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된 것들의 귀환? 거 참 희한한 전시네~
발행일 2010.11.12. 00:00
G20 정상회의가 시작된 11월 11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아시아 팝아트를 대표하는 한국, 중국, 일본 42명 작가들의 작품 150여 점을 선별한『Made in Popland』전 개막식이 있었다. 비에 황사까지 심할 것이란 예보를 들었으면서도 아무 준비 없이 나섰다. 갑자기 불어대는 찬바람에 낙엽이 마치 파도에 밀려온 물거품 같다. 낙엽 구르는 소리가 낭만이 아니었다. 이브 몽땅이 부르는 고엽도 이런 모습이었을까? 천둥번개까지 쳐댄다. 철제로 된 코끼리 열차의 승객은 혼자였다. 잠시 주최자인양 개막식 행사에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기 어렵겠다는 걱정까지 하며 미술관으로 달렸는데, 뜻밖에도 미술관 앞 비에 젖은 숲은 아름다워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고, 미술관 안은 많은 관람객들로 북적거렸다.
행사를 기획한 국립현대미술관 기혜경, 이권호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은 팝아트의 기본전략을 사용하는 작품들이지만 흔히 생각하는 ‘팝아트(Pop Art)’에 속하는 작품이라기보다는 양식적인 측면에서뿐 아니라 내용적 측면에서 다양한 차이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기존에 정의된 팝아트와는 다른 범주를 형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작품은 분명 우리시대의 팝문화에 기반하여 팝적인 전략을 가지고 제작된 작품들이라는 점에서 이 시대 팝아트의 모습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작품들이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 말처럼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은 작품의 이미지보다는 오히려 작품에 반영되어 나타나는 내용에 주목하였다. 이는 기존의 팝아트를 바라보던 방식과는 다른 방식이라 할 수 있으며, 작품 속에 드러나는 ‘대중’이라는 주제에 따라 네 부분으로 구분된다. 주제마다 참여 작가도 한중일 공동이다.
첫 번째 섹션 ‘대중의 영웅’은 현대를 살아가는 대중들의 정체성을 살필 수 있게 했다. 대중은 고도의 산업화와 대중매체의 발달 이후 등장한 사회 그룹이다. 이러한 대중들이 향수하는 대중문화는 권력집단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일방적으로 지배되기보다는 당대의 지배권력 이데올로기와 대중의 기호가 접점을 이루는 곳에서 형성된다. 무엇을 생산하는가보다는 무엇을 소비하는가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모색해 나가는, 상품 브랜드로 치환된 대중의 정체성 그리고 움베르토 에코가 말한 바처럼 대중들이 자신들의 삶에서 이루어내지 못한 것을 담아 만들어낸 대중의 영웅상을 통해 그들이 원하는 또 다른 정체성을 살필 수 있다. 참여 작가로는 김동유, 김준, 손동현, 이동기, 이형구, 리 샨, 리오 따홍, 위에 민쥔, 팡 리쥔, 죠우 티에하이, 나리타 토오루, 모리무라 야스마사 등이 있다.
두 번째 섹션 ‘스펙타클의 사회’는 대중매체와 그것의 뿌리가 되는 대량 소비사회를 근간으로 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대중매체가 발달한 사회에서는 누구나 같은 TV의 같은 뉴스를 듣고, 대중매체에서 선전하는 같은 브랜드를 사용하며 살아가는 평등한 사회처럼 보인다. 하지만 대중의 일상은 지배 이데올로기의 전략에 영향받지 않을 수 없다. 대중매체를 통해 지속적으로 조장되는 즉흥적, 일시적인 소비문화와 그를 통해 지속적으로 확대 재생산되는 이미지가 범람하는 우리의 시대는 기 디보르가 이야기한 '자본마저도 이미지화한 스펙타클의 사회'라 할 수 있다. 이 섹션에서는 스펙타클의 사회가 노정하는 이중성을 바라보는 작가들의 시선을 살필 수 있다. 참여 작가는 후쿠다 미란, 무라카미 다카시, 나카하라 코다이, 미아오 시아오츈, 쉬예 송, 왕 광이, 쩡 하오 등이다.
세 번째 섹션 ‘억압된 것들의 귀환’은 여가와 환상의 결합을 통해 근대화 시기의 계량화와 서열화 과정 속에서 사회체제가 억누르고 억압해 왔던 우리들 안의 억압되었던 것들이 귀환하는 것을 보여준다. 굳이 프로이드의 개념을 빌지 않더라도 현대미술 속에서 흔히 만나는 괴기스런 형체들, 변종, 로봇 등과 같은 다양한 이미지들은 이에 대한 시각미술의 부응이라 할 수 있다. 이 이미지들은 단순히 이상한 변종들의 귀환을 넘어 체제가 가지고 있는 고정 관념을 전복시키는 역할을 함으로써 고급문화의 전복을 넘어 사회 시스템에 대한 전복을 꿈꾼다는 점에서 새로운 창조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참여 작가로는 공성훈, 박윤영, 이동욱, 이중근, 최우람, 나라 요시토모, 아이다 마코토, 오다니 모토히코, 펑 멩보, 차오 페이 등이 있다.
네 번째 섹션은 ‘타인의 고통’이다. 대중매체의 발달로 우리는 명실공히 ‘One World’의 세상에 진입하게 되었다. 그 결과,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고 있는 많은 사건과 사고, 전쟁의 참상들이 실시간으로 우리들 안방으로 들어와 눈앞에 펼쳐진다. 하지만 이러한 문명의 이기는 지구상 어딘가에서 지금 이 시간에도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죽음까지도 아무런 감정 없이 화면위로 흘려보냄으로써 그것이 갖는 현실의 두려움과 중압감을 탈각시킨 채 또 다른 구경거리로 만든다. 수잔 손탁이 경고한 '타인의 고통'에 다름 아닌 현상이다. 대중과 타자와의 관계를 살펴보는 이번 섹션에서는 홍경택, 모리무라 야스마사, 옌 샤오팡, 양 샤오빈, 쩡 판쯔, 우 쥔용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괜시리 어려운 듯하지만, 막상 네 개의 섹션에 들어가면 그 주제가 확연하게 드러나고 오감으로 느껴진다. 특히 세 번째 섹션 ‘억압된 것들의 귀환’은 얼른 고개를 돌리고 싶을 만큼 괴기스럽고 흉측하고 혐오스럽기도 하다. 반면 눈이 즐겁고 기분이 좋은 작품들도 있다. 근대사의 인물들을 작품 속에서 만날 수도 있고, 이런 것이 바로 ‘팝아트’라는 것을 실감나게 하는 스펙타클한 작품들도 많아 눈이 휘둥그레졌다.
관람객을 위한 전시 설명회가 매일 1시와 3시(토·일 5시 추가, 2시 영어 설명)에 있다고 한다. 한중일 학술세미나와 청소년 관람객을 대상으로 하는 ‘현대미술&미디어 통합교육’도 학기 중과 방학기간 중 각 2회, 총 4회에 걸쳐 진행된다. 개별적으로 미술관을 찾는 청소년들의 전시 이해를 돕기 위한 셀프 가이드(청소년 전시감상 가이드)도 무료로 배포된다. 또한 문화행사로는 DJ 공연, 비보이, 전자바이올린 연주, 일본애니메이션 영화 상영 등이 개최될 예정이다. 보다 자세한 정보는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www.moca.go.kr)와 전시 홈페이지(www.popland.moca.go.kr) 또는 전화(☎ 2188-6000)로 문의하면 된다. 내년 2월 20일까지. 관람료는 성인 5,0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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