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찍어냅니다

admin

발행일 2009.12.29. 00:00

수정일 2009.12.29. 00:00

조회 3,767

달력 안에는 일 년의 시간이 담겨 있고, 시간이 있는 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생겨난다. 도대체 새로운 날을 만드는 사람은 누구이며 어떤 기분일까? 어쩌면 시적이기도 하고 어쩌면 꽤 무거운 표현이 되겠지만, 새로운 날을 만드는 사람은 너무도 평범한 우리의 이웃이었다! 이제는 영화보다도 인쇄문화거리로 더 유명한 충무로 명보극장 뒷편, 백여 개 인쇄업체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풍경으로 들어가 보았다. 연말 분위기로 들뜬 요즘 저녁이지만, 인쇄거리는 불을 밝히고 있는 곳이 많았다. 그 중 한 업체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를 만났다. 김수환 씨다.

일 년 중 석달이 가장 바쁜 달력 공장

"연중 1,200~1,500건 진행을 합니다." 달력업체에서 한 해 만드는 달력의 종류가 이렇단다. 기껏 달력인데 뭐가 그리 많겠냐고 하겠지만, 그 종류도 탁상형에서부터 시작해서 벽걸이용, 화보용 등이 있고, 사이즈도 규격 외에 개인별로 원하는 사이즈까지 포함하면 수 백, 수 천 가지가 된다. 게다가 최근에는 개인별, 업체별로 표현하고 싶은 사진, 효과 등 요구들이 다양해져 한 업체가 제한된 시간 내에 1,500 종류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지, 시간만 허락한다면 무한히 만들 수 있는 것이 또 달력이라고 한다.

"10월 말부터 12월 초까지가 달력업체들에겐 가장 바쁜 날이죠." 과거에는 달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년 전부터 준비해야 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인쇄기술이 상당히 발전해 그보다 늦게 시작해도 일주일 정도면 원하는 물량을 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작업기간도 6~7월에서 10~11월로 이동했다. 달력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좀더 여유가 생긴 것이지만, 달력을 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촉박해진 것이다. "한창 바쁠 때는 집에도 못 들어가죠." 김수환(59세) 씨는 바쁠 때면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밖에 집구경을 못한다고 말한다. 이럴 때에는 가족들과 떨어져 매장에서 저녁을 보내고, 다시 아침이면 문을 여는 생활을 반복하게 되지만, 달력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그에게는 즐겁기만 하다. 그리고는 가게 뒷편에 위치한 조그만 쪽방을 보여줬다. "이곳이 바쁠 때 제가 쉬는 안방이죠."(웃음)

달력은 인생과 같습니다, 작은 실수 하나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죠

"한 번은 낚시를 '낙시'라고 써서 달력을 망친 적이 있었죠." 김수환 씨는 낚시광인데, 관련 달력을 만들다가 맞춤법을 틀린 적이 있다. 이처럼 실수라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에서 나타난다. 이럴 때는 새로 찍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따붙이기라는 작업을 통해서 잘못된 글자를 하나하나 수정하는 작업을 한다. 달력의 경우에는 한번 주문할 때 500건에서 1,000건을 하기 때문에 재인쇄보다는 이런 따붙이기 작업이 많아지게 된다. "이럴 때마다 인쇄에서는 작은 실수 하나가 엄청난 결과를 가지고 온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그것은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라고. 그는 살면서도 너무 자만하지 말고 하루하루를 소중히 해야 하고, 잘못이 있더라도 모두 다 처음부터 시작할 수는 없으니 그때부터라도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올해도 사고를 하나 쳤는데, 엉뚱한 날에 붉은 칠을 했습니다." 김수환 씨는 올해 하루하루씩 뜯는 달력을 만든 적이 있는데, 날이 하루하루 연결되다보니 일요일인 광복절 앞 날을 붉은 색으로 표현했다. 그 달력은 수십 명이 교정을 일곱 번을 본 달력이었는데도 그랬으니, 허탈한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올해 쉬는 날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만들어서 그렇게 됐나 봐요."(웃음) 달력의 특성상 작업물량이 한두 달 사이에 몰려 들어오다 보니 아무리 조심해도 한두 건의 실수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단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만의 달력을 찾아서

"인쇄는 문화산업의 근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쇄인 김수환 씨는 올해로 이 분야에서 일을 한지 27년이 다 되어간다. 과거 다른 일을 하던 그는 인쇄의 매력에 빠져서 이 분야로 전업을 했고, 인쇄야말로 문화산업의 기반이라고 믿고 있다. 다만 이를 산업화하는 데 자본 및 시설 등 준비할 것이 많아 이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고. 게다가 충무로 일대가 재개발이 된다고 하는데 그 모습에 대해서도 다양한 시각차가 있고, 생각들도 모두 다르기 때문에 요즘은 조금 혼란스러운 것이 사실이란다.

"앞으로는 자신에게 맞는 달력이 더욱 많아질 겁니다." 그는 달력과 오랜 시간을 보내다보니 그 흐름도 조금씩 보이는 것 같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기성품 달력에 자신의 로고만을 금박이나 은박으로 넣는 경우가 많았으나, 최근에는 그 안에 들어가는 사진은 물론이고, 날짜에 기념일까지 표시해서 제공하는 달력이 많아지고 있다. 올해 김수환 씨도 이런 달력을 1,000건이 넘게 만들었다. 이렇듯 최근 차별화를 추구하고 개성에 따라서 자신만의 달력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고, 그렇게 독특한 달력을 만들어 주는 업체들이 상당히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가게에는 손님들이 붐벼 김수환 씨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들으면서 정말 소중한 나만의 달력은 결국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아닌 일상을 소중하고 빛나는 하루로 만드는 것도 결국은 모두 스스로의 몫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하루하루를 아끼고 소중히 사용하는 모든 사람은 달력공장의 주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시민기자/김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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