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드라마〈밀회>가 훌륭한 사회물이 된 이유

하재근(문화평론가)

발행일 2014.05.20. 00:00

수정일 2014.05.20. 00:00

조회 3,668

밀회

[서울톡톡] JTBC <밀회>는 김희애의 불륜 드라마로 화제를 모았다. 김희애는 나이를 먹어도 이렇다 할 구설수 하나 없이 완벽한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어서 주부들의 로망과도 같은 배우다. 그런 김희애가 연하남과 불륜을 펼친다고 해서 매체의 비상한 주목을 받았다. 한편으론 지저분한 불륜을 미화시킨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렇게 불륜이란 설정을 놓고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정작 이 작품의 진정한 가치는 다른 곳에 있었다.

작품 속에서 김희애는 재벌가 예술재단의 실무 책임자로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다. 또 그녀의 남편은 음대 교수로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사회지도층 부부의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그 껍데기를 벗기면 그녀의 실상은 참담하다. 그녀는 회장의 여자관계 등 지저분한 일들의 뒤처리를 해주며, 회장 부인의 비자금 계좌를 관리해주고, 회장 딸이 수시로 퍼부어대는 폭언과 폭행을 감수해가며 산다. 그 대가로 연 1억 원 이상의 소득과, 예술 재단 경영진이라는 명예와, 재단이 임대해준 번듯한 집과 외제차 등 화려한 삶을 누리는 것이다. 겉으로 보면 상류층이지만 실상은 재벌가의 '우아한 노비' 신세다.

가진 것 하나 없이 태어난 그녀는 재벌의 후원으로 유학까지 다녀오며 오로지 상류층의 일원이 되겠다는 욕망 하나로 살아왔다. 그런 그녀의 삶에 남자주인공인 연하남 유아인과의 순수한 사랑이 끼어들며 불협화음을 일으킨다는 설정이다. 순수한 사랑이 문제를 일으키는 이유는 상류층을 향한 그녀의 삶, 그리고 상류층 로열패밀리의 실상이 순수와는 거리가 매우 멀기 때문이다. 탐욕의 현실과 순수한 이상의 대립. 그렇게 불륜이 순수한 가치로 묘사되기 때문에 불륜 미화란 비난을 받았던 것인데, 작품을 보면 불륜이 오히려 순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해된다.

작품 속에서 상류층 사이의 관계엔 '인간의 마음'이 없다. 오로지 돈이나 권력, 쾌락만이 그들의 관계를 지탱해주는 힘이다. 김희애 부부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들은 오직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남녀복식조 정도의 의미로만 살고 있다. 이렇기 때문에 아무 계산 없이 찾아온 사랑이, 그것이 비록 불륜이지만, '순수'로 인식될 수 있는 것이다. 아직 세상에 물들지 않은 젊은이가 더욱 선명하게 순수를 상징할 수 있어서 연하남으로 설정됐다.

작품은 김희애와 유아인의 순수한(?) 불륜 멜로에 대비되는 상류층의 추악한 실상을 공들여 묘사했다. 그래야 이들 추악함과의 대비를 통해 순수함이 더 돋보이고, 두 세계 사이에서 흔들리는 김희애의 심리도 잘 그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상류층의 추악한 실상이 묘사됐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아주 훌륭한 사회드라마가 되었다. 바로 이 지점이 불륜을 묘사하는 여느 막장 주말드라마와 <밀회>를 가른 갈림길이었다.

<밀회>는 한국 드라마 역사에 남을 수준으로 상류층의 실상을 리얼하게 그려냈다. 상류층이 우아한 허위로 감추고 있는 욕망의 실상을 파고들었는데, 그건 바로 우리 사회의 민낯이었다. 이 작품 속에서 예술 재단과 학교는 예술 기관이나 교육 기관으로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합집산을 벌이는 군상의 전쟁터일 뿐이다.

학교에서 교수든 학생이든 누군가를 뽑을 땐 회장 부인, 회장 딸, 학장 등으로 파벌이 갈려 이들의 '협잡'을 통해 인선이 이루어진다. 정식 선발과정은 요식 행위일 뿐이고 모든 인사는 사전에 내정된다. 로열패밀리 밑에 평교수가 있고, 평교수 밑엔 학생들이 있는 신분구조를 이루어, 가장 아래에 있는 학생들은 교수의 종과도 같은 신세로 살아야 한다.

<밀회>가 이런 설정을 그릴 때 공교롭게도 서울대 음대에서 파벌 싸움으로 인한 파행 사태가 터져 작품의 신뢰도를 더욱 높였다. 이래서 <밀회>가 단순한 멜로가 아닌 수준 높은 사회물이라는 것이다. <밀회>를 만든 안판석 PD는 병원 상류층을 해부한 <하얀 거탑>으로 한국 드라마의 새 장을 연 인물이다. 이번 <밀회>는 <하얀 거탑>의 계보를 잇는 명작으로 기억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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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 #김희애 #유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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