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부터 3시까지, 종로 거리를 책임집니다

admin

발행일 2010.01.20. 00:00

수정일 2010.01.20. 00:00

조회 4,340

소리소문없이 깨끗해진 거리, 환경미화원들의 하루 동행 취재

눈이 펑펑 내린 연초의 어느 이른 아침, 종로구 환경미화원들이 상주하는 휴게실을 찾아갔다. 이미 아침조는 작업 현장에 투입된 뒤여서, 밖으로 찾아나섰다. 그리고 박영민(50) 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야간 투시 방한복에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하고 비, 수레, 부대(마대)자루, 쓰레받이를 들고 담당구역을 청소하고 있었다. "날씨도 추운데 수고하십니다"라고 인사를 건네자 반가이 맞아준다. 그러나 몇 마디 인터뷰를 신청하자 짐짓 사양한다. 자신을 공개하지 않고 조용히 맡은 바 일과를 진행할 뿐이다. 오후 3시 교대조를 만나기까지 그의 부지런한 손놀림은 쉼 없이 계속 됐다.

박씨가 맡은 지역은 종로 1가부터 종로 2가를 거쳐 종로 3가까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구 MBC사옥부터 탑골공원까지다. 상당히 광범위한 지역이다. 이동인구도 하루 200만 가량이 넘는다는, 서울에서도 가장 복잡하고 힘든 구역이다.

그의 일과는 오전 5시에 시작된다. 출근해서 8시까지 청소, 휴게실에서 아침식사 후 1시간 휴식, 9시부터 12시까지 다시 작업, 점심식사, 그리고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오후 작업을 한다. 가끔 밤 10시까지 특근을 할 때도 있다. 물론 가장 부지런히 움직이는 주된 작업시간은 시민들의 왕래가 한산한 이른 새벽이다.

1차로 길가의 쓰레기를 쓸고, 모으고, 담고, 들고를 반복한다. 재활용 분류와 공공봉투에 넣는 작업까지 마치면 수거팀이 도착하여 가져가고 바로 이동한다. 보행자 위주로 인도와 횡단보도, 정류장 근처, 간선도로까지 남은 공간을 한 치의 오차 없이 깨끗하게 정리하고 나면, 2차로 포스터 제거 작업에 돌입하고, 3차로 공공장소 오물처리에 나선다. 옆에서 지켜보니 그는 말 그대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환경미화원들에게 더운 여름철과 추운 겨울철은 복병이다. 특히 금년 겨울은 일반청소에 제설작업까지 겹쳐 할 일이 늘어났다. 밤새 내린 눈이 10cm 쌓여 시민들이 출퇴근 시 큰 불편을 겪었던 때, 그는 생업에 종사하는 주민을 돕기 위해 머리에서 김이 나도록 구슬땀을 흘리며 동묘 지하철 역사와 근처의 제설작업에 최선을 다했다. 물론 폭설 때 작업은 당연히 힘들었다. 하지만 그만큼 보람과 긍지도 컸다고 한다. 내 손을 거쳐 깨끗하게 된 거리를 시민들이 이용한다는 자부심이 그를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인 것이다.

그래도 애로사항이 왜 없겠는가. 그는 주민들이 음식 쓰레기를 넣을 때 제발 물기를 제거해 줄 것을 부탁했다. 자기 집 앞 처리 정도는 해줬으면 하는 당부도 덧붙였다. 시민의식이 예전보다 많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규격봉투를 안 쓰거나, 분리수거가 안 된 상태로 봉투를 마구 버리는 사례가 발생한다. 그래서 가끔 그는 수거 시 흔적을 추적하여 쓰레기를 버린 주민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경우도 있다.

환경미화원들을 난감하게 하는 상황은 대개 야간에 벌어진다. 특히 새벽에 출근하자마자 밤 사이 누군가 게워낸 토사물을 치우는 일은 가장 어렵고 힘들다. 쓰레기 무단 투기 단속을 하거나 계몽을 할 때는 모욕을 당할 때도 많다. 그럴 때마다 그는 상대방의 입장으로 돌아가 이해해보려고 노력한다. 쓰레기에 대한 의식 계몽과 참여정신을 일깨우는 일 또한 그의 직무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려운 일들은 늘상 있지만 더 큰 기대와 희망을 갖고 하루 일과를 마친다.

올해는 그에게 좋은 일이 많을 것 같다. 4월이면 군에 간 아들도 제대를 한다. 박영민 씨도 1학기만 마치면 방송통신대 학사모를 받는다. 사업실패 이후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며 안정을 찾은 지도 오랜 세월이 흘러갔다. 종로 거리는 그를 가정에서는 성실한 아빠로, 직장에서는 동료의 도우미로 바로 세워준 소중한 곳이기도 하다. 무더운 여름에는 썩은 음식냄새에 코를 막아야 하고, 추운 겨울에는 얼어 붙은 쓰레기를 긁어내야 하지만, 그는 작업을 끝낸 거리와 앞으로 작업할 장소 사이에 서서 깨끗하게 청소된 길을 보며 만족스런 미소를짓는다. 저 길을 시민들이 걸어가겠지 생각하면 흐뭇하다.

기자가 자리를 떠나기 전, "추운 날씨에 현장에 동행하느라 수고하셨다"면서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수건으로 씻는 그의 모습에서 미래의 서울에는 보다 밝고 아름다운 날들이 도래할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솟아났다. 해가 석양의 산마루를 넘어가고 있었다.

시민기자/이종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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