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10개국 그림의 같은 점, 다른 점
발행일 2010.09.02. 00:00
“싱가포르 국립미술관과 공동 기획하여 양국의 국립미술관을 순회하는 '아시아 리얼리즘'전은, 아시아 10개국의 근대미술 명화 106점을 한국에 최초로 소개하는 전시다. 19세기 말 서양과의 접촉을 통해 새로운 ‘재현’의 기술로서 리얼리즘이 도입되는 과정에서부터, 20세기의 복잡다난했던 아시아의 역사를 관통하며 나와 주변, ‘현실’에 대한 자발적인 인식이 성장하는 과정까지, 다양한 층위의 ‘리얼리즘’ 담론과 만나게 된다. 아시아의 격변기를 살다간 예술가들의 ‘리얼’ 스토리를 경험해 보기 바란다.” 팸플릿에 안내된 글을 읽지 않고 미술관으로 들어갔다면 아시아 지역 화가들의 작품을 모아놓은 단순한 전시회라 여기고 빙 둘러보고만 나왔을 것이다. 1, 2층 4개의 전시장에는 5개의 주제별로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새로운 재현 형식으로서의 리얼리즘, 은유와 태도로서의 향토, 노동자를 환호하다, 전쟁과 리얼리즘 그리고 사회인식과 비판 - 새로운 리얼리즘을 향하여'가 마치 해설서 한 권을 들고 감상하는 것처럼 잘 정리돼 있어서 도슨트의 해설과 함께 참 유익했다. 아울러 4전시장에 1851년부터 1980년까지의 대표작품과 함께 정리해 놓은 연대기를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것을 잘 읽어보면 아시아 리얼리즘의 전체적인 흐름과 아시아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사와 연계해서 아시아 미술사의 큰 틀을 파악할 수 있다.
1950년은 한국동란의 해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언급이 없고, 다른 나라에 비해 전쟁화도 별로 없었다. 전시기획자인 김인혜 학예사의 분석에 의하면 “전후 냉전기 전쟁에 대한 비판적 상상력이 극도로 제약된 데다, 전후 밀어닥친 미국 추상미술의 영향도 그런 배경이 됐을 것”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1980년 광주민중항쟁을 전후해서는 민중에 의해 미술이 성장한 것으로 소개했다. '하노이의 크리스마스 폭격'이나 필리핀 '민족의 드라마' 같은 작품들은 근대사의 일들로, 월남전이나 1972년 계엄령을 선포했던 필리핀 정국이 작품에서도 그대로 느껴졌다. 전시된 작품들은 하나같이 풍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기자는 팸플릿 표지화로 선정된 인도네시아 화가 트루부스 수다르소노의 '병아리와 함께 있는 여자' 앞에 서서 한겨레신문의 기사를 떠올렸다. “그림 속 소녀는 무엇을 생각하는 것일까. (중략) 이 작품은 결혼식을 앞두고 앉아서 머리를 단장하는 소녀의 모습이다. (중략) 그의 발밑 함지박에는 막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가 노닐고 있다. 병아리는 소녀가 유년기를 벗고 인생에서 새 출발을 막 시작하려는 시점임을 암시한다. 거장 고야의 그림처럼 윤곽이 뚜렷하지 않고, 심연 같은 검회색 빛으로 뒤덮인 주변 벽과 바닥의 묘사에서 시집가는 소녀가 겪고 있는 불안정한 심리 상태가 느껴진다. 방을 비추는 빛과 어둠의 적절한 뒤섞임, 세로축 구도로 유난히 부각되는 소녀의 큰 눈과 유난한 표정 속에서 인물의 감정과 내면이 고스란히 눈에 잡힌다. 트루부스는 일본 점령기인 1942~45년 현지 민족주의 화풍의 거장 수조요노 등에게서 그림을 배웠다. 수조요노와 ‘민중의 화가들’ 그룹에서 활동했던 그는 반네덜란드 독립투쟁에 선전포스터를 제작하며 동참했고, 수감되기도 했다. 1950년 독립 이후 초대대통령 수카르노의 후원을 받았지만, 1966년 우익인 수하르토가 집권한 뒤 숙청돼 살해당했다.”
방학 동안 교사와 학생들의 관람이 많았고, 특히 지방 학생들의 체험학습 차원에서의 발길도 이어졌다는 '아시아 리얼리즘' 전. 지방에 사는 친구와 함께 볼 만한 전시를 찾다가 우연히 들렀는데, 친구도 참 귀한 전시회라며 만족해했다. 관람을 마치고 시립미술관의 천경자 상설전, 배재박물관, 정동예술극장 등을 둘러보며 정동길을 걷는 것도 아주 특별한 보너스가 될 것 같다. 학생들에게는 생생한 교육이, 어른들에게는 가슴 한편 향수를 찡하게 불러일으키게 하는 전시회에 개학한 학생들이 추석 전후하여 많이 찾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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