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엄숙하고 사려 깊은 영화관람 문화
admin
발행일 2009.12.01. 00:00
줄거리 설명, 자리 조정 등 색다른 문화를 가진 노인들만의 공간 “오늘 상영하는 영화 <블랙>은 평생 보지도, 듣지도 못하던 소녀 미셀이 사하이 선생님을 만나게 되면서,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게 되고 심지어 대학까지 졸업하게 되지만, (중략) 아~ 그때부터 또 다른 불행이 찾아옵니다. 사하이 선생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립니다. 모든 기억을 상실한 선생님은 절망의 ‘블랙’ 속으로 빠져듭니다. 자신의 제자 미셀처럼 어둠 속에서 헤매던 선생님의 기억을 미셀이 하나하나 찾아 이번에는 미셀이 선생님의 기억을 되찾아준다는 감동적인 영화가 오늘 보실 영화 <블랙>입니다.” 영화 상영에 앞서 영화의 줄거리를 미리 설명해주는 영화관은 오늘 처음 봤다. 누군가 영화 줄거리를 이야기하려고 한다면, 대부분 “더 이상 말하지 마!”라고 저지하는 것이 관례인데, 이곳 영화관은 영화 상영 전에 줄거리를 미리 이야기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것 같으니 여느 영화관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기자가 찾아간 영화관은 65세 이상의 어르신들의 문화 공간인 실버영화관. 영화상영 10분 전, “동행한 사람들과 함께 볼 수 있게 자리조정을 부탁합니다”라는 손님의 요구가 있자 극장 관계자가 직접 객석을 다니며 좌석 배정을 조정해 준다. 줄거리 설명에 좌석 조정,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영화상영 도중 다른 관객에게 피해가 없도록 극장 직원들이 휴대전화를 일일이 진동으로 조정해주는 곳. 실버영화관만의 색다른 풍경이다. 실버영화관은 어르신들의 급증하는 문화적 욕구에 부응하기 위해 탄생한 공간이다. 지난 2008년 서울시가 실시한 노인욕구 조사에서 문화활동에 대한 욕구가 건강 활동 다음으로 높게 나타났으며, 그 중에서도 영화관람에 대한 욕구가 가장 높았던 점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난 1월 21일 개관한 이래 호응도 좋아 누적 관람객 수가 5만명을 돌파하였다. 영화관 풍경은 가족들과 친구들의 모임처럼 부드럽고 따뜻했다. 영화를 보는 모습도 더 없이 진지했고, 문화 예절도 젊은 사람들이 한 수 배워야 될 정도로 정숙했다. 극장 대기실에서도 담배를 피우거나 떠드는 사람은 찾아 볼 수 없었다. 특히 요즈음 경기한파의 영향으로 썰렁한 것이 극장 분위기인데 이곳은 많은 관객으로 인해 극장 특유의 묘한 흥분감마저 감돌아 영화의 전성기였던 70년대로 되돌아간 느낌마저 들었다. 이날 관객 중에 부인과 함께 영화를 보러 왔다는 백문식(가명, 73세) 씨는 "만약 영화관을 이용하지 않았다면, 동네에서 술 먹고 고스톱 치고 있었을 것이고 담배 피는 시간도 더욱 많아졌을 것"이라며, 주위 친구들한테도 실버영화관을 적극 권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벤허>ㆍ<맘마미아>와 같은 주옥같은 옛 명화와 히트작 등 31편을 상영하여 어르신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 온 실버영화관. 이은주 대표는 노인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눈 후 작품을 선정하기 때문에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만족도가 높다면서, 이제는 노인관객들이 자신보다 더 극장을 아끼고 사랑해 준다고 말했다. 옛 허리우드 극장 자리에 위치한 실버영화관은 300석 규모의 클래식관에서 57세 이상의 어르신을 대상으로 관람료 2,000원(일반인 관람료 8,000원 수준)을 받고 하루 3회 상영해오고 있다. 이날 상영된 영화 <블랙>은 12월 3일까지 상영될 예정이다. 이대표는 실버영화관의 중요성을 이렇게 힘주어 말했다. “시중에는 5,000원을 받고 어르신들을 입장시키는 극장들도 많이 있대요. 하지만 어르신들은 저렴한 가격에 무작정 극장에 들어갔다가 영화가 너무 야하거나 폭력적인 장면이 많아 도중에 그냥 나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는 다시는 영화관을 찾지 않다가, 우연히 친구 따라 이곳에 와서 영화 보고 나오시며 말씀하시죠. 보고 싶었던 영화도 보고, 덤으로 따뜻한 추억까지 간직하게 되어 정말 고맙습니다, 라며 저의 손을 꼭 잡으세요. 그때 보람을 느낍니다.” 그러나 이대표는 보람이 크긴 해도 금전적으로는 많이 힘들다고 말했다. SK케미칼에서 연간 1억 2천만 원의 예산을 지원해 주는 것이 커다란 힘이 되지만, 연간 필요한 예산에는 아직도 부족하다. 다행히 지난 11일 노동부로부터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노인들이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문화공간을 운영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사회적 기업에 극장이 선정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실버영화관은 시내 중심가인 종로 낙원상가 4층에 위치하고 있다. 지리적 접근성이 좋아, 서울시 거주 노인은 물론, 천안, 안성, 수원 등 수도권 어르신도 즐겨 찾는 실버 명소가 되어가고 있다. 앞으로는 실버공연장, 실버갤러리 등이 가세해 종로를 근간으로 한 신(新) 노인 문화공간이 확충될 것이다. 시민기자/정연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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