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소극장은?

시민기자 시민리포터 김영옥

발행일 2011.08.10. 00:00

수정일 2011.08.10. 00:00

조회 3,327

창고극장 매표소(좌), 창고극장 전경(우)

배우들의 표정이며 몸동작, 숨소리까지 아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교감 가득한 소극장 무대. 대학로에 가면 부지기수로 만날 수 있는 소극장의 본향이 명동이란 것을 혹시 아시는지... 아직도 명동에는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채 36년 동안 ‘국내 최초 소극장’이란 이름에 걸맞게 변함없이 좋은 작품으로 감동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곳이 있다. 8월 10일 3개월간의 리노베이션을 마치고 재개관하는 삼일로 창고극장을 찾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소극장을 찾아가는 길은 한적하고 소박했다. 명동에 있다고는 하지만 쇼핑의 메카 명동의 시끌벅적한 분위기에서는 좀 벗어난 곳, 남산1호 터널 올라가는 길가인 삼일로 변 작은 언덕 골목길에서 그 이정표를 찾을 수 있었다. 4호선 명동역 10번 출구로 나와 세종호텔을 지나자마자 좌측 길로 접어들어 의심 없이 100여 미터를 가다보면 작은 언덕이 나오고 그 언덕 위 왼편으로 창고극장이 있었다. 그동안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마치고 재개관 하루 전인 삼일로 창고극장은 아직 정돈이 좀 덜 되어 있는 상태였다.

1975년 개관한 중구 명동의 삼일로 창고극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소극장이다. 1960년 대 본격적인 소극장 운동이 일어나면서 1975년에 국내 최초 민간 소극장인 삼일로 창고극장이 문을 열었다. 당시 연극의 중심지는 대학로가 아닌 명동이었던 셈. 삼일로 창고극장은 그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작가, 연출가, 배우 등 역할을 막론하고 젊은 연극인들의 등용문이었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유인촌, 박정자, 추송웅, 전무송, 최종원 등 연극계의 이름난 이들은 모두 이 곳 삼일로 창고극장을 거쳐 갔을 정도였다. 그러던 중에 고 추송웅의 <빨간 피터의 고백>이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고 그것을 시작으로 삼일로 창고극장은 소극장 전성시대에 불을 지폈다.

하지만 전성시대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명동에 있던 국립극장이 남산으로 이전하고, 소극장들이 대학로로 이동하면서 명동의 소극장 문화는 점차 사라지게 됐다. 도시재개발 과정에서 상업지역으로 변모하게 된 명동에 있던 삼일로 창고극장은 연극의 중심지에서 점점 벗어나게 됐다.

수년간 경영난이 이어졌고 설상가상으로 누수를 막아볼 생각으로 극장 2층에 얹은 지붕이 불법증축물이라는 판정을 받아 해당구청으로부터 위법건축물 이행강제금을 추징 받게 됐다. 지난 5년간 누적된 벌금은 5천여 만 원에 이르렀고 계속되는 경영난에 6대 극장주 정대경 대표는 지난해 말 극장 문을 닫을 결심을 하게 됐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중구청 직원 700여 명이 솔선해서 후원회를 조직했고, 2천3백여 만 원에 달하는 성금을 극장 측에 전하며 회생의 물꼬가 트였다. 경사가 이어졌다. 언론 매체를 통해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태광그룹이 적극 후원하고 나섰다. 삼일로 창고극장에 부과된 누적된 벌금과 불법증축물로 지적 받았던 2층 외벽과 지붕을 걷어내는 등 소극장의 전체적인 리노베이션 작업에 소요되는 비용을 지원해 주는가 하면 극장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비용을 2013년까지 매달 후원 받게 됐다. 삼일로 창고극장은 태광그룹의 후원으로 3개월간의 공사를 끝내고 훨씬 쾌적한 환경으로 다시 태어났다.

창고극장 정대경 대표(좌), 창고극장 골목(우)

1958년 준공된 오래된 건물이다 보니 공연장 천장에 20여 개의 깡통을 매달아 놓을 정도로 늘 누수 때문에 고생을 했었는데 이번에 천장에 방수시설을 갖추었고 객석도 68석에서 106석으로 늘리면서 객석의 의자도 교체해 관객들에게 안락한 관람 환경을 만들었다. 불법증축물로 지적 받았던 갤러리를 없애고 카페로 재정비해 관객들이 공연을 본 후에 차와 음료를 즐길 수 있는 휴식 공간도 만들었다. 삼일고가도로가 사라진 삼일로의 풍경을 이곳 창고극장 2층 카페에서 커피 한잔 마시며 볼 수 있게 됐다.

창고극장은 재개관 작품으로 뮤지컬 <결혼>을 선정해 8월 10일부터 9월 24일까지 공연에 들어갔다. 뮤지컬 <결혼>은 국내 최고의 희곡작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이강백 서울예대 교수의 원작으로 1976년 창고극장에서 단막극으로 공연된 이후 수차례 무대에 오른 작품으로 극장주인 정대경 대표가 작곡과 연출을 맡아 2005년 창고극장에서 초연했다. 이 희곡이 시대적인 트렌드를 반영하며 뮤지컬로 각색됐다.

정대경 대표는 “창고극장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창고극장이 이상하게 변하지 않고 가장 오래된 최초의 소극장이라는 역사적인 의미를 잘 간직하며 창고극장만의 정체성을 가지고 가고 있구나 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자체적인 레퍼토리를 갖춰 공연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무대 세팅 중

이번 공연에는 탤런트 박형준, 뮤지컬 배우 이창완 씨가 지난해에 이어 다시 출연하고 뮤지컬 배우 한은비 씨가 새로 합류했다. 물질적 조건을 중시하는 현대인의 사랑관, 결혼관을 풍자한 작품으로 생에 대한 철학적 의미를 담아냈다. 화·수·금요일 오후 8시와 토요일 오후 3시, 7시에 공연이 있으며 월, 목, 일요일은 공연이 없다.

“가치 없는 극장이 어디 있겠는가만 창고극장과는 비교할 수 없다. 창고극장은 개인의 극장이 아니다. 연극계의 공공극장이다. 누구에게는 추억이 있는 곳이고 누구에게는 감회와 눈물이었다. 극장은 무엇이든 너끈하게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정체성을 지키며 오로지 좋은 작품으로 승부를 걸 것이다”

더 이상 실패한 소극장이 안 되기 위해 이번에는 최대한 노력했다는 정대경 대표의 각오처럼 의미 있는 재개관으로 국내 최초 소극장의 역사적 의미를 잇는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좋은 연극 한 편 보며 창고극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은 어떨까? 의미 있는 것은 의미 있게 지켜내는 것이 우리의 몫인 것처럼 말이다. 삼일로 창고극장이 예전처럼 관객들이 넘쳐나고 젊은 예술가들의 등용문이 되길 기대해 본다. (문의 : 02-775-7775)

#명동 #창공극장 #소극장 #삼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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