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감독으로부터 직접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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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9.10.08. 00:00

수정일 2009.10.08. 00:00

조회 6,149

서울대 건축학 박사와 하버드 디자인대학원 석사, 그리고 현 경기대 대학원 교수. 대한민국 건축제 초대작가전과 안양 공공예술프로젝트 작가. MBC 신장개업과 러브하우스 코너의 진행자. 상아탑과 대중매체, 기획자로서의 이론적 무장과 예술가로서의 창의로운 성취, 그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천의영 총감독의 특이한 이력은 곧 오늘부터 열리는 서울디자인올림픽2009의 색깔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번 행사는 디자인이 재미있고 돈도 된다는 사실을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장으로서 시민들에게 성큼 다가올 것이다. 그와의 인터뷰는 즐거웠다. 마치 수업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도록 만드는 재능을 가진 교수님께 한 시간 가량 특강을 듣는 것 같다고 할까? 서울디자인올림픽 개막을 나흘 앞둔 지난 5일, 이준형 시민기자가 막바지 작업에 분주한 천의영 총감독을 만나 10월 한 달간 열릴 시민 모두의 축제 속에 조금 먼저 빠져 봤다.

이준형 시민기자(이하 이):서울디자인올림픽 총감독 이전에 MBC 러브하우스와 신장개업의 디자이너로 우리에게 더 익숙하다. 이전의 경력이 행사를 꾸려가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 궁금하다.

천의영 총감독(이하 천): 그때가 1999년이다. 딱 10년 전이다. 그러고 보니 10년마다 주기적으로 공공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오는 것 같다.(웃음) 그때의 경험이 이번 서울디자인올림픽 2009의 메인 행사인 ‘디자인 장터전’과 ‘월드디자인마켓’을 착안하게 만든 가장 큰 밑거름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신장개업 디자이너로 활동한 당시도 IMF 위기의 여파 때문에 지금처럼 경제가 어려웠다. 내 과제는 사정이 어려운 가게들을 적은 비용이지만 기발한 아이디어를 통해 디자인도 바꿔주고 질 좋은 서비스까지 설계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바꿔주고 싶은 것들은 너무 많은데 항상 예산이 문제였다. 때문에 시장에서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냄비나 주전자, 그릇 등을 디자인에 접목시키고자 노력했다. '마켓'이란 개념은 디자인에서는 굉장히 중요하다. 예산을 확보하고 그 예산 내에서 새로움을 창조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 모두들 불황이라고 얘기한다. 이런 시기에 왜 ‘디자인’인가?

천: 올해 초 '뉴욕타임스'에 게재된 ‘디자인은 불황을 사랑한다(Design Loves a Depression)’란 기사를 인용하고 싶다. 경제가 어려울 때 오히려 디자인을 통해 만들어낸 차별성이 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고, 호황이 된 이후에도 다른 경쟁상대보다 더욱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내용인데, 한마디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좀더 가까운 예로, 우리나라가 오늘날 IT강국이 된 이유가 뭘까? 바로 다양한 기술개발과 동시에 많은 국민들이 이를 사용해주었기 때문이다. 디자인 분야 또한 마찬가지다. 어려운 시기에 오히려 많은 시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이에 자극받은 기업들이 관련 투자를 활성화시킨다면 앞으로 우리나라의 디자인 산업이 발전하고 디자인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이: 그런 의지가 서울디자인올림픽 2009의 핵심 메시지인 ‘디자이노믹스(Designomics)’에 담겨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천: 맞다. 디자이노믹스란 디자인(design)과 경제학(economics)의 합성어다. 디자인과 경제의 결합을 통해 지금의 위기를 돌파하는 계기를 만들자는 뜻이다. 이를 실제 현장에도 반영하기 위해 기업과 단체 등이 참여한 전시장에 '디자인 장터전'과 '월드디자인마켓'을 열고, 우리가 발굴한 좋은 디자이너와 제품이 투자처를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모전에 참가한 좋은 인재에게는 취업의 기회를 제공하는 등 다방면의 노력을 통해 디자인이 실제로 경제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이: 디자이노믹스 외에 이번 행사의 가장 큰 특징이 있다면 무엇인가?

천: 전문가만의 축제가 아닌, 시민과 디자인이 어떤 형식으로 만나느냐를 고민한 시민참여형 축제라는 점이다. 이는 분명 새로운 디자인 축제의 모델이다. 세계 어느 곳의 디자인 관련 행사를 찾아봐도 대부분 디자이너가 중심이고 일반인은 접근이 쉽지 않다. 서울디자인올림픽은 회를 거듭하면서 세계를 대표하는 시민디자인축제로 거듭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이: 전시회, 컨퍼런스, 페스티벌, 공모전의 각 부문별로 어떤 행사를 주목해야 하는가?

천: 일단 전시회는 ‘디자인 장터전’과 ‘월드디자인마켓’을 주목하라. 전시회와 장터의 개념이 접목된 새로운 모델을 발굴하고, 우리가 발굴한 디자인이 얼마나 경제적 부가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여러 방법을 통해 시민 여러분께 공개할 예정이다. 디자인이 우리 실생활과 얼마나 밀접한 것인지를 느끼실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컨퍼런스는 시민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구성한 ‘시민 디자인 포럼’을 살펴보셨으면 한다. 이원복, 한젬마, 하재봉 등 우리에게 친숙하지만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사고를 통해서 작품과 생각에 깊이를 가지고 있는 분들을 연사로 선정했다. 페스티벌은 'i-DESIGN 놀이터'를 주요 행사로 들 수 있다. 보조경기장에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놀이터를 설치하고, 에어돔에서는 아이들이 즐기면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즐길 수 있는 디자인 체험물들을 마련했다. 마지막으로 공모전에는 ‘혼류와 통섭’을 주제로 선정한 130여 개의 작품들을 전시한다. 어렵게 들리지만 '통섭'이라는 개념은 요즘 떠오르는 화두로서, 많은 분야가 기존의 단일화 형태에서 복합화한 형태로 변화해 간다는 의미다. 이를 통해 서로 경계를 허물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다.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혼류와 통섭을 통해 디자인 속의 다양한 분야들이 서로 도움을 주면서 새로운 제품과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있다. 올해 공모전에는 이러한 최신 경향을 보여주는 좋은 작품들을 선정했다.

이: 다양하고 매력적인 행사를 열심히 기획하고 준비한 것 같다. 다만, 지난해에 지적된 잠실주경기장의 동선 문제, 전문가들의 참여 문제 등이 올해에도 여전히 우려된다.

천: 일단 동선 문제부터 이야기하자면, 근본적으로 잠실주경기장은 스포츠 전용시설로 설계됐기 때문에 전시장으로는 적합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올림픽경기장으로 쓰인 건물이기 때문에 보존가치는 있지만, 단순한 보존에 머물고 시민들이 계속 사용해주지 않는다면 결국 도시의 시설들은 언젠가는 낡은 폐물로 버려지기 십상이다. 때문에 이를 복합문화시설로 변경해 지속적으로 '재생'시키는 것은 도시를 사는 우리들에게 의미 있는 일이고, 그런 차원에서 올해도 잠실주경기장을 다시 쓰고 있다.
문제는 이 건물의 가장 큰 특징이 3층과 1, 2층이 완전히 분리돼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지난해 3층에 마련된 전시를 본 뒤 고생해서 경기장 한 바퀴를 돌아도 다른 층의 행사장으로 가는 통로가 없다는 불만이 제기됐다. 올해는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행사를 최대한 1층으로 집약함과 동시에 1층과 2층 스탠드 사이를 연결하는 ‘O-loop'란 동선을 만들어 전시장 내부에서 관람하면서 자연스럽고 편리하게 이동이 가능하도록 했다. 동선을 해결하는 것뿐 아니라 시각적인 재미를 더욱 살릴 수 있는 효과를 낳으리라 생각한다.
또한 올해는 주요 주제전이나 행사에 전문가들로 위촉한 부문별 감독제를 도입해 행사의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였다. 폴 켈리, 피터 쿡, 승효상, 김영세 씨 등 국내외 유명 디자이너와 건축가들을 컨퍼런스에 주요 연사로 초청했는데 이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것도 이례적인 이벤트라 할 수 있다.

이: 지난해부터 서울시는 디자인올림픽 행사 개최 외에도 곳곳의 거리와 건축물, 조형물에 디자인적 요소를 도입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진행 중이다. 이런 일련의 변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천: 긍정적이다. 세계디자인수도 선정 이후 공공디자인 분야에서의 변화뿐만 아니라 디자인 산업을 육성시키기 위한 노력이 진행 중이라는 것도 고무적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들이 어떤 과정을 거치고 어떤 방식으로 공유될 것인가에 대한 공감은 조금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정책을 마련하고 집행하는 시의 입장에서는 재정적인 문제나 시간 등의 여러 이유 때문에 바로바로 성과가 나타나길 기대하는 편인데, 디자인 같은 분야는 하루아침에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마치 적어도 10년 정도 오랜 시간을 두고 지켜보아야 그늘을 만들어주는 느티나무처럼, 지속적이고 오랜 관심을 통해 발전과 성과가 나타난다. 앞으로는 관련 정책을 만들고 집행할 때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투자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공감하는 장이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마지막으로 시민 여러분께 당부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천: 사실 우리나라의 디자인 환경은 굉장히 척박하다. 외국 유명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실력 있는 친구들도 일이 너무 힘들고 보수도 적어 결국 디자인을 그만 둘 정도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결국 좋은 인재들은 다 떠나고 우리나라는 디자인 명맥조차 잇지 못하게 될 것이다. 디자인 학도들에게 꿈도 심어주고, 앞으로 잘 하면 좋은 무대가 기다리고 있음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미래란 없다. 때문에 서울디자인올림픽과 같은 행사가 필요한 것이다. 그동안 많이 준비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가득해도 그 속에 참여하는 주인들이 하나가 되서 완성도를 높여주는 과정이 배제되면 안 된다. 서울디자인올림픽 2009의 주인인 시민 여러분이 많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이번 행사에 참여해주길 바란다.

시민기자/이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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