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귀화한 사장이랍니다
admin
발행일 2010.05.12. 00:00
- 서울에는 언제 왔나? 한국인 아내와의 만남도 궁금하다. 1992년 대학 2학년 때 학비를 벌기 위해 한국의 나염공장에서 일하게 되었고, 1997년 외환위기 때 실직자가 되었다. 가장 어려울 때 지금의 아내 이지형 씨를 만나 2000년 결혼 하게 되었다. 초등생 아들과 유치원생 딸이 있다. (아내 이지형 씨에게 들은 얘기에 의하면 동남아 외국인과의 결혼에 있어 어머니의 반대가 심하였다 한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말이 있듯이 오랜 기간이 지난 후 사위를 인정해 주었고, 그래서 두 사람은 더욱 잘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 인도ㆍ네팔 음식점을 하게 된 이유가 있는지? 네팔에서 식료품가게를 한 경험이 있어 인도와 네팔 향신료를 쉽게 구할 수 있고 무역을 하다 보니 음식점을 하면 좋을 것 같다는 마음을 갖게 됐다. 주요 재료는 현지 네팔에서 수입하여 사용한다. 네팔에는 향신료 나무가 많은데, 1ㆍ2년 된 나무부터 1천년 된 나무에서 추출한 향신료까지 다양하게 음식의 주재료로 사용된다. - 서울에서 식당을 운영하면서 어려웠던 점과 어떻게 해결하였는지 궁금하다.
인도ㆍ네팔 음식이 한국인 입맛에 맞도록 하는 게 어려웠는데, 오랜 동안 실패를 거듭하고 난 후에야 많은 손님들이 찾아오게 되었다. 직접 음식에 대한 맛을 손님들에게 묻고 요리사에게 전달하여 한국인 입맛에 맞추고 있다. - 식당 이름이 ‘두르가’인데 어떤 의미인가? 힌두교 여신 이름으로, 두르가는 ‘당해낼 수 없는 여성’이라는 의미인데, 여덟 개 이상의 팔을 가진, 호랑이를 타고 다니는 아름다우면서도 악마들을 죽이는 무서운 여성전사(女性戰士)다. - 서울일자리플러스센터와의 인연은 언제이고 어떤 도움을 받았나? 현재 두르가는 4개의 직영점이 있다. 종로점이 1호점이고, 의정부, 관철점, 여의도점 순으로 확대되었다. 어느 정도 매출에 대한 확신이 있어 2009년 서울일자리플러스센터를 찾았다. 그곳에서 서울시 중소기업육성자금(청년창업벤처) 5천만 원을 연결 받았고 평소 궁금했던 정보에 대해서도 도움 받았다. 그 자금은 관철점을 개장할 때 투자금으로 요긴하게 사용하였다. 창업을 하거나 사업을 확대하고 싶은 분들은 이곳에서 창업자금과 다양한 지원정책 정보를 함께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 서울의 매력과 고향 도시와의 차이점과 비슷한 점은? 서울과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는 날씨가 비슷하다. 네팔은 아열대 몬순 기후지만 카트만두는 5개의 큰 봉우리로 둘러싸인 분지에 자리잡고 있어 산이 둘러싼 서울과도 비슷하다. - 서울에 생활하면서 외국인으로서 불편한 점이 있다면? 사실 나는 외국인이 아니다. 2005년 한국인으로 귀화하여 ‘서민수’로 개명하였다. 식당 안에서는 외국인이라는 차별이라는 것을 못 느끼지만 시내를 돌아다니면 인종차별을 아직도 받는다. 반말로 말하거나 함부로 대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또한 식당을 하면서 네팔 현지인 요리사를 구하는 게 실질적으로 어렵게 되어 있다.
- 식당을 운영하면서 보람 있는 일은? 식당을 개업하면서 일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어 좋다. 나도 한국에서 실업자로 있던 적이 있는데 일자리를 갖는 게 얼마나 소중한가. 현재 4개 직영점에서 네팔인 15명과 한국인 1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 식당운영이 고국(네팔)에 대한 홍보가 될 것 같은데, 어떤지? 한국인에게 인도카레는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네팔카레는 잘 모른다. 인도와 네팔은 ‘형제의 나라’로 무비자로 자유롭게 교류하고 있으며 종교와 음식 등 대부분이 유사하다. 그래서 한국인에게 잘 알려진 인도음식과 더불어 네팔을 함께 소개하고 싶었다. 현재 회원수가 1,500명 정도 되는 네팔인들의 모임인 ‘주한네팔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온라인이나 정기모임을 통해서 여러 가지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식당에도 자주 네팔인들이 무역과 장사를 하기 위하여 방문하여 상담하기도 한다. -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서울에서 가족들과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아이들과 휴일에 제대로 놀러가지 못했다. 아침 일찍 출근하고 밤 10시~11시에 퇴근을 하기에 아이들 얼굴 볼 시간이 많지 않다. 만약 시간이 되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공원에 가고 싶다. (어린이날에 아빠를 보기 위해서 아내와 두 아이들이 직접 식당에 찾아왔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막내 아이는 가족들이 함께 한 것을 그림으로 그렸다. 완성된 그림을 엄마에게 보여준 것을 보니, 그림에는 아빠는 빠져 있었다.) - 서울이 조금 더 글로벌화가 되기 위해서는? 한국이 경제적인 발전을 이루었지만 예의를 지키는 문화적인 배려는 부족한 것 같다. 양복을 입고 택시를 이용하게 될 때 택시기사들이 흔하게 “어디 가지?”라고 반말로 하여 화가 난 적이 많다. 나라와 피부색을 구분 말고 서울에서 만나는 외국인 모두를 존중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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