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향녀들이 이곳에서 몸을 씻었건만~

시민기자 시민리포터 김종성

발행일 2012.08.14. 00:00

수정일 2012.08.14. 00:00

조회 4,020

[서울시 하이서울뉴스] 홍제천은 종로구 구기동, 평창동에서 발원하여 홍제동, 남가좌동, 성산동을 거쳐 한강으로 들어가는 평범한 하천이다.

홍제천의 다른 이름이기도 한 정겨운 우리말 이름 '모래내'는 세검정의 맑은 냇물이 흐르면서 모래가 많아지고 물이 모래 밑으로 스며 내려간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서대문 동네를 흘러가는 이 아담하고 평범한 하천가에 오래된 역사속의 유적들과 이야기, 문화재가 존재한다니 놀랍다. 그런 하천길을 유유자적 걸어가기 위한 들머리는 개천의 이름과 비슷한 3호선 전철 홍제역이다. 홍제역 앞 사람들로 북적이는 인왕시장을 지나 효제약국 앞에 서면 건널목 건너로 홍제천이 보인다.

하천가에 흔히 만들어 놓은 자전거도로 대신 한편에 산책로가 나있어 주민들과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냇가를 걸어본다.

홍제천은 우리 여성 선조들의 애환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정묘, 병자호란(인조)때 공녀로 청나라에 잡혀갔던 여자들이 돌아왔으나 어디에서도 반갑게 맞아주지 않았다. 피해자인 그녀들은 오히려 '환향녀'라고 손가락질을 받았을 뿐이다.(후일 '화냥년'이라는 여성 비하적인 욕의 유래가 된다)

나라에서는 궁여지책으로 홍제천에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된다는 명을 내렸다. 공녀들이 나라의 명을 받아 홍제천에서 몸을 씻지만, 결국은 도성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 이곳 주변에 눌러 앉아 살게 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천변가 절벽 밑으로 작은 절과 누각이 눈길을 끈다. 옥천암 이라는 절인데 누각 안에 앉아 있는 건 놀랍게도 하얀 옷을 입은 부처상이다. 정식 명칭은 홍은동 보도각 백불(白佛)로 서울 유형 문화재란다. 옥천암의 보도각 백불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도읍지로 정할 때 기도를 올렸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또 고종의 어머니이자 대원군의 부인이 아들 고종을 위해 이곳에서 기도를 올렸다고 하니 한 왕조의 처음과 끝을 살았던 왕실 사람들의 기원이 모인 곳이기도 하다. 약 5m 높이의 하얀 불상이 범상치 않아 절 안으로 들어갔다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임진왜란 때 권율장군이 이끄는 부대가 왜군과 힘든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왜군이 서대문을 넘어 한양 도성으로 쳐들어갈 기세여서 권율장군은 더 이상 밀리지 않기 위해 옥천암을 요새로 삼아 배수진을 치고 홍제천을 사이에 두고 야간 매복을 하였다. 깊은 밤 드디어 왜군이 밀려왔고 그때 왜군들 앞에 하얀 옷을 입은 장수(옥천암의 백불)가 나타났다. 조선의 장수로 생각한 왜군은 일제히 총을 쏘았는데 총알을 다 쓰도록 총을 쏘았는데도 장수는 쓰러질 줄을 몰랐다. 다음날 아침 총알이 다 떨어진 왜군들은 당황하여 허겁지겁 퇴각하기 시작했고 이때 권율장군의 군대가 일제히 반격하여 왜군들을 모두 전멸시켰다.

곧이어 큰 성문이 나타나고 그 옆엔 다섯 칸의 구멍이 있는 오간대수문(五間大水門)으로 홍제천 물이 콸콸~ 시원한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다. 이 문의 이름은 홍지문 (弘智門)으로 숙종 45년(1719년)에 만든 탕춘대성의 출입문이다. 탕춘대성은 서울의 북서쪽 방어를 위하여 세운 성곽으로 서성(西城)이라고도 한다.

인왕산 정상의 서울 성곽에서부터 북쪽의 능선을 따라 북한산 서남쪽의 비봉 아래까지 연결된 산성으로 길이가 약 5㎞에 이른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은 군사훈련과 수도방위를 위하여 북한산성을 축성하였으나 북한산성이 높아서 군량 운반이 어렵게 되자 세검정 부근에 있던 탕춘대(蕩春臺) 일대에 군사를 배치하고 군량을 저장하기 위하여 이 성을 축성하기로 했다. 원래 홍지문, 세검정 일대는 삼국시대부터 한산주(漢山州)로서 군사상 중요한 지역이었다고 하니, 홍제천가에서 마주쳤던 특이한 이름의 '포방터 시장'의 유래를 이제서야 깨닫게 된다.

광해군을 몰아내고 능양군을 임금에 앉히려는 쿠데타 군대가 지나갔던 세검정이 날아갈 듯 너른 바위위에 올라 앉아 여행자를 반긴다. 권력을 잡은 서인은 능양군을 임금(仁祖)으로 앉혔고, 쿠데타군의 이귀와 김류가 이곳에서 '칼을 씻었다'해서 '세검(洗劍)'이라는 이름이 만들어졌단다. 1941년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으나, 겸재 정선이 그린 <세검정도>를 바탕으로 1977년에 복원하였다.

예로부터 경치가 아름다워 인조반정이 있기 오래전부터 정자를 세워 풍류를 즐기던 명소답게 위치가 참 좋다. 정자 앞의 너럭바위들을 돌아 흐르는 물줄기가 유려하다. 겸재 정선이 멋진 그림으로 남길만하다. 하지만 도시 개발로 인해 차에 치여버릴 듯 쫓겨나 듯 도로변에 바짝 붙여진 세검정 정자의 위태위태한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세검정 정자를 끼고 난 앙증맞게 좁은 산책로를 걸어가면 홍제천길의 최상류 지역이자 선물같은 곳, 백사실 계곡이 나타난다. 배가 새빨간 무당개구리가 뛰어다니고, 오래된 연못과 비밀의 정원을 품고 있는 계곡에서 홍제천길 여행을 마무리 했다. 하천길을 걸을수록 거친 바위들과 나무 많은 언덕, 옛사람들의 정자, 성벽, 수문, 물이 흐르는 계곡 같은 평범하지 않은 것들이 남아있어 참 인상적이고 또다시 오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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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홍제천 #모래냇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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