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벌거숭이의 추억 … 남산에서

admin

발행일 2009.07.16. 00:00

수정일 2009.07.16. 00:00

조회 2,404



시민기자 최근모




오랜만에 일단 남산 식물원이 있던 자리에 올랐다. 안내판이 산뜻하게 모두 바뀌어 있었다. 남산에서 몇 가지 달라진 점들을 꼽자면, 우선 남산 식물원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대신 그 자리에는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시야가 탁 트이니 남산의 선이 한눈에 시원하게 들어온다. 오래된 돌계단은 현대식으로 재정비됐고, 숨어 있는 길가 자투리 땅에는 벤치가 들어섰다. 낡은 화장실은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 기념관도 새롭게 지어지고 있다.

산책로에 들어서자 가장 큰 변화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조깅 코스가 깔렸다는 것이다. 단순히 표시만 해놓은 게 아니라, 산책로의 반은 녹색 우레탄을 깔았다. 처음엔 무더위에 열기도 더 뜨거울 테고, 아무래도 아스팔트 길보다 낫진 않을 텐데 싶어 걱정이 들었다. 물론 아직 어떤 결론에 다다른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걷거나 뛰기에는 확실히 조깅코스가 훌륭하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무릎과 발목이 편안하다. 그래서 그런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스팔트 길보다는 조깅코스 쪽으로 다닌다.

그들 중엔 시각장애우들도 많다. 그 전에는 이들을 배려한 설치물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조금씩 변화가 생기고 있다. 유명한 시인의 시비가 있거나 기념탑이 있는 곳 밑에 점자 안내판이 생겼다. 이참에 시각장애우를 위한 다양한 안전 펜스와 설치물들이 남산에 늘어나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지금 남산에서는 일제 강점기에 벌목용으로 심기 시작했다는 아까시 나무(아카시아 나무)도 잘려 나가고 있다. 그 자리에 소나무를 심는다는 이야기인데, 애국가에도 나오는 "남산 위의 저 소나무~"(물론 여기서 남산은 옛말의 의미로 '앞산'을 가리킨다는 설도 있다)처럼 서울을 상징할 수 있는 소나무가 많이 심어지고 가꾸어졌으면 좋겠다.

남산 산책로. 봄이면 흐드러지게 핀 꽃들로 정신을 차릴 수 없는 곳. 개화가 절정일 때 연인들의 사랑도 그 아래서 달콤하게 무르익는다. 여름철 장대비가 퍼부을 때면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어른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는 곳. '탕! 탕!' 우산살을 헤치고 들어오던 굵은 빗줄기 속에서 아예 우산도 버리고 신발도 벗어버리고 그렇게 천둥벌거숭이가 되어 까르르 웃던 시절도 있었다. 가을이면 붉게 물든 낙엽이 길가를 덮는 곳. 낙엽길을 걸으면서 귓가를 간지럽히는 사각사각 소리에 잊었던 추억들을 하나둘 되새김질하게 만들었던 곳. 그리고 겨울, 사계절 중 남산 산책로를 가장 아름답게 하는 시절이다. 눈이 이불처럼 덮인 길을 걷는 것도 행복하고, 함박눈이 다소곳이 소나무에 좌정한 모습도 아름답다. 앙상해진 나무들 사이로 서울 타워와 보름달을 바라보는 기분은 한겨울 먹는 시원한 냉면 맛이라고 할까? 이 모든 아름다움이 남산 산책로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내려오는 길에는 방재청 쪽을 지나쳤다. 이 건물들은 80년대 개발의 상징처럼 만들어져 성냥갑처럼 네모지고 뭉툭한 모양새가 남산과는 맞지도 않고 왠지 살벌하다. 시야를 막는 건물들이 하나둘 사라지면 남산에 가기가 더 쉬워질 것이다. 바로 눈 앞에 보이는 것도 누군가 가리고 있으면 미로처럼 헤매게 마련이니까. 남산이 빨리 원래 산자락의 모습을 되찾기를 바란다.

오늘 나는 남산의 바뀐 모습들을 눈으로 확인했다. 물론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몇 가지 변화가 더 있을 것이다. 분명한 건 예전과 달리 남산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다. 좀 더 '가까운' 남산이 지금 우리들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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