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유혹

admin

발행일 2008.05.19. 00:00

수정일 2008.05.19. 00:00

조회 1,139



시민기자 이혁진




봄답지 않은 날씨를 한동안 견디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아침저녁은 선선하다 못해 한기가 들고 일교차가 크다 보니 걸친 옷이 헷갈린다. 하지만 이슬을 머금고 담장에 얼굴을 내민 장미꽃은 모호한 봄을 저만치 보내겠다는 테세다.

그래서인가 장미는 여름을 알리는 신호처럼 만개중이다. 우리 아파트 담장에 핀 장미들도 시들 운명엔 아랑곳하지 않을 것처럼 하루가 다르게 만발했다. 정말 빨간 유혹에 그만 꺾고 싶다는 말이 절로 날 정도다.

그런데 엊그제 중랑천을 걷다 인근 아파트촌 담벼락에 핀 장미는 여느 색깔이 아니었다. 백장미와 흑장미에다 노란장미까지 활짝 피었다. 보통 붉은 장미 일색만을 보다가 색다른 장미는 시선을 확 잡아끌었다. 아마 아파트 관리사무소측이 나름대로 신경을 써 다양한 색깔의 장미를 심은 것으로 보인다. 나는 장미와 대화를 나누듯 한참 쳐다보았다. 그러다 흠짓 놀라 내가 다시 한번 살핀 것은 신기루처럼 서 있는 아파트의 이름이었다. 특이하게 생긴 장미의 주인이 갑자기 궁금했던 것이다.


한때 장미축제를 보러 놀이공원을 찾은 적이 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너나 할것없이 경쟁적으로 아파트 담장마다 장미를 둘러 심어 때가 되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장미라도 뭔가 다르게 표출하려는 사람들의 색다른 발상은 어딘가 신선함을 준다. 나같이 지나는 길손에게도 기쁨과 위안을 주는 것처럼. 장미의 유혹이랄까 이는 속절없이 아파트 이름을 개명하면서까지 눈길을 끄는 얄팍한 상술과는 차원이 다르게 보인다.

그러고 보니 담 바깥으로 내민 장미는 아파트 주민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동네 사람이나 손님을 위한 배려라는 생각을 해본다. 장미(薔薇) 한자뜻 그대로 담장에 기댄 장미는 나를 누구보다 제일 먼저 반겨준 아파트의 진짜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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