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게이트웨이로 문을 열다
발행일 2010.11.01. 00:00
도도한 눈빛, 요염한 미소, 뜬금없이 비듬 털듯 머리를 긁적이는 기이한 행동…. 배경 음악도 가지가지다. 장중한 음악이 있는가 하면 묵직한 비트가 울리고, 은은하게 흐르는가 하면 경쾌한 리듬이 관객을 흥분시킨다. 무대도 다양하다. 대개 단순하고 밋밋한 평상 위를 걷는 패션쇼가 태반이지만, 하얀 눈길을 산책하는가 하면 악어가 사는 강가를 걷는 듯한 느낌도 있다. 그야말로 TV와 잡지에서나 보던 패션쇼를 직접 보고 느끼는 재미가 의외로 쏠쏠하다. 그저 눈으로만 보고 판단하는 줄 알았던 패션쇼의 개념이 일순간에 확 바뀐다.
10월 22일 이정재 디자이너의 남성복을 시작으로 세텍(SETEC)과 크링(Kring)에서 진행되었던 ‘2011 S/S 서울패션위크’가 28일 저녁 지춘희 디자이너의 패션쇼를 피날레로 막을 내렸다. 우연의 일치일까. 2000년 10월 23일 서울컬렉션의 첫 번째 패션쇼를 선보인 지춘희 디자이너가 10주년 기념으로 공교롭게 마지막 무대를 장식했다. 겨우 12명의 디자이너가 첫 출발한 이후 10년간 21회 춘·추계 패션위크에서 896명이 패션쇼를 개최하고, 1197개 업체가 패션페어에 참여하는 등 아시아 최대 패션축제로 성장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을 증명하듯 10주년을 맞은 서울패션위크는 이제 어엿한 미래의 성장 동력으로 자리매김한 느낌이다. 거의 모든 패션쇼마다 좌석이 매진되고 보다 나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디자이너들의 흔적이 엿보였다. 역시 패션을 사랑하는 이들의 축제다웠다. 예매한 관람객이 줄지어 입장하는 모습이 패션계의 밝은 앞날을 예고하는 듯했다. 자신이 스스로 꾸민 스타일링을 선보이는 듯한 예비 디자이너, 모델 지망생, 바이어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러나 이번에 처음으로 개최한 ‘헌정 디자이너 10인 선정 기념식’과 ‘아시아 패션위크 심포지엄 2010’을 취재하면서, 패션업계에 종사하는 이들이 보다 더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주최측에서 해마다 차려 주는 잔칫상에 만족하지 말고, 저절로 기립박수가 나올 정도의 기발한 작품을 선보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결국 감동을 주는 패션 작품은 관객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줄 수밖에 없다. 물론 그럴 경우 현장을 찾은 바이어의 눈에 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디자이너는 그저 자신의 작품을 밋밋하게 보이는 것보다 뭔가 무대를 압도하는 설정도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이상봉 디자이너의 무대가 눈길을 끌었다. 무대가 열리기 전에 한동안 비둘기 날갯짓 소리가 관객을 숨죽이게 한다. 곧이어 은은한 진주색의 의상이 도열한다. 과감한 미니스커트와 앞가슴의 이미지 처리가 도전적이다. 블랙 스커트와 바지 정장, 검정색 원피스에 붉은 단추가 강렬하다. 그런가 하면 여성의 아름다운 몸을 치장한 실루엣이 그림 같다. 마지막으로 두 남녀 모델이 정열적인 판토마임을 선보인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그것은 관객의 몫이다. 이어 무대가 흐려지며 드디어 퍼덕이는 소리만 들렸던 비둘기들이 어지럽게 천장에 날아다닌다. 이 모든 것들이 정교한 틀로 짜여 있다. 기승전결이 담긴 한 편의 연극이다. 참으로 지독한 마케팅이다. 패션쇼의 모든 것을 일일이 신경 쓰는 완벽한 독재자 이상봉 디자이너가 무대, 조명, 오디오, 모델, 의류 등을 모두 조종하는 것이다. 김연아와 레이디 가가도 이상봉의 옷을 입었다. 그는 2002년부터 파리 컬렉션에 참가하며 한글 옷을 만들어 우리 것을 전파했다.
10인의 디자이너 헌정작품 전시도
지난 25일 삼성미술관 리움에서는 10년간 서울패션위크에 참여해 서울패션위크 발전과 국내 패션산업 발전을 주도한 10인의 디자이너 헌정작품 전시회와 기념식이 있었다. 10인의 디자이너는 지춘희, 이상봉, 장광효, 우영미, 이영희, 정욱준, 박춘무, 손정완, 문영미, 김석원이 선정됐다. 패션모델 장윤주가 사회를 보고 오세훈 서울시장, 영국 프린지페스티벌 창시자인 콜린 맥도웰(Colin McDowell), 도쿄패션위크 조직위원회 총괄디렉터 야마자키 켄지(Yamazaki, Kenji), 10인의 헌정디자이너 등이 참석했다. 헌정 전시 의상은 아트 디렉터 서영희와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의상과 공간예술이 접목돼 전시될 예정이다.
“패션이야말로 우리 미래의 진정한 성장 동력입니다. 오늘 10주년을 맞는 서울패션위크가 이처럼 자리를 잡은 것은 여러분의 피와 땀과 노력이 가져온 결실입니다. 앞으로도 이에 만족하지 말고 더 노력하여 서울패션위크의 위상을 높여 주시기 바랍니다.” 오세훈 시장의 확신에 찬 축사에 10인 디자이너들의 눈빛이 더욱 밝아졌다. 그랬다. 미래의 훌륭한 아이템인 패션산업이 이들의 어깨에 달려 있다. 물론 10인의 헌정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이제 막 새로운 꿈을 꾸는 신진 디자이너들도 10주년을 발판으로 새롭게 도약해야 할 것이다.
아시아 최초 ‘2010 아시아 패션위크 심포지엄’ 관심
26일에는 세텍(SETEC)에서 아시아 최초로 서울, 도쿄, 상하이, 싱가포르 등 4대 아시아 패션위크 관계자들이 모여 상호간 패션위크 현황 공유와 향후 협력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2010 아시아 패션위크 심포지엄’을 가졌다. 주제는 ‘라이징 아시아(Rising Asia)’. 심포지엄에는 서울패션위크 조직위원회 원대연 위원장, 일본 야마자키(Yamazaki) 총괄 디렉터, 중국 두 슈왕 씬(Du Shuang Xin) 조직위원장, 싱가포르 캣 옹(Cat ong) 디렉터 등이 참여했다.
“국가 지원이 50% 정도 삭감되는 바람에 자구책이 절실한 실정이다. 파리, 뉴욕 등 해외에서 활동하는, 동경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실력 있는 디자이너가 참석해야 한다. 인터넷을 활용한 패션쇼 중계를 실시하고, 3D를 접목한 방식도 연구 중이다. 앞으로 아시아 국가들의 협업 작업이 필요하다.” 일본의 야마자키는 국가차원의 지원이 아쉽지만 스스로 일어나야 한다는 속내까지 솔직히 밝혔다. 굳이 그럴 것까지는 없는데도 그만큼 솔직하게 털어놓는 데 도쿄패션위크의 절실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이는 곧 서울패션위크의 미래를 간접적으로 보는 듯해 패션업계 종사자들에 좋은 경각심이 되는 말이었다.
“2011년 3월 18일, 상해박람회를 개치했던 장소에서 상해패션전람회를 개최한다. 상해박람회는 7000만 명이 관람할 정도로 규모가 커 관심받는 신흥시장이다. 유행을 선도하는 상해에 한국 패션업체들이 많다. 한중 양국은 섬유, 패션 기술 무역에서 밀접하게 협력해야 한다. 둘이 손잡고 아시아패션산업이 세계에 도전장을 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중국의 두 슈왕 씬은 한국과 중국의 우대관계를 역설했다.
일본과 중국은 프리젠테이션 인쇄 자료를 미리 제출한 반면 싱가포르는 화상자료로 발표했다. “싱가포르의 ‘Blue Print Singapore’는 아시아 패션 익스체인지 역할을 하고 있다. 다문화적인 국가, 다양한 인종 등으로 아시아의 모나코라 불리는 싱가포르가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아시아 상업의 거점으로 파리처럼 바이어들의 원스톱 쇼핑이 가능하다. 한국, 일본, 중국 등이 협업하여 새로운 아시아 패션시장을 만들어 나아가야 한다.” 여성인 캣 옹 디렉터는 빠른 속도로 진행했다. 그에게서 자부심과 우월감이 엿보였다.
“아시아 최초로 ‘떠오르는 아시아’란 주제로 4개국 심포지엄을 마련했지만 시작은 미흡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논점은 곧 미래를 밝혀줄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계기로 서울이 일본, 중국, 싱가포르와 함께 아시아의 게이트웨이가 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아시아 패션이 곧 세계를 바꿀 아이콘입니다.” 끝으로 원대연 위원장은 서울패션위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심포지엄은 처음 개최되었지만 패션업계에 관심이 깊은 이들이라면 이 자리에서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다. 같은 아시아 국가이면서도 묘하게 경쟁 관계일 수밖에 없는 4개국이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세계적인 패션시장 창출에 목을 걸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패션에 문외한인 기자도 여기서 중국, 일본, 싱가포르의 흐름을 눈치 챌 수 있었다. 하물며 전문가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그만큼 아주 중요한 심포지엄이었다는 반증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외부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아주 작은 곳에서 엄청난 수확을 거둘 수 있는 시장이 패션업계인데도. 그런 점에서 ‘10인 디자이너 작품 헌정’과 심포지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숙제는 모두 패션업계 종사자들의 지분이며 몫이다. 아무튼 이번 서울패션위크는 디자이너들의 화려한 무대뿐만 아니라 해외 바이어와 제품 수주, 입점 계약 등 많은 실적을 올려 현실적으로 성장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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