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의 차이가 이거구나!
발행일 2014.04.04. 00:00
[서울톡톡] 수많은 개발로 인해 역사적인 건축물과 인물들의 흔적들이 많이 사라진 서울. 하지만 그 안 어디엔가는 보석처럼 문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옛 집터가 남아 있고, 시비가 서 있는가 하면 문인들의 삶을 기리는 문학관들이 만들어져 있다.
서울시는 지난 3월부터 문인들이 살았을 당시의 역사를 이해하고,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국제펜클럽한국본부에서 주관하는 <서울시민과 함께 하는 서울 시(詩) 문학기행>이 지난 3월 27일 첫 문학기행의 문을 열었다. 문인들의 삶과 그들이 일궈낸 문학의 궤적을 찾아보는 의미 있는 여행이 시작된 것. 이번 문학기행에는 김경식 시인의 해박하고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이 곁들여졌다.
한용운의 고택 성북동 심우장과 이태준 고택 성북동 수연산방
지난 3월 27일, 지하철 시청역 5번 출구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였다. <서울시민과 함께 하는 서울 시(詩) 문학기행>의 첫 번째 일정에 참가하기 위한 문인들과 시민들이 속속 약속 장소로 모인 것. 44명의 일행은 <서울과 인연이 되었던 시인의 고택 탐방>이란 테마에 따라 첫 탐방 장소인 성북동 심우장으로 이동했다. 심우장으로 오르는 길 오른편엔 '만해의 산책공원'이 얼마 전 조성됐다.
성북동에 있는 심우장은 만해 한용운 시인이 1933년부터 1944년까지 10년간 살다가 임종한 집이다. 심우장의 '심우'는 소처럼 우직하게 불성을 찾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조선총독부와 마주하기 싫다'며 북향으로 집을 지은 일화로도 유명하다. 총독부 반대 방향으로 집을 지어 살며 '우리 국토의 모든 곳이 감옥인데 무슨 불을 피우느냐'며 불도 피우지 않고 생활했다고 한다.
죽는 날까지 일제와 어떤 타협도 하지 않았던 이런 지조 탓에 한용운 시인의 심우장을 찾는 답사객들은 절로 숙연해진다. 이곳에서 만해 한용운은 첫 장편소설 '흑풍'을 집필하기도 했다. 조국 해방을 눈앞에 둔 1944년 세상을 떠난 시인은 서울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혔다.
심우장의 지척엔 상허 이태준 고택이 있다. 소설가 이태준 고택의 이름은 '수연산방'이다. 그가 월북하기 전(1933~1946년)까지, 14년간 이곳에서 살았다 한다. 직접 집을 짓고 '수연산방'이란 현판을 걸었으며, 아름다운 누각에는 '문향루'라는 현판도 걸려 있다.
상허 이태준은 정지용, 이효석 등과 구인회를 결성하여 한국 근대문학을 주도하며 왕성한 집필활동을 펼쳤다. 이 집은 단편 <달밤>, <돌다리>, 중편 <코스모스 피는 정원>, 장편 <왕자 호동>, <황진이>를 집필한 문학의 산실이기도 하다. 남한에서 그의 문학적 분위기를 유일하게 느낄 수 있는 집 수연산방은 상허 이태준의 외증손녀가 1999년부터 찻집으로 운영하며 고택을 보존 중이다. 아담하고 아름다운 고택은 찾는 사람들이 참 많은 곳이 됐다.
박인환의 옛집과 한용운 옛집 만해당, 그리고 김지하의 싸롱 마고
이번 탐방 중 가장 안타까웠던 곳은 북촌 원서동 134-8번지 박인환 시인의 옛집이었다. <세월이 가면>, <목마와 숙녀>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박인환 시인이 경기중학교를 다닐 때 기거했던 집이다. 현실 참여시를 쓴 리얼리즘 작가이기도 한 시인이 유년을 보낸 그 집은 폐허가 된 채 세월을 고스란히 뒤집어 쓴 모습이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애송되고 있는 박인환 시인의 시를 생각하면 관리의 소홀로 방치된 시인의 옛집이 무척 안쓰럽게 느껴졌다.
박인환 시인의 옛집 바로 앞엔 김지하 시인이 운영하던 '싸롱 마고'가 있다. 이 싸롱에 드나들던 문인들도 지척에 박인환 시인이 유년시절을 보낸 집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한다. 표지석과 안내문이 전혀 없기 때문이란다.
북촌 계동 43번지에는 한용운 시인이 살던 집, 만해당이 있다. 한용운 시인은 3.1 운동 직 후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1918년 9월 창간된 잡지 <유심>도 이곳에서 발행되었으며 만해는 이 잡지 발간으로 독립운동의 근간을 마련했고 이곳에서 불교계의 3.1운동 참여를 주도했다. 한용운 시인은 <유심>지를 통하여 세계정세의 흐름을 널리 알리려 하였다. <유심>은 요즘도 발행되는 잡지라고 한다.
서정주의 고택 관악구 남현동 봉산산방
성북동과 북촌에서 서울과 인연이 되었던 시인들의 고택 탐방을 마치고 문학기행 참가자들은 서정주 시인의 고택을 방문하기 위해 관악구 남현동으로 이동했다.
관악구 남현동 1071번지 11호에는 미당 서정주 시인이 30년 간 살았던 고택이 있다. 이 집은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웅녀가 됐다'는 단군신화의 전설을 바탕으로 서정주 시인이 '봉산산방(蓬蒜山房)'이란 당호를 지었다 한다. 1970년부터 2000년 시인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약 30년간 이곳에서 살았다. 이곳은 당시 많은 문인들이 방문하였던 한국 문학의 명소였음에도 시인이 세상을 떠난 뒤, 약 10년간 빈 집으로 방치되었었다. 서울시는 '봉산산방'의 복원 사업에 10억 원을 지원하였고 2011년 4월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이곳은 <질마재 신화>, <떠돌이의 시>, <산시> 등의 시집이 탄생한 산실이기도 했다. 야외 마당은 방문객들의 쉼터로 조성되어 있고, 1층 전시장에는 시인의 옷, 모자, 가방, 지팡이 등이 전시되어 있다. 2층 전시장에는 그의 서재가 복원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의 친일 논란과 전두환 지지 축시와 발언 등이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생전에 1000여 편의 시를 15권의 시집에 담아 출간했던 시인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시를 쓴 현역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 했던가...문학 기행의 깨달음
"문인들이 살았던 집과 그들의 삶터를 확인해 가는 여정은 작가의 생애와 작품들을 역사적인 상황에서 찾아가는 의미 있는 여행입니다. 이번 문학기행은 서울 안에 있는 시인들의 고택과 최근 세워진 문학비, 문학관 등을 탐사하면서 집주인들의 평상 시 삶을 가늠해 보고, 그들의 문학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시인들의 면면을 살피고 느끼는 기회인 것입니다."
다양한 문학적, 역사적 지식을 바탕으로 흥미로운 해설을 곁들인 김경식 시인은 행사의 취지를 이같이 밝혔다. 하루 종일 진행된 탐방 일정에 지쳤을 법도 하건만 참가자들은 개인적으로 찾아보기 쉽지 않았던 곳들은 돌아 본 소감을 이야기했다. '무척 의미 있었던 시간'이었음을 밝혔을 뿐 아니라 더 많은 시민들이 참가했으면 좋겠다고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았다.
서울 곳곳에 있는 문인들의 자취들을 확인하고 문학 작품 탄생의 역사적 배경을 되짚어 가노라면 삭막한 서울은 역사와 문학의 보고인 소중하고 친숙한 공간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올해 <서울시민과 함께 하는 서울 시(詩) 문학기행>은 7회에 걸쳐 예정이다. 1회 참가 인원은 40명이고 행사 참가비는 1만 원이다. 신청 방법은 (사)국제펜클럽한국본부 홈페이지(www.penkorea.or.kr)에 약 1~2주 전에 신청 공지가 나고, 사무처(02-782-1337~8)로 문의 하면 된다. ˙ 서울과 인연이 되었던 시인의 시비 탐방(4.17) ˙ 서울 북촌과 서촌에서의 문인들의 흔적을 찾는 탐방(5/22) ˙ 서울과 인연이 되었던 시인의 묘소 탐방(6/19) ˙ 서울과 인연이 되었던 유적지 탐방(8/28) ˙ 김수영 시인 시비 및 문학관 탐방(9/25) ˙ 김시습 시인과 천상병 시인 문학비 탐방(10/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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