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에도 궁합이 있다!
한현주
발행일 2011.08.26. 00:00
술 마신 뒤 아세트아미노펜 두통약은 사절
금요일이다. 직장인에게 금요일은 다음 날을 걱정하지 않고 저녁시간을 즐길 수 있는 황금같은 기회다. 저녁시간을 즐기는 방법에는 우아하게 문화생활을 하는 것도 있겠지만, 뭐니뭐니 해도 일주일 동안 부대낀 동료들과 쌓인 얘기를 나누면서 한잔 거나하게 빠져보는 것도 스트레스를 풀어낼 수 있는 괜찮은 방법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난 다음 날 아침의 두통이란! 매번 후회하며 반성하면서도 또 다시 유혹에 넘어가는 것이 직장인의 생활습관 아닐까.
두통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약은 역시 아세트아미노펜이다. 일반의약품으로, 광고도 많이 하는 품목인데, 혹시 이 광고를 기억하시는지? “커피 뭐 드실래요?”에도 “아무거나”, “점심 뭐 드실래요?”에도 “아무거나”. 그러나 두통약만큼은 꼭 이 약으로 골라먹는다는 광고. 그러나 한잔 즐긴 다음 날 찾아오는 두통에 이 약만큼은 절대 사절할 일이다.
아세트아미노펜은 간에서 분해된다. 술도 간에서 분해된다. 술을 해독하느라 한참 힘쓰고 있는 간에게 아세트아미노펜까지 얹어준다면 간이 불시에 화를 낼 수도 있는 일이다. 조금 무섭게 얘기하면 간독성이 나타난다는 얘기다. 실제로 외국의 사례에서는 아세트아미노펜을 남용한 환자에게서 심각한 간 손상이 나타났다는 보고도 있다. 묵묵히 혼신의 힘으로 우리 몸을 지켜주는 간을 도와주는 아주 작은 한 가지 방법은 음주 후 두통에는 아세트아미노펜을 피하는 일이다.
한잔 하고 난 다음 날 나타나는 것이 어찌 두통뿐이랴. 속쓰림에 울렁거림에 세상이 다 뒤집어지는 것 같을 게다. 이때 쉽게 손이 나가는 것이 제산제와 위장약 종류. 그러나 만일 자주 속이 불편하다면 술 때문이려니 넘어가지 말고 한 번쯤 정확한 진단을 받고 처방을 받아서 제대로 된 치료를 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우선 급한 대로 가까이 있는 제산제를 복용하려고 한다면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물을 구해서 복용하도록 하자. 바로 옆에 있는 시원한 콜라와 주스가 당겨도 조금 참아야 한다. 제산제는 위산을 중화시키고 복통을 완화시키기 위해 사용하는데, 과일주스나 콜라는 위의 산도를 높이기 때문에 효과적인 약효를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오렌지주스는 제산제에 포함된 알루미늄 성분을 체내에 흡수시킬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위산 분비를 줄여주는 위궤양 치료제를 처방받았다면, 카페인이 함유된 커피, 콜라, 차, 초콜릿 등은 저 멀리 옮겨두자.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나른하고 무거운 몸과 정신을 추스른다고 피로회복용 드링크제를 마시는 것도 당분간 피하도록 하자. 피로회복용 드링크제에 들어 있는 카페인은 일반 커피의 카페인보다 효과가 더 강하다. 지쳐있는 위장을 더 이상 힘들게 하지 말자.
변비약, 유제품 먹은 뒤 최소 2시간은 지나 복용하자
음주습관이 장에도 영향을 미치면 장 운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설사와 변비가 반복될 수도 있다. 변비약을 먹어야 할 정도라면 반드시 물로 복용하자. 변비약은 대장에서 작용하는 약이기 때문에 강산성인 위를 통과할 때는 녹지 않고 알칼리성인 대장에서만 녹아서 효과를 나타내도록 보호막으로 둘러싼 장용정이라는 특수한 제형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우유와 함께 복용하면 우유가 위산을 중화시켜서 알칼리성 환경으로 만들어버리므로 약이 대장에 도달하기 전에 녹아 버릴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약효가 잘 나타나지 않거나 위장에 자극을 일으킬 수 있다. 만약 빈속을 달래기 위해 우유나 치즈, 요구르트 등의 유제품을 먹었다면 최소한 2시간 정도 기다렸다가 변비약을 복용하는 것이 좋다.
술을 마신 후에는 숨어 있던 여드름이 솟아나는 수가 있다. 여드름 치료 목적으로 테트라사이클린 계열의 항생제를 복용하고 있다면 우유 종류는 피한다. 우유속의 칼슘 성분이 항생제 성분과 결합해서 작용을 방해하니까.
고혈압치료제, 알레르기치료제 복용 중에 자몽 주스는 피하자
상당히 거나하게 마신 다음 날이지만 두통도 없고 속쓰림도 없고 정신도 말짱하여 함께 했던 동료들에게 약간은 미안한 감이 있는 경우라도, 뭔가 찝찝한 마음에 비타민이라도 보충해야 할 것 같고 혹은 몸에 좋다는 차 한 잔이라도 마셔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 수 있다. 몸에 좋은 것들이라고 해서 녹차로 비타민을 복용하지는 말자. 차 종류는 비타민과 가장 맞지 않는 음식이다. 녹차나 홍차에 함유된 탄닌 성분은 비타민이나 기타 약물 성문을 흡착해서 체내로 흡수되는 걸 막는다. 여기서 잠깐! 탄닌 성분은 철분의 흡수도 방해한다. 빈혈을 예방하고 건강한 혈색을 유지하기 위해 철분제를 먹는 여성이라면 되도록 차 종류는 마시지 않는 것이 좋겠다. 그보다는 철분 흡수를 도와주는 새콤한 주스와 함께 하는 것이 좋다.
주스 얘기가 나왔으니 자몽 주스에 대해서 한 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자몽 주스 혹은 그레이프푸루트(Grapefruit) 주스는 감기에도 좋고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되는 식품으로 알려져 있는데, 어떤 약품의 경우 흡수를 더 빨라지게 하는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우리가 약을 먹을 때 바라는 효과를 얻으려면 약물이 몸 안에서 일정한 농도를 유지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정한 용량을 복용한 후에 약마다 나름대로 일정한 속도로 흡수되고 배설되도록 해야 한다. 만일 어떤 이유에 의해서든지 흡수 속도가 빨라지면 일시에 많은 양이 흡수되고 결국 몸안의 농도가 우리가 바라는 수준보다 높아질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과량의 약품을 복용한 것과 같은 효과가 나타나서 예상치 못했던 부작용이나 독성반응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 일어날 수 있는 약물은 고혈압치료제, 우울증치료제, 알레르기치료제, 고지혈증치료제 등 다양하므로 평소에 어떤 종류든지 치료제를 복용하고 있는 경우라면 음주 후 갈증이 있더라도 일단 자몽 주스는 피하는 것이 좋겠다.
이렇게 복잡한 여러 가지를 따지고 생각하느니, 이번 금요일 저녁에는 주류를 배제한 우아한 문화생활로 즐기는 방법을 한번 계획해 볼 일이다.
글/한현주(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약제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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