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 유럽 최고 오페라단 출현했다!

admin

발행일 2010.07.14. 00:00

수정일 2010.07.14. 00:00

조회 2,222

격세지감이라더니!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동네 한가운데 평평한 곳에 천막을 치고 곡마단이라도 들어설라치면 언덕 넘어, 저수지 지나, 이 동네 저 동네에서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어쩌다 장화홍련전이라도 공연하는 날이면 온 가족이 나들이하여 훌쩍훌쩍 눈물 흘렸었는데……. 그뿐이랴! 동네마다 겨우 한두 대 텔레비전이 보급되기 시작한 70년대 초에는 지금 같은 여름밤이면 모깃불 피워놓고, 평상에 앉아 영화 단체관람하듯 TV를 즐겨 본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빈 국립 오페라 앙상블' 내한공연을 동네 무대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꿈만 같다. 가끔 구 소식지에 소개된 공연소식 난을 건성으로 지나쳐버리고 말았는데, 이렇게 멋진 공연을 10분이면 달려갈 수 있는 동네에서 감상할 수 있다.

'빈 국립 오페라 앙상블'은 오페라극장과 영구적으로 계약을 맺은 1백 명의 전문 성악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1927년 발족한 '빈 슈타츠오퍼 합창단 콘서트연맹' 산하조직으로, 매년 빈 슈타츠오퍼에서만 약 55편의 오페라를 250여 회 공연해내고 있다. 오페라 외에도 종교음악, 합창음악 콘서트를 하며 매년 수 차례의 초청연주 및 1회의 해외초청 연주 활동을 하고 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을 위시하여 카를 뵘 등 전 세계 유수의 마에스트로들이 자신의 음반 녹음을 위하여 그들을 초빙해 명반을 남겼다.

유럽 오페라의 중심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빈 국립 오페라 앙상블’이 이번 구로아트밸리 무대에서는 오페라에 친숙하지 않은 관객들을 고려하여 단원들이 실제 오페라에서 사용됐던 의상을 갈아입으면서 노래했다. 현재 빈 국립 오페라극장의 상임지휘자로 재직하고 있는 토마스 랑이 예술감독을 맡고 한국인 임혜선 씨가 음악코치를 맡은 이번 공연은 다양한 레퍼토리로 관객들을 클래식의 매력에 빠져들게 했다. 20명의 단원 중에는 한국인 솔로 김정호, 김지혜, 김성희 씨가 있어서 더욱 친밀감을 주기도 했다.

오프닝곡은 이탈리아의 26세 무명 작곡가 마스카니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중 '경배드리세'였다. 다음 곡들도 쟁쟁했다. 베르디의 오페라 '운명의 힘' 중 '천사중에 성처녀여', '라 트라비아타' 중 '축배의 노래', CF 음악으로 잘 알려진 들리브의 '라크메' 중 '라크메와 말리카의 꽃의 이중창', 역시 들리브의 고음 아리아 '라크메' 중 '종의 노래', 푸치니의 마지막 미완성 오페라로 사후에 제자에 의해 완성된 것으로 유명한 '투란도트' 中 '공주는 잠 못 이루고', 그리고 오펜바흐의 '호프만의 이야기' 중 '올림피아의 아리아'였다. 특히 1부 마지막 세 곡들은 귀에 익숙한 곡들이었다. 스페인의 집시여인 카르멘이 요염하게 부르는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중 '하바네라',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 중 '어떤 개인 날' 그리고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 중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이어졌다.

오페라 중에서 대중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곡들을 선곡한 데다 재미있게 패러디한 곡을 포함시키기도 하고, 왈츠에 맞추어 춤을 추거나 직접 악기연주를 하는 등 다채롭고 흥미로운 무대가 펼쳐졌다. 1부 총 10곡의 오페라를 감상했음에도 조금도 지루해 하기는커녕 흥미진진한 이런 분위기를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우리의 음악 수준이 이렇게 성숙하고 향상됐다고 자부해도 될까? 잠깐의 휴식시간에 이뤄진 사인회에는 초등학생부터 60대 아저씨들까지 사인을 받기 위해 줄지어 서있는 광경이 공연장을 더욱 풍성하고 화기애애하게 해주었다.

2부는 오페라보다 훨씬 낭만적이고 줄거리와 대사가 많은 오페레타의 세계로 꾸며졌다. 관객들도 무대에 금방이라도 뛰어들 것 같은 흥으로 우레 같은 박수와 함성으로 하나가 됐다. 2부 첫 곡은 빈 국립 오페라 앙상블 단원인 마리오 스텔라가 오페라의 유명한 곡조들을 앙상블 메들리로 편곡한 오페라 패러디. 다음은 '미소의 나라' 중 '당신은 나의 모든 것', '즐거운 과부' 중 '빌야의 노래'과 '여자를 아는 것은 어려워' 등 오페레타 작곡자인 레하르의 작품들 세 곡이 이어졌다. 레하르가 오페레타의 왕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여자를 아는 것은 어려워'는 특히 남성 합창으로 이뤄졌는데, 희가극 맛의 절정이었다. 어느 새 2부도 훌쩍 지나고 두 곡이 남았다. 오리지널 왈츠의 황제 요한 스트라우스의 오페레타 '박쥐' 중 '즐거운 축제의 밤'과 헝가리 민속춤을 맘껏 보여준 칼만의 오페레타 '차르다스' 중 '파티의 노래'로 무대는 막을 내렸다.

공연은 끝났다. 그럼에도 10시가 넘은 한여름밤의 열기는 여전했다. 집들이 가까우니 관객들은 귀가를 서두르지 않고 느긋했다. 40명이 단체로 관람한 한 부부 모임의 한덕남 회장은 그 동안 대학로에 가서 연극도 몇 차례 보았고, 뮤지컬도 즐겨 봤는데, 이번 행사에 회원들이 가장 많이 참석하였고 반응도 좋았다며, 앞으로는 이곳 구로아트밸리 프로그램을 눈여겨 보았다가 1년에 두 번이 아니라 수시로 이런 자리를 마련해야겠다고 해서 회원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이들은 쉽게 헤어지지 않고 다시 아트밸리 정원에서 이야기꽃을 피워댔다. 학창시절에 배운 오페라 공부를 공연 2시간 동안 복습한 것 같고, 클래식이 이렇게 재밌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단다.

체험학습 하듯 아이들을 데리고 음악회에 참여하여 어려서부터 예술세계에 자연스럽게 젖어들게 해주는 것이 이젠 꿈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가능해졌다. 좀 더 관심 갖고 프로그램들을 눈여겨 보면, 멀리 가지 않고 집 부근에서 이런 문화예술을 쉽게 만날 수 있고 즐길 수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동네가 바로 '아트밸리'인 것이다. 우선 7월, 8월 학생들 여름방학 기간만 해도 벌써 큰 공연이 많이 기다리고 있다. 아래 일정표와 함께 더 자세한 사항은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 홈페이지(http://www.guroartsvalley.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 7월 23일 네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 연주회
○ 7월 29일 중국 하얼빈 유나이티드소녀합창단 초청공연
○ 7월 31일 청소년을 위한 해설이 있는 뉴에이지 콘서트
○ 8월 5일 해설이 있는 재즈 콘서트 Jazz It Up 3
○ 8월 6일 프라하 브라스 앙상블 내한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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