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서 늦가을 느껴보세요

admin

발행일 2009.11.16. 00:00

수정일 2009.11.16. 00:00

조회 2,113



시민기자 이은자


차가운 가을비가 하염없이 내려댔는데도 아직 단풍이 아름다운 주말이었다. 2003년도 서울시 조경대상을 받았던 구로구 소재의 한 아파트. 입주자들은 물론 이곳을 경유해서 지나가는 이웃 주민들도 전철이나 버스에서 내려 아파트에 들어서면 쾌적함을 느낀다고들 했다. 그러나 기자는 입주 당시 우려했던 나무들의 수명이 궁금했다. 여전히 건강하게 살아있을지 고개를 갸우뚱하며 나무들을 살펴보기로 했다.

지하주차장만 이용하기 때문에 사실상 아파트 정원 아래는 거의가 다 주차장인 셈이다. 이런 여건에서 수령이 많고 키가 큰 소나무나 남쪽에서 잘 자라는 대나무가 과연 건재할 수 있을지, 아파트 주민들조차도 반신반의를 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조경대상을 받은 지 6년이 된 이 아파트의 정원은 기자의 눈을 의심할 정도로 다양한 나무들이 건강했다.

아름다운 단풍이 들기까지 쇠잔해질 대로 쇠잔해져 링거라도 꽂아야 할 나무들에게 엊그제 내린 가을비가 아주 절실한 생명수가 됐던 것일까? 오히려 단풍과 열매들이 최고의 빛깔과 탱탱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 아파트 곳곳에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공작단풍은 이름 이상으로 멋져 보였다.

아파트는 도심의 경관을 해치는 흉물이라는 선입견은 이제는 옛날 말이 되었다. 서울의 주거지역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파트도 엄연히 우리 환경의 일부다. 그래서 입주자 대표회의나 부녀회에서는 무엇보다도 나무 관리에 많은 정성을 기울이고 주민들 중에 조경 전문가가 계시면 자문을 구해가며 주민들의 의견도 충분히 반영시켜 매년 새로운 나무들도 추가로 심고 있다. 그 노력의 결실이 지금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

몇 년 전에 벚꽃이 피기 전에 봄을 먼저 알리는 노오란 산수유를 심어달라는 주민의 요청에 의해 동마다 산수유를 몇 그루씩 심었는데, 노오란 꽃을 피운 산수유 열매가 가을철에 이렇게 새빨간 열매로 주민들을 또 기쁘게 해줄 줄 몰랐다며 탄성을 지르는 이도 있었다. 기자도 이렇게 늦가을 파란 하늘과 노란 단풍 틈, 산수유 열매나 산사나무 열매의 황홀함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아파트 정원에는 감도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물론 단감이 아니라 땡감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감나무는 맛있는 단감나무는 절대 심어서는 안 된다. 익기도 전에 수난을 당하게 되고 주민들 간에 갈등이 생기지만, 떫은 땡감은 첫눈이 내릴 때까지도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유실수로서의 몫이 아니라 관상용으로 충분하다.

입주 당시 주민들이 많이 염려했던 대나무와 소나무도 유심히 들여다 보았다. 아파트 곳곳에 심어 있는 대나무는 담양 대숲에 있는 대나무들과 별반 차이 없는 푸르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봄이면 죽순이 뾰족뾰족 올라와 노년층이 많이 거주하는 이 아파트에서는 죽순 서리를 막느라 게시판에 단속글을 올리기도 여러 차례였다고 한다. 소나무 역시 죽어가는 나무를 한 그루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덤으로 또 하나의 발견에 고개가 많이 아팠다. 가을 바람에 날리는 낙엽이 땅으로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아파트 중간 층 정도에서 떨어지겠지, 라고 계속 쳐다 봤는데 24층 꼭대기 층을 지나서 지붕까지 비상하는 노란 단풍잎들이 과학적으로 증명을 할 수 없는 신기함으로 다가왔다.

아파트에 오래 살아오면서 정원의 꽃이나 나무들과 깊은 교류를 체험하지 않은 분들은 해거름에라도 한 번 나가보면 먼 산이나 수목원 찾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을 주고 있는 즐거운 정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굳이 상을 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오래된 아파트일수록 더 좋은 수목, 고향의 느티나무 같은 더 훌륭한 나무들이 주민들의 건강을 지켜줄 것이다. 주민들의 사랑과 관심으로 더 멋지게 자라고 있는 공동 주택단지의 소중한 꽃과 나무들, 추운 겨울을 잘 이겨내라고 다정한 눈빛이라도 보내며, 또다시 희망의 빛으로 돋아날 봄을 기다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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