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관람하면 제맛인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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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9.12.21. 00:00
시민기자 최근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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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기업은행 본점 뒤편으로 오래된 지하차도가 있었다. 별 관심 없이 지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곳에 새 건물 하나가 들어섰다. 정석대로라면 지하차도를 메우고 구조물이 들어섰을 텐데 차도는 여전히 존재한다. 이게 어떻게 된 것인가? 기둥을 밑에 받쳐 건물을 띄우고 지하차도 공간을 그대로 보존했다. 생각의 역발상이다. 명패를 보니 한빛미디어갤러리라고 적힌 흰 글씨의 물감이 마른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하다. 새로운 창조물이 들어설 때마다 기존의 자리를 차지하던 옛것은 주저 없이 파괴된다. 이것이 지금까지 창작의 습성이었다. 그러나 이 갤러리의 자태를 보며 그런 낡은 생각의 틀이 깨졌다. 단지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지하차도에서 나오는 차들은 갤러리의 입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퍼포먼스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갤러리 안에 마련된 전시장에는 'SHIFT SIGNAL' 전시장 첫 시작부터 'POWER 4 EVER' 이현진 작가의 '물 수제비 던지기'는 우리가 갖고 노는 게임 스틱을 이용해 스크린 속 강물을 향해 돌을 던지게 된다. 단순한 것 같지만 어릴 적 강가에서 돌멩이를 던져 물 수제비 몇 개가 나오는지 자랑하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단순한 놀이라기보다 현실에서 느끼던 감정과 그것을 재현한 가상현실에서의 감정이 "어떤 게 더 진짜일까?"라는 화두를 던진다. 제일 기자를 즐겁게 했던 작품은 최승준, 최승호 작가의 '민들레, 바람 타고 훨훨'이라는 작품이었다. 민들레 홀씨가 뭉쳐 있는 영상이 벽에 투사되고 바로 앞에 바람개비가 마련되어 있다. 관람자가 입으로 바람개비를 '후~' 불면 화면 속 민들레 홀씨가 허공으로 날린다. 작품 설명에 적혀 있는 번호로 문자를 보내면 날아가는 홀씨에 관람자가 보낸 문자들이 날아오른다. 이 작품을 보고 있으니 유년의 즐거웠던 추억도 떠올리게 되고 생명과 희망 같은 게 가슴을 따뜻하게 안아준다. 전시장에 자리를 잡고 있는 작품 대부분이 짜임새 있고 관람자에게 재미를 줄 수 있는 정서를 담고 있어서 즐거웠다. 단순히 여러 작품을 형식적으로 모아놓기보다는 이런 일련의 큰 틀에 작품이 모여 더 큰 정서를 발휘할 때 관람자는 행복하다. 안내하는 분의 친절한 설명과 함께 관람자가 단순히 보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직접 참가해서 함께 작품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방식이라 좋았다. 근래에 본 미디어 아트 전시 중 일반인들이 쉽게 감상하고 느낄 수 있는 전시라고 생각한다. 가족과 함께 한빛거리를 걸어본 후, 방문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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