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렌이 울리면
admin
발행일 2010.02.01. 00:00
분초를 다투는 소방관의 삶이야말로 글을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상황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급박하고 절박한 직업현장에서 글을 쓸 수 있는 정신적 여유를 갖는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약속 시간 불과 1시간 전, 일정에 없었던 기관장 긴급회의 소집으로 인터뷰가 어렵겠다는 갑작스런 연락을 받았을 때도 기자는 하나도 놀라지 않았다. 소방관들에게 스케줄이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들이 언제나 1분 대기조라는 사실을 인터뷰 이전부터 느낄 수 있었다. <어둠 속 촛불처럼>이라는 책을 처음 받아들었을 때, 제목처럼 소방관의 삶, 일상, 화재현장, 구급상황 등 빨간 소방차와 119만 떠올리며 책장을 넘겼다. 하지만 직업에 대한 글보다는 가족, 여행, 고향, 친구, 인생관 등에 대한 다양한 글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가족에 대한 깊은 애정, 문명의 대가로 치러야 하는 고향의 상실, 자연에 대한 시적 묘사, 소방관의 애환, 마음처럼 도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여 겪는 아픔이 거기 있었다. 특히 여소방관들의 맞벌이 고충과 육아와 관련한 마음 고생이 드러난 대목에서는 기자의 젊은 아기엄마 시절이 클로즈업되면서 녹녹치 않은 삶의 여정이 반추되었다. 다행히 이튿날 인터뷰가 성사됐다. 난생 처음 소방서를 방문한 기자의 선입관을 일순간에 무너뜨린 강동소방서의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와 정중하게 맞아주는 임종수 서장. 자리에 앉자마자 출판사에서 싣고 온 책을 받아본 순간의 소감부터 묻기 시작했다. 임종수 서장(이하 임):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온 병아리 같았어요. 장기복역자가 교도소 문을 열고 세상의 문을 활짝 열고 나온 것도 같았어요. 누구보다도 직원들이 자기 이름이 적힌 책을 받아보고 얼마나 긍지와 자부심으로 뿌듯해 할까 생각하니 참으로 보람 있는 작업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책에는 임서장의 작품 ‘가을의 상념’도 실려 있다. 수필이라기보다는 산문시에 가까운 그 글로 혹시 학창시절 문학 소년이 아니었을까 궁금했던 터였다. 임: "과찬이십니다. 오히려 문학서보다는 사상과 철학 쪽의 책들을 더 즐겨 읽었습니다. 그러한 배경들이 사회생활을 잘 헤쳐가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웃음) 물론 학창시절 누구나 그렇듯 한 번쯤 문학을 꿈꾸지 않았을까요?" 여운이 남는 말이었다. 책 편집 총괄 책임을 맡았던 홍보팀 직원 김송석 씨에 의하면 소방서 정면에 있는 ‘너와 내가 살펴보고 함께 하는 안전문화’라는 표어도 서장의 솜씨라고 한다. 그의 독서력과 필력에 대해서는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며 살짝 귀띔을 해주었다. 삶 자체가 시인도 만들고, 수필가도 만든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래서인지 이 책에 실린 작품 한 편 한 편이 참으로 소박하고 진솔하여, 바로 우리 모두의 삶을 투영해 주는 거울 같고, 읽을 거리도 워낙 다양하여 잔칫상에 차려진 갖가지 음식들을 대하는 것 같았다. 대부분의 작품들에서 가족을 향한 사랑과 미안함을 느낄 수 있었으며, 또한 재난현장에 다시 서있는 것 같은, 때로는 악몽 같은 현장을 떠올려야 하는 사건·사고의 글들도 보여 가슴이 찡해왔다. 그런데 그 모든 글들의 근간에는 진한 동료애가 깔려 있었다. 그래서 실제로 가족처럼 잘 지내느냐는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임: “네, 가족처럼 형제처럼 지내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처음 서장으로 부임해 왔을 때는 직원들이 슬슬 피하고 경직돼 있어서 ‘내가 에프킬라냐’며 농담도 했습니다.(웃음) 강동소방서는 3개 과와 5개 동 안전센터, 1개의 구조대가 있는데, 서둘러 보름 동안 200명 넘는 전 직원과 면담을 마쳤어요. 조례석상에서 피력한 것과 개별적인 만남은 다르니까요. 소방업무는 아시다시피 직원들의 신뢰와 화목, 자율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어쩔 수 없이 계급은 형성됐지만, 시민을 위해 서비스하고 봉사하기 위해서는 직원들 한복판에 들어가서 같이 어울리고 위아래 없이 지내야 합니다. 말이나 구호로만 되는 것이 아니기에, 등산, 탁구, 배드민턴 등 체력 단련 동아리 활동을 통해 어울리고 있습니다.” 좀 더 개인적인 질문으로 들어가봤다. 소방관은 언제 됐으며, 처음으로 출동했던 화재현장과 직접 겪었던 일 중에서 가장 처참했거나 혹은 어떤 이유로든 가장 기억에 남는 현장이 무엇일까.
임: “1981년도에 시작했으니까 벌써 30년 가까이 됩니다. 지방의 첫 근무지가 목조건물들이 즐비한 곳이라 출동이 잦았는데, 당시는 화재 현장이 무섭고 두려워 사실 회의가 컸습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대가 없이 최선을 다하는 봉사하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큽니다. 정말 처참했던 현장은…… 2006년 방화에 의한 고시원 화재 사건입니다. 개인의 사소한 감정으로 다수가 무차별 피해를 당했죠. 이런 불행은 다시는 없어야 합니다.” 금년 겨울은 유난히 한파가 심해 화재사고가 빈번하여 참으로 안타까웠다. 폭설로 도로사정까지 좋지 않아 어려움이 더 컸을 것 같다. 이럴 때 ‘24시간 잠들지 않는 안전 파수꾼’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얼마나 시민들에게 안정감을 주는가. 하지만 시민들의 협조가 부족하여 발생하는 대형사고도 많다고 한다. 또한 소방관들의 직무가 흔히 불 끄는 일로 알려져 있지만, 각종 재난과 재해 등의 구조작업, 예방 작업 등까지 광범위하다고 들었다. 소방서에서 다루는 업무의 반경이 어디까지일까?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임: “네, 겨울철 사고가 참 많습니다. 화재 현장 가까이 아무리 빨리 달려가도 이면도로가 막혀 있거나, 아파트 정문이 좁아 진입하기 어려울 때는 정말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장애인, 치매노인과 같이 스스로 감지하지 못하거나 대피가 어려운 상황들이 또한 가슴 아프게 합니다. 특별점검을 수시로 하고 안전교육도 실시합니다만, 더 나은 제도와 시민들의 관심, 주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번 아이티와 같은 천재지변이 아닌 대부분의 안전사고들은 후각, 촉각이 예민한 사람이 있다면 어느 정도 예방할 수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갈수록 증가되고 있는 독거노인의 안전을 위해 그 동안 무선 페이징 제도를 실시해 왔는데, 지금은 '유비쿼터스 안심콜 시스템'이 도입되어 많이 보급되고 있습니다. 줄여서 「U-안심콜」 시스템은 질병자, 노약자 등 본인이나 대리인이 평소에 전화번호, 질병, 보호자 연락처 등 신상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등록해 놓으면 119 신고시 해당 번호로 등록된 정보를 관할 소방서의 출동 구급대에 자동으로 통보하는 시스템입니다. 출동대가 신속한 응급처치 및 이송, 보호자 통보 등에 활용하여 응급환자의 소생률을 높이자는 것입니다.”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기자는 그 동안 너무나 안이한 삶을 살아왔다는 생각이 순간순간 스쳤다. 우리 사회에서 소방관은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헌신하는 인물로 존경을 받고 있다. 특히 소방차를 갖고 놀기 시작하는 아이들에게는 소방관이란 최고의 영웅이다. 반면, 그에 합당한 대우는 아직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직에 오래 몸담은 대선배로서 앞으로 소방관을 꿈꾸는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았다.
임: “네, 여론조사 결과 희생과 봉사로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공무원으로 뽑힌 것은 사실입니다. 그에 대한 책임도 그에 못지 않게 큽니다. 실업자에서 단순히 벗어나기 위한, 안일한 사고로 소방관의 길을 걷겠다는 생각이라면 절대 안 됩니다. 소방업무에 대해 자세히 알고, 확실한 철학과 직업관, 목표의식으로 철저히 무장돼 있어야 합니다." 그저 고마웠다. 임종수 서장은 물론 직접 만나지 못한 수많은 소방관들에게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전하는 마음으로 인터뷰 기사를 선물하고 싶었다. ‘신뢰받는 소방상 구현’, ‘칭찬이 아닌, 질책도 좋습니다’라는 근무방침도 눈에 들어왔다. 이들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끊임없이 노력하고 계속 움직일 사람들이다. 그리고 다시 <어둠속 촛불처럼>이란 책에 생각이 미쳤다. 한 권의 수필집은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기에는 너무 작은 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 한권으로 강동소방서의 분위기와 미래상은 거듭날 것이다. 이번 수필집에 참여하지 못한 직원들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제2집 발간을 생각하고 있는지 마지막으로 물었다. 임: "강동소방서 가족들의 신변잡기에 가까운 작은 책 한 권으로 너무 거창한 포부를 밝히는 것 같아서 쑥스럽습니다만, 책에서 어느 정도 교감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업무상 거칠고 어떤 면에서 강압적이기도 한 직장 분위기가 조금은 부드러워지고 화기애애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전 근무지 송파소방서에서는 학생들 졸업앨범처럼 직원들의 앨범을 만들었는데요. 다음에는 그런 직원 앨범을 제작해볼까 합니다. 가족 같은 화목한 분위기가 바로 소방업무를 성공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관건이지요.” 시민기자/이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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