대해 말해달라.

정말 아이들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창작 행위란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고 제약 받는 나쁜 영향들로부터 탈출하고 잘라내는 하나의 방법이다. 좋은 그림이란 그 그림을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작가와 그 작가가 체험하고 있는 세계와의 그 풍부한 대화를 이해하는 강렬한 경험과 기회를 주는 것이다. 생생하고 찬란한 풍경을, 묘사를 통해 나는 감히 인생은 가치 있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 화가의 그림은 단순한 자연의 묘사보다는 좀 더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평화로움을 수행하는 데 깊이 협력하는 자신의 인생, 삶의 묘사이기도 하다. 인생은 즐거워야 되고 행복하고 평화로워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창작행위란 이런 것을 얻기 위한 한 행위라고 본다. 그래서 예술에 관한 지론은 기쁨과 행복을 추구하고 찾아내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항상 폴 세잔느의 “예술은 프로와 아마추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작품과 나쁜 작품이 있을 뿐이다”라는 말을 상기한다.

못다한 이야기

프란츠 브란드너 씨는 카미유 피사로(Cammile Pissaro)에서 인용한 “모든 것은 아름답고 어떤 형태의 사물도 해석될 수 있다. 겸손함은 다른 사람이 발견 못 하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축복을 받는다”를 메시지로 써 주었다. 미술이라는 전문적인 영역이어서 유재력 사진작가로부터 통역의 도움을 받았다. 유작가는 말레이시아 왕실사진가였으며, 프란츠 브란드너 씨와 죽마고우처럼 절친한 사이다.

시민기자/이은자
hrcclej@hanmail.net
http://blog.naver.com/hrcclej
통역/유재력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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