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화 외국인들도 한국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다는 것 보여주고파
나는 두 개의 이름을 갖고 있다. 본명은 비노드 **, 한국 이름은 서**. 히말라야 산맥의 관문인 망티에서 태어나 대학교 2학년 때인 1992년 학비를 벌기 위해 한국 에 왔다. 말도 안 통하고 아는 사람도 없는 타국에서의 생활은 힘들었지만 첫 직장인 나염공장에서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도 피해가지 못했던 1997년 외환위기는 나를 실직자로 만들었다. 다행이라면 일거리를 찾던 중 우연한 기회에 지금의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리게 된 일이다. 모든 것이 아내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행운이 시작된 것이.
결혼 후 한국인으로 귀화해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된 나는 낮에는 직장에 다니고 저녁에는 네팔에서 들여온 스웨터, 모자, 가방 등을 파는 무역을 했다. 밤낮으로 일하기를 8년. 드디어 소원을 이루게 되었다. 종각역에 인도네팔음식전문점을 개업한 것이다. 개업 당시에는 인도네팔음식을 전문적으로 하는 식당이 많지 않아 반응이 좋았다.
1호점이 어느 정도 성공궤도에 오르자 의정부에 2호점을 열었다. 한국에서는 음식점이 지점을 내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2개 지점 매출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인 것이다.
그래서 더 키워보자는 생각에 프랜차이즈사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아직도 낯선 한국에서 어떻게 사업 확장과 운영을 해야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다만 인터넷에만 의지해 검색을 하다가 서울 일자리플러스센터를 알게 되었고 아내와 함께 바로 찾아갔다.
한국인이지만 외모는 외국인인 나 같은 사람이 한국에서 창업을 하고 성공적으로 운영하기는 쉽지 않다. 그것을 아셨는지 일자리플러스센터 상담사는 창업의 A부터 Z까지 하나하나 세세히 가르쳐 주셨다. 게다가 정부와 지자체의 경영지원 정책도 소개해주고 실제로 서울시 중소기업육성자금(청년창업벤처) 5천만 원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까지 했다.
금보다 더 귀한 이 지원금으로 3호점을 개업했는데 일자리플러스센터의 마케팅 및 홍보 컨설팅을 받아 높은 매출을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외국인 요리사의 국내 취업을 위해 법무부출입국관리소와의 연계 컨설팅을 받아 4호점을 오픈했다.
“나마스떼~ 어때요? 인도 커리는 한국 카레와는 맛이 좀 다르죠?” 아직 한국어 발음이 서툰 나를 보며 손님들이 엄지손가락을 세워줄 때, 그 때 가장 행복 하다. 한국의 평범한 여성이 네팔 출신 노동자와 결혼했다는 것만으로 한동안 주목을 받기도 했는데 우리 부부는 이제 4개의 프랜차이즈 음식점 사장이 되었다.
내 고향 사람들의 희망이었던 ‘코리안 드림’을 이룬 만큼 이 사업체를 성공적으로 꾸려 귀화 외국인들도 한국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소원으로 네팔에도 서울일자리플러스센터와 같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의지가 될 수 있는 곳이 생기기를 바라본다.
서**(남, 40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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