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알려면 종로통을 알아야 한다
admin
발행일 2010.04.06. 00:00
서울은 한국의 근본이 되는 수도이다. 그렇다면 서울의 근본은 어디가 될까. 종로 1가에서 세종로 부근이 그 중심이 아닐까. 세종로는 조선 시대의 중심지인 육조거리가 형성되었던 곳이다. 경현록의 말을 빌리면, '서울에서 하는 일은 모든 지역에서 본받을 것이며 임금이 좋아하는 바는 모든 백성이 하고 싶어할 것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그렇다. 한국을 알려면 서울을 알아야 하고, 서울을 알려면 종로통을 알아야 한다. 누군가의 말처럼 역사는 전례가 가르치는 미래의 철학이다. 우리는 역사를 읽는 동안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조선 500년의 한양 도읍지의 가장 중심지 였던 육조거리(현재의 세종로)에 고종 칭경기념비전이 세워져 있다. 이 고종 즉위 칭경기념비전은 일제 강점기 때 훼손된 것을 1979년에 완전히 뜯어내 복원한 것이다.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高宗卽位40年稱慶紀念碑)는 대한제국의 고종 즉위 40년을 기념하여 1902년 세운 기념비. 고종은 12살(1863년)에 보위에 올라, 나이 51세가 되는 즉위 40년을 기해 세운 기념비다. 기념비의 비문에는, '대한제국 대황제 보령 망육순 어극 사십년 칭경기념송'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고종이 황제를 칭한 것과, 광무라는 연호를 사용한 것, 고종 즉위 40년이 된 사실 등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이 칭경 기념전은 1969년 7월 28일 사적 171호로 지정되었다. 비의 글은 당시 황태자인 순종이 썼다. 비문은 의정부 의정 윤용선이 짓고, 글씨는 육군 부장 민병석이 썼다. 이 비를 둘러 싸고 있는 비전은 규모가 작은 편이나 경복궁 근정전의 모습을 닮았다. 특히 돌난간과 돌기둥에는 12지신의 동물 외 현무, 주작, 청룡, 백호가 마주 보고 있는데 이는 조선 시대의 건축물에서는 흔하지 않은 특이한 것이다. 광복 후 1954년 비전을 보수하면서, 일본인에게 팔렸던 돌로 된 만세문과 담장을 찾아다가 복원하고 1979년에 완전히 뜯어내어 복원함으로써 옛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정사각형 평면의 모임지붕집으로 바닥에 전을 깔고 중앙에 비석을 세웠다. 이중으로 쌓아올린 기단에 다포식 건물이며 한국의 대표적 비각건물이다. 남쪽에 홍예문(무지개문), 그 가운데 만세문이라는 이름을 새겼다. 문짝은 태극문양이다. 비석을 세우기 위한 이 건물에 전(展)자를 붙인 것은 그만큼 이 건물의 중요성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조선시대에 왕이나 왕비가 머무는 건물에 전(展)자를 붙였던 것으로 볼 때 이 비는 비전으로 불리는 것보다는 비각전으로 불러야 옳지 않나 싶다.
시민기자 /송유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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