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 자전거 싣고 또 다른 세상으로

admin

발행일 2009.11.10. 00:00

수정일 2009.11.10. 00:00

조회 5,057

평소에 운동 부족을 실감하며 휴일만이라도 부족한 운동량을 채우고 싶었던 터에 얼마 전 장기양 시민기자는 드디어 중고 자전거를 한 대 구입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욕심이 생겨났다. 동네 주변에서 가볍게 운동하는 것도 좋지만, 일요일이나 휴일에는 시범적으로 지하철에 자전거를 싣고 탈 수 있지 않는가. 그는 급기야 주말마다 도심으로 여행하는 즐거움에 빠져들었다. 주차시설이 부족해서 차를 가지고 나올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걸어서 돌아보기에는 조금 넓은 지역이라 생각됐던 종로구 일대의 관광지와 그밖의 작고 소소한 풍경들을 보는 재미가 꽤 쏠쏠했다. 그의 안내를 따라 가보자. 누구라도 하루쯤 서울시내의 관광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중랑천 따라 노원역까지, 그리고 지하철로 시내 진입하기

자전거를 타고 중랑천으로 나간다. 자전거로 가면 어떤 세상이 손짓 할까 무척 궁금하다. 어렸을 적 고향에서 4~5Km를 걸어다닌 기억도 있고, 70년대 중반에는 허허벌판이던 여의도광장에서 씽씽 자전거를 타며 천국의 느낌을 가졌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덧 이륜차나 승용차에 떠밀려 사양길에 접어들었던 자전거. 최근에 다시 자전거 인구가 늘어나는 추세라니 반가운 일이다. 오늘 이 길만 해도 오토바이나 승용차를 타고 지나던 낯익은 거리인데 자전거 핸들을 잡으니 새로운 기분으로 나아갈 수 있다. 마치 미지의 세계로 빠져들 것만 같다.

여느 때라면 그냥 지나쳤을 공사에도 시선이 머문다. 김창호(61세) 씨는 자전거도로 마무리 공사 때 쓰는 콤비로라를 작동하고 있었다. 애로사항을 여쭈어보니 가로수 등 장애물이 있어 현재 부분공사밖에 할 수 없는데, 올 연말까지는 마무리할 예정이란다. 마들역 근처에서는 마침 자전거를 타는 김매화(52세) 씨와도 잠시 얘기를 나눴다. 이제 자전거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중랑천으로 해서 저 멀리 군자교까지 다녀오는 길이란다. 그에게서도 자전거로 새로운 세상을 만난 듯한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일요일이라 스쳐가는 차량도 많지 않아 자전거도로를 찾아 페달을 밟는다. 드디어 노원역에 도착한다. 출근 때 마을버스에서 내려 올라가는 낯익은 계단들이다. 그런데 오늘은 이곳 가장자리에 설치된 자전거경사로에 자전거 바퀴를 놓고 올라간다.

노원역사에서는 장애인과 자전거가 통과하도록 설치된 개찰구가 반갑게 맞이한다. 한 번 더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 지하철 끝부분에서 지하철을 기다린다. 휴일에 운영되는 자전거전용칸은 전동차의 앞뒤에 위치하고 있다. 약간은 호기심도 생기고 긴장도 된다. 지하철이 도착하자마자 자연스럽게 지하철로 빠져 들어간다. 이미 알려진 바대로 자전거를 고정하게끔 안전벨트가 준비되어 있어 누구에게 묻지 않아도 만사 오케이!

한성대입구역에서 내려 다시 자전거 페달을 밟고 서서히 시내로 향한다. 차량 통행이 많은 도로를 피해 자연스레 인도로 나아간다. 그리고 서울 관람이 시작된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짚풀생활사박물관. 평소에도 버스로 많이 지나치며 눈도장 찍어 두었던 곳이다.

박물관과 궁궐 순례, 그리고 종로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볏짚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설립한 박물관으로는 세계에서 유일하다는 짚풀생활사박물관(문의: 743-8787~8)은 2001년 청담동에서 현재의 혜화역 근처로 이전하였다. 박물관 앞 마당에 자전거를 놓아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보니, 마침 2층에서 현대작가 9인이 펼치는 짚풀 전통의 재해석전(展)이 열리고 있었다. 1층에 자리 잡은 한옥관에서는 초등학생들이 전통놀이 체험학습을 하고 있었다. 지게를 짊어지고 못보던 놀잇감에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아이들을 지켜보니 즐거워졌다. "우리 것은 역시 좋은 것이야"라는 소리 한가락이 귓전을 울리는 듯하였다.

다음으로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인 창경궁길을 따라 종로4가로 향한다. 여기서 피곤하다 싶으면 잠시 대학로로 나와 마로니에 공원 일대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도 자전거여행의 지혜일 것이다. 창경궁길에는 연말까지 고궁로 보도블럭 공사를 마무리 한다는 문구가 눈에 띈다. 여기저기서 공사가 한창이다.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를 이용할 경우, 사람이 있으면 보행자가 놀라지 않을 정도로 서행으로 가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안전이 먼저다.

종로4가를 지나치려는데 발걸음이 멈춰졌다. 거리의 이발사다. 머리를 깎기 위해 줄서서 기다리는 분들이 있어 처음에는 봉사활동인가 싶었지만, 가까이 다가가 대기하는 분에게 여쭈어 보니 3,000원, 분명 유료다. 64세인 이발사는 여기서 일한 지 20여 년이 되었단다. 거리의 이발소의 영업시간은 아침 9시부터 오후 3, 4시까지. 종묘 공원에는 노인들의 천국이라 할 정도로 여기저기 서성이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어르신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쩜 20년 후의 우리들의 자화상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지하철 종로3가역 주위에는 노점상이 즐비하다. 지나는 행인들도 많고 간혹 외국인들도 눈에 띈다. 그 중 자전거를 타는 젊은 남녀를 만났다. 자영업을 하는 박경륜(33세) 씨는 응봉동에서 자전거를 빌려서 청계천을 경유하여 왔단다. 그는 청계천 초입까지는 어려움 없이 왔는데 청계천 들어서면서부터 중간중간 가로수가 있어 불편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쾌한 표정만은 밝게 빛나 보였다.

시내에 나들이 왔는데 운현궁을 빼놓을 수 없지 싶어 들러봤다. 운현궁의 수직사는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던 흥선대원군 치하에서 궁에서 파견된 많은 경관들을 관리하던 곳이었다. 사랑채로 쓰기도 했던 노안당에도 들린다. 파격적인 인사정책이나 중앙관제 복구, 서원철폐, 복식개혁 등 국가주요정책을 논의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어서 회갑잔치나 각종 중요행사 때 사용하는 노락당을 지난다. 조선시대 여성들의 주생활 영역인 안방으로 대표되는 곳이자 운현궁의 주 건물이기도 하다.

벼르고 벼르던 창덕궁에도 들어가본다. 중간에 휴식 겸 해서 마지막 입장 시간인 4시 15분을 맞추기 위해 조금 기다려야 했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자연과 조화를 이룬 가장 한국적인 궁궐에 속한다는 창덕궁은 1997년 12월에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궁궐 해설사의 친절한 설명에 많은 분들이 공감을 하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도심의 코스는 얼마든지 다르게 잡을 수 있다. 덕수궁에서 오전11시, 오후 2시, 오후 3시 30분에 시작해 40분 정도 소요되는 왕궁수문장 교대의식을 지켜보고 싶다면, 덕수궁을 둘러보고 나서 시청 앞을 지나 국립고궁박물관으로 향하면 좋을 것 같다. 찬란한 조선왕실의 문화재를 두루두루 감상할 수 있어 가슴 뿌듯할 것이다. 더욱 반가운 것은 국립고궁박물관이 한국박물관개관 100주년을 기념하여 다음달 12월까지 무료관람을 실시한다는 소식이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자전거투어 해보기. 아직 자전거길은 완벽하지 않다. 차도를 지나다보면 운전자들이 약간 위협적으로 운전을 하기도 한다. 도심에서는 자전거도로가 없는 경우 가능한 한 인도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자전거를 가지고 나온 사람들도 보행자와 운전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 정도의 매너는 지켜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견해다. 거리에 자전거를 가지고 나왔던 시민들도 자전거타는 시민들 스스로가 가능한 한 야간에 밝은 색의 옷을 입고 야광타이어를 준비했으면 한다는 얘기를 전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도심 자전거투어는 감행할 만하다는 것이다. 훨씬 새로운 세상이 와 닿을 것이다. 한가지 더. 자전거여행은 갑자기 무리하면 오히려 부담이 간다. 신체적인 리듬도 생각하며 홀가분하게 유유자적 다니는 것이 좋겠다. '빨리빨리'보다는 느릿느릿 사는 라이프스타일이 자전거와는 더 어울리니 말이다.

■ 경사로 등 자전거 시설물 우선설치 역사

구 분

역 명

서울메트로

(20)

1호선(3)

시청, 종로3가, 동대문

2호선(7)

을지로입구, 한양대, 건대입구, 성내, 신천, 교대, 당산

3호선(5)

구파발, 옥수, 압구정, 매봉, 수서

4호선(5)

노원, 길음, 한성대, 동작, 사당

서울도시철도

(18)

5호선(5)

광나루, 오목교, 여의도, 광화문, 올림픽공원

6호선(5)

월드컵경기장, 새절, 고려대, 석계, 화랑대

7호선(5)

노원, 중화, 뚝섬유원지, 내방, 온수

8호선(3)

몽촌토성, 석촌, 송파

시민기자/장기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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