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아, 이젠 다시 만나지 말자

시민기자 이나미

발행일 2014.02.10. 00:00

수정일 2014.02.10. 00:00

조회 2,110

[서울톡톡]

반복되는 좌절감에 몸서리치다가 문득 참고 견디는 방법 외엔
떠오르지 않은 현실을 받아 들인다
나에게 희망이란 그저 불필요한 욕망을 포기하는 것이기에 오늘도 참고 견디다
나의 희망은 나를 사랑하는 것 나의 희망은 외롭지 않게 살아가는 것
우리의 희망은 건강과 단주로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것

- '희망'의 가사 중 -

건설업에 종사했던 김동욱(가명, 51세)씨는 평범한 가장이었다. 그러나 앞이 보이지 않는 답답한 일상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저 참고 견디는 방법 뿐, 자신도 모르게 점점 술에 의지하게 됐다.

"노래 가사에서 내레이션은 제가 직접 썼어요. 가사에 제 이야기를 담으면서 다람쥐 쳇바퀴 돌았던 제 삶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밥 먹고 출근하고 일하고 그러다 술을 찾는 반복된 일상... '일상'은 어느 순간 제 의지로는 감당할 수 없는 '증상'으로 발전되었죠. 내레이션 가사 중 특히 '오늘도 참고 견디는'이라는 내용이 이 노래를 통해 제가 말하고 싶은 핵심이었어요."

그의 알코올중독은 점차 심해졌고, 병원을 입원하고 퇴원하는 횟수도 늘어났다. 급기야 반복되는 삶의 이유나 다름없었던 '가정과 일'은 동시에 그의 곁을 떠났다.

환자들의 음악작업의 손과 발이 되어준 치료사들

"유일한 위로는 술밖에 없다고 생각했죠. 결국 아내와의 이혼으로 가족들과 헤어졌고 뒤이어 하던 일마저 잃고 말았어요. 위로가 재앙이 된 셈이죠. 그때 홀로된 저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힘들고 외로웠는데, (병원에) 입원한 뒤 여기 환우들과 함께하면서 제 증상이 점차 호전되고 있어요. 만일 제가 이 병원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 저는 살아있지 않았을 거예요."

새벽에 갈증 나도 해장술 한 잔(안 돼 안 돼!) 회식시간 좋아하는 고기에 술 한 잔(안 돼 안 돼!)
이차까지 이어진 흥겨운 노래방 찾아 거리마다 우리들을 유혹하는 네온사인(안 돼!!)...
술아 술아 또 만나면 괴로울거야 술아 이젠 다시 만나지 말자

- '술꾼의 진실' 가사 중 -

병원을 찾기 전까지, 그는 삶을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술이 전부라 여기며 살아왔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건강한 몸과 정신으로 가사를 쓰고 명절에도 남아 환우들을 이끌며 노래연습에 매진했다. 병원에서 '음악과 미술'을 접하면서, 그는 인생에서 느껴보지 못한 감정과 재미를 얻었다고 전했다.

그는 현재 병원에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을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배우고 있다. 동시에 소중한 삶을 음주로 소비했다는 것에 대해 깊은 후회와 반성이 밀려온다고 전했다. 그는 예전에도 증세가 심해지면 자주 은평병원을 찾았다고 한다.

음악치료실과 미술치료실의 협동 작품

환우들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이 많았고, 결국 이곳에서 비우는 삶을 배웠다. 그래서 퇴원 후 목표도 소박하게 '술을 안 마시는데 만족하는 것'이라고. 이제 술 따위에 흔들리지 않을 만큼 그는 단단해져 있었다.

과거 자신과 같은 증세를 겪는 자들이 병원을 찾기 망설인다면 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남이 해주는 좋은 말이 거슬린다면 아직 준비가 안 된 겁니다. 만일 그 남의 말이 들리기 시작하면 비로소 본인이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거예요. 절대 본인 혼자의 의지로는 못 끊으니 분명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깐 망설이지 마세요."

지난 6일, 그가 속한 41병동 환우들은 가슴으로 작업하며 부른 두 곡 '희망'과 '술꾼의 진실'로 병원이 네 번째로 마련한 환자들의 창작음악회 '아트브뤼트 뮤직크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수상하였다.

특히 아바의 명곡 MONEY, MONEY, MONEY의 멜로디와 공감 가는 가사가 합쳐져 시너지가 발휘된 '술꾼의 진실'은 청중들로부터 가장 높은 호응을 받았다.

서울시 은병병원 남민 병원장

한편 '아트브뤼트'는 '가공되지 않은, 순수 그대로의 예술'이라는 뜻으로 정신질환 환자들의 창작 작품을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은평병원은 보건복지부 인증 정신건강전문병원으로서 '아트브뤼트'의 의미를 음악작품 즉, 정신과 성인 병동에 입원 중인 조현병(정신분열증), 우울장애, 양극성 장애, 알코올 중독 환자들이 직접 창작한 노래로 확대하였다.

이들의 순수하고 진실된 음악은 특별한 감동을 관객들에게 선사했다. 음악작품을 통해 마음의 문을 열고 병을 극복하고자 하는 환우들의 용기에 큰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은병병원 홈페이지 ephosp.seoul.go.kr
아트 부뤼트 뮤직크 페스티발 블로그 http://blog.naver.com/artbrut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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