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삭아삭한 사과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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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8.11.05. 00:00

수정일 2008.11.05. 00:00

조회 1,590



시민기자 장경아

귀한 농민들에게 힘이 되는 계절 가을. 농사짓는 어떤 이는 말한다. 50%는 사람의 노력, 나머지 50%는 하늘의 뜻이라고. 농사란 것이 사람의 힘만으로 될 수 없고, 날씨가 도와야 수확량이 좋다는 뜻이리라. 자연에 순응하는 그 말은 오랜 여운을 남겼다.

그렇다면 올해 자연에 순응한 사과의 수확량은 어떨까? 사과하면 유명한 경북 문경.
주렁주렁 달린 빨간 사과들의 유혹으로 주말 저녁 서울에서 야밤도주(?)를 강행했다. 11월 요맘때는 사촌오빠네가 사과를 따는 시기. 각자 직장을 다녀 모이길 토요일 저녁 8시가 넘은 시간, 문경으로 출발했다. 밤새 널찍한 고속도로를 달려 깜깜한 시골 길을 접어들고 구불구불 찾아들어간 사촌오빠네는 말 그대로 시골 깡촌(?)이다. 연탄불로 뜨뜻하게 덥힌 온돌방에 하루 밤 묵고 다음날 인부들을 도와 사과를 딴다. 울긋불긋 타들어가는 단풍들 속에 사과들이 인부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사다리를 타고 오르거나 낮은 나무에서 따 모은 사과는 노란상자에 담아 분류한다. 사과나무는 잘못 따면 다음해에 사과가 열리지 않는 다는 말에 혹시나 누가 될까 조심스럽다.

그렇게 이른 시작부터 작업을 하다보면 시간의 흐름을 잊는다. 누군가 밥 먹으라고 부를 때까지 시계를 볼 필요도, 물어볼 필요도 없는 완벽한 집중시간. 오직 사과를 따는 손만이 바쁘다. 오늘의 점심 메뉴는 시골 청국장. 시래기까지 넣어 한소쿰 끓여 밥에 비벼 먹으면 별 반찬 없는 상이지만 푸짐하다. 더구나 자연친화적인 밑반찬은 서울에서 온 우리에겐 별미였다. 그러나 주인인 이모는 차린 것 없다고 미안해한다. 3살부터 13살까지 있는 조카들, 언니도 오빠도 청국장을 먹으니 3살짜리까지 덤벼 싹싹 비벼먹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 너희들이 청국장 맛을 알아? 식사를 하는 동안 연탄불로 지핀 온돌방의 뜨뜻한 온기는 살짝 추웠던 몸을 녹여준다.

점심을 먹고 잠시 쉰 뒤 이어지는 작업. 바쁘게 손을 놀려도 오늘 하루 중에는 끝나지 않을 듯이 보인다. 사과상자는 점점 쌓여가고 사과나무에 붉은 색들이 하나둘 없어지면 일과가 끝나가는 성취감이 느껴진다. 막걸리와 고추로 만든 고추튀각과 즉석에서 딴 사과의 아삭한 맛은 현장의 기쁨이다. 바지에 쓱쓱 문질러 한 입 깨물면 싱싱한 수분과 함께 달콤한 향이 입안 가득하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시작된 작업. 뉘엿뉘엿 해가 저물어 가면 하루 일과가 끝난다.
서울에서 내려간 가족들은 상처가 났거나, 썩거나 상품가치가 없는 사과만 골라 포대에 담는다. 팔 수 없는 것들이지만 집에서 먹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썩은 것들은 도려내서 잼을 만들거나, 고추장을 만들어 먹는다. 사과고추장은 달착지근하면서도 향과 색이 어우러져 그 맛이 일품이다. 몇해 전부터 만들어 먹기 시작한 사과 고추장은 이제 중독성이 있어 포기할 수 없게 되었다.

올해는 사과가 풍년이라 값이 싸다고 한다. 더구나 과일씀씀이가 많은 추석도 일러 수요가 줄었다고 하니 농민에게는 더욱 힘든 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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