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학의 자취를 따라가다<1>
하치스카 미쓰히코
발행일 2011.04.01. 00:00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도시로서 그 아름다움과 근대적인 거리 풍경을 자랑하는 서울이지만, 시내의 큰길을 벗어나 꼬불꼬불한 골목길 혹은 오르막길을 따라가면 낡은 한옥과 옛 성곽을 맞닥뜨리게 된다. 먼 옛날의 자취를 발견한 듯한 마음에 발걸음을 멈추어 평온함을 느껴보는 것도 서울 산책의 매력 중 하나다.
그러나 서울의 근대 역사는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으로 한때 크나큰 변화와 위기를 맞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이러한 서울을 무대로 한 소설, 시 등 주옥같은 문학 작품이 풍부한 개성을 가진 작가들에 의해 다양하게 탄생했다. 험난한 역사의 산증인이기도 한 작가가 작품 속에서 그려낸 집이나 그 무대가 된 장소가 서울 곳곳에 아직도 보존되어 있어 가슴을 아련하게 한다. 또 작가와 관련 있는 장소에 세워진 문학비를 보면서 그 업적을 회상할 수도 있다.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간송미술관이나 미술평론가 최순우의 고택에 들러보는 것도 좋지만, 내가 먼저 들르기로 한 목적지는 상허 이태준의 고택 ‘수연산방’이다.
수연산방은 20세기 초에 지은 집으로 현재는 전통 다방이지만 본래는 <까마귀>, <봄>, <달밤>, <복덕방>, <밤길>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한국 근대문학의 대가이자 모더니즘 소설가 이태준의 사택이다. 그는 이곳에서 1933년부터 1945년까지 집필 활동을 했다고 한다. 모더니즘 문학가들의 모임인 ‘구인회’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한 이태준은 일제강점기에 한국어와 한국 문학을 지키기 위한 운동을 펼치는 데 획기적 역할을 한 잡지 《문장》의 편집인이기도 했다.
‘수연산방’이란 편액이 걸린 소박한 느낌의 목조 문을 지나자 흙과 기와로 이루어진 담에 둘러싸인 아담하고 운치 있는 한국식 앞마당이 나오고, 한국과 일본의 건축양식을 융합해 지은 가옥이 자리하고 있다. 그의 고향 강원도에 있던 한옥을 무너뜨리고 다시 지었다고 한다. 중앙에 위치한 나무판자를 중심으로 좌우에 방이 있는데 고풍스럽고 단정한 정취를 자아낸다. 특히 오른쪽에 있는 방은 삼면이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시원하게까지 느껴진다. 앞마당의 건너편에는 이태준이 서재로 이용했다는 별채가 있다.
당시 시인 정지용은 이 고택을 ‘단정한 얼굴을 한 예쁜 소녀’에 비유했다고 한다. 고택 안에는 그릇과 장구, 그리고 옛 소설의 판본 등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툇마루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즐기면서 주인이 직접 담근 전통차와 떡을 한입 가득 물고 앞을 바라보면 느긋하게 한숨 돌릴 수 있는 상쾌하고도 차분한 공간이 펼쳐진다. ‘한국의 모파상’이라 불리는 이태준이 이 앞마당을 바라보면서 애절함이 깃든 아름다운 작품을 집필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감개무량할 뿐이다.
다음 목적지는 만해 한용운의 고택 ‘심우장’이다. 성북동 오르막길을 조금 더 오르고 경사가 심한 골목길을 만나 한참 올라가니 심우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뒤를 돌아보니 성북동의 마을 풍경이 보인다. 만해 한용운은 승려이자 독립운동가였고, ‘님의 침묵’으로 유명한 시인이며 소설가였다. 일제강점기에 만년의 시기를 보내던 그는 3·1운동에 참가했다가 체포되어 3년간 복역하고 나온 후, 1933년 이곳에 기와지붕이 소박한 한옥을 짓고 ‘심우장’이라 이름 하였다.
같은 독립운동가이면서 서예가, 언론인이었던 오세창이 쓴 전서체의 현판이 왼쪽에 걸려 있다. 심우장이란 명칭은 선종의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열 가지 수행 단계 중 하나인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는 심우(尋牛)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즉 ‘오직 깨달음을 위한 수행의 길’이라는 뜻으로 그의 기품 있는 인생철학을 상징한다. 이 집을 지을 때 한용운은 남쪽을 향해 터를 잡으면 조선총독부를 마주 보게 된다 하여 일부러 햇볕이 잘 들지 않는 북향으로 집을 지었고, 옥중의 동지들을 생각하여 겨울에도 온돌에 불을 지피지 않은 채 추위를 견뎠다고 한다. 그리고 1944년 조국의 해방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이곳에서 생애를 마쳤다.
‘ㄴ’ 자형 한옥에는 아담한 두 개의 방과 부엌이 있다. 한용운이 서재로 이용한 온돌방에는 그의 자화상과 족자 등이 걸려 있다. 중앙의 판자 사이에는 그의 유품을 비롯한 육필 서책, 자화상 등과 함께 3·1독립선언문, 그가 발행한 잡지 《유심》과 같은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부엌의 가마에는 쇠 가마솥이 놓여 있고 벽면에는 3·1운동에 대한 자료가 걸려 있다. 검소함이 느껴지는 마당에는 그가 직접 심은 한 그루의 향나무가 우뚝 솟아 있다. 심우장의 소박하고 실질강건實質剛健한 분위기는 한용운의 인품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어, 소를 찾아 나서는 목동처럼 스스로를 다시 돌아보기에 걸맞은 장소다.
글/하치스카 미쓰히코(광고 회사 ADK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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