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보자기 그리고 백초월
admin
발행일 2010.03.02. 00:00
자고 나면 트위터다. 흡사 블로거 열풍이 불었던 당시처럼 그 세가 만만치 않다. 끊임없이 올라오는 단문들. 그 속에서 동시간대로 발생하는 서울의 상황을 알 수 있다. 광속과 같은 속도로 사람들의 의도와 뜻이 전달된다. ‘비밀’이란 단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봐야 할 만큼 2010년 서울에서 숨길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여기 낡은 보자기 하나가 있다. 이 안에 90년 동안 숨겨졌던 비밀이 담겨 있다. 오늘 그 보자기를 풀어본다. 도대체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단 말인가? 비가 내린 후 도심 빌딩숲으로 운무가 낮게 드리워져 있다. 그 속을 거쳐 서울역사박물관으로 향해 가는 발걸음. 박물관 로비에 마련된 전시장은 약간 어두웠다. 오밀조밀하게 배치된 구조물 사이로 한 초췌한 사내의 흑백사진이 보인다. 백초월(白初月, 본명 寅榮, 1878~1944). 일제 강점기 진관사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 승려다. 3.1운동이 일어나자 불교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분이다. 비밀, 보자기 이 두 단어와 백초월과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작년 진관사 칠성각 해체ㆍ복원 과정에서 낡은 보자기 하나가 나오게 된다. 불단과 기둥의 해체 과정에서 발견된 것인데 묶여 있는 보자기를 풀자 그것이 태극기임을 알게 된다. 보자기 아니, 태극기가 품고 있던 것은 독립신문을 위시한 3.1운동 직후 발간된 지하신문들이다. 90년간 숨겨졌던 비밀이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신문의 내용은 태극기 제작법과 3.1운동 이후 일제의 편에 선 세력에 대한 경고와 항일독립운동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경고문이다. 제 나라의 국기를 간직하는 것이 비밀이 될 수 없다. 제 나라를 지키자는 말은 더욱 비밀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비밀이 되어야만 하는 힘든 시간이 있었다. 1919년. 고종의 승하 후, 삼천리 강산에 들불처럼 3.1운동이 번져간다. 백초월도 당시 가장 활발하게 활동을 했던 독립운동가였다. 그는 진관사와 진관사 마포포교당을 근거지로 삼고, 전국 사찰을 왕래하면서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보살계 법회를 통해 군자금의 모금, 제2의 3.1운동 추진, 임정의 독립신문과 비밀 지하신문을 배포하였다. 진관사 태극기는 함께 발견된 신문류의 발간일을 놓고 볼 때 그가 진관사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1919년 숨겨 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귀퉁이가 약간 불에 타고 그을린 낡은 태극기.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독립신문을 통해 9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선대의 숨가빴던 당시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태극기를 흔들고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의 위협까지 받으며 활동했다. 엄중해진 경비를 뚫고 발각되면 생명까지 잃을 수 있었는데 칠성각에 ‘진실’을 숨겨 놓은 것이다. 역사적 사실에 대해 수없는 말과 글을 공부한다고 해서 저 낡은 태극기 하나가 보여주는 간결함보다 앞설 수 있을까?
블로거와 트위터로 통칭되는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끊임없는 정보들이 오고 간다. 더 이상 세상에 비밀은 없다. 속도가 미덕이 된 세상이다. 진관사 태극기의 비밀이 세상에 알려지는데 90년이 걸렸다. 잔향이 오래 남는다는 침향(沈香)은 고목을 땅속에 묻어 썩혀 만든다고 한다. 때론 오랜 세월의 테를 간직한 비밀이 세상 밖으로 나와 진실이 될 때 사람의 가슴을 움직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감동’이라고 부른다.
시민기자/최근모 |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