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에 또 나가게 될까봐 두렵다
admin
발행일 2010.04.19. 00:00
조윤주: 어린 나이 때부터 선수생활을 하셨잖아요. 학창시절이 남달랐을 것 같아요. 대표팀 국가대표를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했어요. 친구들처럼 막 모의고사에 목숨을 걸거나 그런 건 전혀 없었죠. 친구들이 공부하면 그냥 따라서 하고, 하기 싫으면 안하고(모두 웃음). 그 때 당시만 해도 아침잠이 많았었는데, 학교 지각하면 운동장 뛰잖아요. 저는 운동 삼아 뛰었어요. 운동을 해야 되는데 학교에서 운동을 시켜주니깐 얼마나 좋아요. (모두 폭소) 고등학교 때는 저뿐만 아니라 운동선수들은 다들 학업을 멀리하게 되요. 아무래도 운동을 하면 피곤하니까요. 중학교 때까지는 그래도 학교에 많이 충실했던 것 같아요. 공부가 아니라, 행사에 많이 참여했었어요. 예를 들면 중학교 합창대회 같은 것 있잖아요. 조윤주: 노래 잘 부르세요?
아뇨. 저 지휘했었어요. (모두 환성) 저한테는 추억인데요. 중학교 2학년 때 저희 반이 최우수반이 됐어요. 그래서 학교 대표로 지구대회 거쳐 대항전에 나갔는데 또 최우수상을 받았고 결국 최종 토너먼트까지 갔어요. 우승하면 한국 대표로 일본에 가는 거였어요. 근데 저는 그때 전지훈련이 기다리고 있어서 우승했어도 일본은 못가는 상황이었죠. 우연치 않게 거기서 딱 떨어지더라구요. 그래도 실컷 운동도 빼먹고 재밌었어요. 조윤주: 학창시절에 국가대표라는 꼬리표가 붙는 것에 대해서 친구들 사이에 반응은 어땠었나요? 아무래도 운동을 해서 싸움을 좀 잘했어요. (모두 웃음) 그냥 힘이 세니깐요. 그리고 제 키가 중학교 때 키예요. 중학교 1학년 때는 제가 제일 컸는데, 3학년 정도 되니깐 중간 정도밖에 안되더라구요. 그런데 남자 애들은 1학년 때 다 서열이 정리되잖아요? (모두 웃음) 이미 정리한 상태이기 때문에, 친구들하고 사이가 좋았어요. 지금도 연락하는 친구들 많구요. 장두현: 20년 대한민국 대표선수 생활, 그건 대단한 겁니다. 선발전을 거쳐 올림픽 대표로 다섯 차례 연속 출전이라는 역사적 기록은 그만큼 노력이나 실력이 있었다는 방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규혁 선수만은 앞으로 8년 정도는 선수로 더 뛸 수 있을 거라는 스케이팅 관계자들도 있는데요. 이규혁 선수가 있어 행복했다는 시민들이 은퇴냐 올림픽 재도전이냐를 놓고 입장을 달리하는 것 같습니다. 4년 후 소치 동계 올림픽 출전에 대해서 지금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스케이팅을 좋아합니다. 운동선수가 운동선수로서 오래 있는 게 제일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는 몰랐어요. 빨리 메달 따서 그만두는 게 제 목표였었는데요. 지금까지 어떻게 보면 실패하면서 메달이 없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올림픽이란 단순히 참가하는 데 의의를 갖게 하는 대회는 아닌 것 같아요. 만약 4년 뒤 올림픽에 도전한다면 또다시 메달을 위해서 준비해야 하는데, 그 때 제가 지금보다도 더 좋은 위치에 있을 거라는 확신이 없어서 쉽게 결정을 못하고 있어요. 제가 만일 내년 시즌에 갑자기 세계신기록을 두세 번 경신하고 후배들이 저한테 1초 이상 진다면 3년 내로 1초 안에 잡힐 일은 거의 없을 테니 그러면 다시 한번 올림픽에 가야겠죠. 허성욱이라는 스키선수가 있어요. 친한 형인데요. 우리나라에서 독보적으로 1등을 했고 전국체전에서 메달을 마흔 개 넘게 따서 한국기네스에 올라가 있어요. 스키선수로는 독보적이었는데 돌연 은퇴를 했죠. 이번에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그 형한테 전화를 했는데 '네가 할 수 있을 만큼 해라. 남들 의식하지 말고…….' 하고 말하더라구요. 그 말이 와 닿았어요. 이준호 쇼트트랙 코치도 갑자기 저한테 전화주셔서 말씀해 주셨고요. 제갈성렬(현 춘천시청 스케이팅 감독) 형님도 그렇게 말씀해주셨고요. 운동을 오래 했기 때문에 보유한 메달이 많은 분들인데도 불구하고 좀 더 할 수 있는데도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저는 그런 부분은 덜 남기면서 은퇴를 하고 싶어요. 조윤주: 동계스포츠를 하기에는 국내 여건이 많이 힘들다고 들었습니다. 지원 부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근데 사실 안 힘든 종목이 어디 있어요. 다 힘들죠. 어렸을 땐 그랬어요. 왜 우린 연습장을 찾아서 매번 비행기를 타고 나가야 하냐고. 근데 안 그런 스포츠가 없잖아요. 그냥 현실에 맞춰 나가는 것 같아요. 또 맞추다 보면 언젠가는 인정도 받는 것 같고. 열악한 환경 얘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겠죠. 좋은 점도 있어요. 저희는 국가대표라는 것 때문에 서로가 뭉쳐서 같이 운동하거든요. 외국선수들은 다 개인적으로 운동을 해요. 개인적으로 다 지원이 되고 돈을 벌 수가 있으니까요. 근데 저희는 국가대표라는 명칭 아래 다 모여 있기 때문에 실력의 차이가 금방 좁혀지고 후배들이 좀 더 빨리 올라올 수 있죠. 단점은 뭐 아시다시피 국내에서 스케이팅을 하는 것 자체가 힘들어요. 경기장 온도가 너무 춥거든요. 겨울 스포츠이긴 하지만 거의 다 실내기 때문에 외국 선수들은 따뜻한 경기장에서 연습을 하거든요. 추우면 아무래도 몸이 굳기 때문에 부상 염려도 있고 변수가 있는데,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훈련을 마음대로 못하게 되는 수준이 되는 거죠. 그것만으로도 우리 선수들이 좀 불리한 입장이죠. 김대진: 다시 예민한 질문을 드리게 된 것 같습니다. 지난 밴쿠버올림픽에서 스피드 스케이팅 500m와 1000m에 출전할 때 모든 언론과 관계자들이 이규혁 선수를 강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았었는데,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았죠. 경기를 마치고 한국으로 되돌아 오려고 짐가방을 꾸릴 때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솔직한 심정을 듣고 싶습니다. 시합이 끝나자마자 한국식당 곳곳을 돌아다니며 술을 마셨어요. 한군데서만 마시면 소문이 나니까 숨어서 마시는 상황이었는데, 1주일 정도 마음을 추스리며 술에 지쳐서 아무 생각이 안 들게끔 그렇게 지냈죠. 가방은 제가 싸지 않아서 잘 몰라요. (모두 웃음)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생각했죠. 한국에서 밴쿠버로 향할 때 분명 무언가를 가져올 거라 생각했고 폐막식도 즐겨야지 했었는데, 이번에도 4년 전이나 8년 전과 똑같은 상황으로 돌아가는구나. 개인적으로는 왜 실패를 했는지 답이 없었어요. 누군가와 이야기할 때도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면 그게 올림픽에서 나한테 돌아올까봐 조심했고, 생활 곳곳에도 신경을 썼어요. 원래는 후배들에게 농담도 자주 하고 욕도 하는데, 매사에 마음 아파했어요. 내가 싫은 소리를 해서 선후배들이 시합할 때 지장이 있지 않을까 마음의 무게를 느끼면서 반성도 하면서……. 이 정도면 올림픽 금메달을 딸 수 있겠다 싶었는데 결국 돌아온 게 없으니 이해가 되지 않았던 거죠. 왜 나에게 허락을 안해주나 혼자 원망도 했고, 반면에 많은 성원과 응원을 받아 얻은 것도 많았죠. 국민들께 감사드리죠. 박민정: 앞으로 선수 생활 이외에 어떤 계획이 있으신지요? 어린이 스케이트 교실을 생각하고 있는데, 경쟁에서 벗어나 스케이트를 즐기는 편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싶은지도 모르겠어요. 학교도 마무리할 생각이고요. 그리고 외할아버지가 피겨스케이팅 선수이셨던 어머니를 위해 만드신 스케이트 회사와 관련해 올해는 비즈니스에도 시간을 할애할 계획이구요. 문명선: 서울 시민들 아니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규혁 선수를 어떤 선수로 기억해주길 바라나요? 아직까지 제가 마침표를 찍은 선수는 아니니까요. (모두 웃음) 계속 진행형이구요. 제가 남은 걸 더 확실하게 마무리해야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직까지는 좀 이르죠. 앞으로도 지켜봐주시면 좋겠어요. 시민기자/김대진, 문명선, 박민정, 장두현, 조윤주(가나다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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