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도시 속 고요한 강남의 숲

시민기자 시민리포터 이나미

발행일 2013.01.23. 00:00

수정일 2013.01.23. 00:00

조회 3,051

[서울톡톡] 땅값이 가장 비싸다는 서울시 강남. 그 한가운데 7만2,000여 평의 조용한 숲이 있다. 그 숲은 지하역 명칭으로 익숙한 '선정릉'. 선정릉은 조선의 제9대 왕 성종(成宗)과 계비 정현왕후의 선릉(宣陵)과 그들의 아들이자 제11대 왕인 중종(中宗)의 정릉(靖陵)을 합쳐 부른 명칭이다.

조선의 518년 역사가 그대로 살아있는 조선왕릉은 지난 2009년 6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조선왕릉은 각 시대의 문화가 담아있는 건축양식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자연과 어우러진 문화유산이다.

그중 선정릉은 2호선 선릉역, 분당선 선정릉역(9호선 12월 계통 예정) 등의 대중교통이 발달되어 접근성은 가장 두드러진다. 반면 선정릉은 주변 도로와 가까이 있다. 이로 인한 공해와 먼지 때문인가 석물들 곳곳이 닳아 있었다.

강남의 건물들은 왕릉을 감싸는 병풍석

리포터는 최근 개통한 분당선 선정릉역에 내려 답사를 했다. 역 안을 보면 일부 구간은 여전히 마무리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제 막 개통된 역이라 2호선 선릉역과는 대조적으로 이용객들이 많지 않은 편이었다. 출구 바깥은 예상 밖으로 한산했다. 같은 강남권이라도 이곳은 조용한 편이었다. 단, 고개를 들어서 봐야 할 만큼 높은 고층건물들이 곳곳에 들어서 있어 정말 이곳에 왕릉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출구를 나와서 몇 분 걷다보니 실제로 이 고층 건물들과 도로, 주택들은 선정릉과 매우 가까이 있었다. 건물 안에서 창문을 열면 선정릉이 자세히 보일 정도였다.

왕릉 주변에 둘러싸여 있는 선정릉 주변 건물들은 마치 왕릉과 왕릉 숲을 감싸는 한 폭의 병풍석 같았다. 그 중 왕릉 옆에 가까이 있는 한 호텔은 입구에 '축 선정릉 개통'이라는 현수막을 붙여놓고 조용하게 개통 축하를 알렸다. 바로 이 호텔을 뒤로 선정릉이 보였다.

강남의 숲이자 아픔이 있는 왕릉 '선정릉'

한편 제9대 왕 성종은 세조의 맏아들 의경세자(후일 '덕종' 으로 추존)와 현대 사극 콘텐츠에 자주 등장하는 '인수대비'로 유명한 수빈 한씨(후일 '소혜왕후')의 둘째 아들로 1457년 경복궁에서 태어났다. 세조의 뒤를 이은 제8대 왕 예종이 재위 14개월 만에 승하하자 정희왕후(세조의 비)의 명에 따라 1469년 13세에 왕위에 올랐다.

성종은 재위 중 경국대전을 반포하여 조선의 법전체제를 완성하였다. 특히 성종의 재위기간은 태조 이후 닦아온 모든 체제와 기반을 완성시켰으며 조선 전기의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성종은 1494년 재위 25년 1개월 만에 38살의 나이에 승하한 뒤 이곳 선릉 동쪽 언덕에 묻혔다. 함께 묻힌 계비 정현왕후 윤씨는 1462년 우의정 영원부원군 윤호의 딸로 태어났다. 1473년 숙의가 되었으며 1480년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가 폐위되자, 이듬해 왕비로 책봉되었다. 소생으로는 중종과 신숙공주가 있으며 1530년 69세에 승하하여 선릉에 안장되었다.

제11대 왕 중종은 1488년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1494년 진성대군에 봉해졌다. 1506년(연산군 12년) 박원종, 유순정 등이 반정을 일으켜 이복형이자 제10대 왕인 연산군을 폐위시켰으며, 당시 진성대군은 이들 공신들에 의해 18세의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재위기간 중 조광조 등 새로운 학자를 등용하여 나라의 기틀을 확립하고자 현량과를 실시하고, 향촌자치를 시도하였다. 또 이때 서원(書院)이 설립되기 시작했고 주자도감(鑄字都監)을 설치하여 활자를 개량하여 많은 책을 펴냈다. 중종은 1544년 재위 38년 2개월 만에 57세의 나이로 승하하였으며 1545년(인종 1년) 경기도 고양에(현재는 제1계비 장경왕후의 희릉)에 묻혔으나, 제2계비 문정왕후에 의해 1562년(명종 17년) 선릉의 동쪽 동남향 언덕으로 천장되었다. 문정왕후는 사후 정릉에 중종과 함께 묻히려 했으나 한강의 범람으로, 홍살문까지 물이 들어오는 흉당으로 판명되어 결국 태릉(泰陵)에 묻혔다.

선정릉은 도심에 위치해 있으며 '강남 개발'이라는 시대적 분위기에도 굳건히 왕릉의 위엄과 자연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아픔이 있는 왕릉이기도 하다. 선정릉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들에 의해 도굴을 당한 적이 있는데 도굴된 두 왕릉은 시신이 없어지고 주변엔 불태워진 재만이 남았었다고 한다. 당시 조정(제14대 선조)은 시신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결국 시신은 찾지 못했고, 탄 재들만을 수습해 다시 왕릉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때문에 선정릉은 조선왕릉 중 유일하게 왕의 시신이 없는 왕릉이기도 하다.

선릉은 동원이강릉(정자각을 중심으로 하나의 울타리 안에 두 개의 능이 존재하는 구조) 형태로 왼쪽 언덕이 성종의 능이다. 능 울타리 바로 옆에는 도로와 인도가 있고 차량들이 지나간다. 이 때문에 성종 능의 석물들을 유심히 보면 먼지와 매연으로 곳곳이 닳아 있다. 계비 정현왕후의 능은 오른쪽 언덕에 위치해 있는데 성종 능이 외부에 노출된 구조하면 정현왕후의 능은 숲으로 둘러싸여 다소 구석지고 한적한 느낌이 든다.

정현왕후의 능을 지나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조성된 길을 따라 한참을 걸으면 중종의 정릉이 보인다. 정릉은 단릉(왕 혹은 왕비 능이 단독으로 있는 형식)으로 성종의 능과 능침 구조가 거의 유사하다. 심지어 능 옆에 도로와 건물들로 둘러싸인 것도 동일하다. 다른 점은 선릉은 능침 가까이 볼 수 있도록 관람객들을 위해 계단을 만들어 놓았지만 정릉은 그런 계단을 찾을 수 없었고 선릉과는 대조적으로, 정릉은 먼발치에서 볼 수밖에 없었다.

멀리서 보면 선정릉의 구조는 마치 아버지(성종 능) 아들(중종 능)이 양 옆에 서서 가운데에 있는 어머니(정현왕후 능)를 보호하고 있는 느낌이다.

조선왕릉, 과거와 현재를 잇는 살아있는 역사

한편 조선왕릉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선정릉을 자세히 관찰해도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조선왕릉은 다른 시대 왕릉들과 달리 자연 속에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 특징이다. 리포터가 중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간 경주에서 본 신라왕릉은 지나치게 큰 봉분 때문에 위엄을 넘어 다소 위화감마저 느껴지기도 했다. 또 다큐멘터리로 더 자주 접하는 고구려 시대 왕릉이나 중국의 왕릉, 이집트의 피라미드도 같은 느낌이었다.

이와 달리 조선왕릉은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동화되는 점은 다른 시대 또 타국의 왕릉들과는 차별화된다. 자연과 함께하는 이 점이 바로 세계유산에 선정된 이유가 아닐까.

조선왕릉은 각 왕릉마다 시대의 정치사와 예술성 등이 종합으로 반영된 하나의 공간 디자인이다. 이 종합예술이 500년 가까이 보존되었다는 점은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살아있는 역사라고 할 수 있다.

■ 선정릉 관람정보
 - 찾아가는 길: 지하철 2호선 및 분당선 선릉역 8번 출구, 분당선 및 9호선 선정릉역 3번 출구
 - 주소: 서울 강남구 삼성동 131호, 사적 제 199호
 - 정기휴일 : 매주 월요일
 - 문의: 선릉관리소 02)568-1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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