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연꽃축제

admin

발행일 2007.05.22. 00:00

수정일 2007.05.22. 00:00

조회 1,706



시민기자 최근모

조계사의 파란 하늘이 색색의 연등으로 뒤덮여 조각하늘조차 보이지 않았다. 연등축제를 준비하는 행사요원들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진다. 그와 반대로 경내를 거니는 사람들의 표정에 휴일의 여유가 묻어난다. 파란 눈의 외국인들뿐만 아니라 내국인조차 연등으로 하늘을 가려버린 장관에 탄성을 자아낸다.

조계사 대웅전에 새로 모신 거대한 불상을 바라보며 잠시 벤치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종로타워에서부터 시작된 축제마당을 지나온 길, 농악대의 흥을 돋우는 소리 뿐 아니라 길가를 따라 죽 늘어선 체험마당에 마련된 갖가지 전통염색과 연꽃들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연등축제가 다른 축제와 차별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단연코 시각적인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수 없는 연꽃등이 하늘에 걸려 빛을 내뿜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강렬한 이미지가 쉽게 잊혀지지가 않는다. 물론 낮에 본 느낌도 이 정도인데 밤이 된다면 그 감격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눈이 너무 호사스러운 구경을 한 것일까? 갑자기 시장끼가 느껴졌다. 늦은 점심을 하려고 인사동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새하얀 화선지 위에 굵은 붓으로 달마도를 그리는 스님이 눈에 들어왔다. 넋 놓고 그 장쾌한 붓놀림에 마음을 빼앗겼다가 이러면 정말 아무것도 먹지 못할 것 같아 두 눈 딱 감고 인사동 골목으로 방향을 틀었다.

시천주라는 곳에서 스님들이 발우공양 할 때 쓸법한 커다란 그릇에 갖가지 나물을 얹고 강된장에 썩썩 비벼 밥을 먹었다. 배도 든든하고 옹기종기 칸을 나눈 이곳의 분위기에 살짝 취해 온몸이 나른해졌다. 계획대로라면 이대로 집으로 가는 것이었으나 동대문에서 시작된 연등행진이 조계사 앞에 당도할 저녁 9시까지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을 밝힌 연꽃등들이 밤하늘을 어떻게 수놓는지 보고 싶은 마음에 집으로 향하던 나의 발걸음을 자꾸 머뭇거리게 했다.

9시를 넘기자 종로 쪽에서 연꽃등을 든 인파들의 긴 행진이 보인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구름에 휩싸인 모습을 한 거대한 등도 보이고 단정한 한복을 입은 신자들이 줄을 맞춰 팔각등을 들고 오는 모습도 보인다. 조계사 경내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나는 정말 만화에서 나올법한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밤바람에 흔들리는 연꽃등들이 일제히 불을 밝히고 있었다. 별천지라는 단어는 이럴 때 쓰는 말이다. 그 아래 경이로움에 가득 찬 표정으로 등들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 오색의 빛들이 일렁인다. 오랫동안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강렬함이다.

등 꼬리에 달린 각각의 종이들 위에 사람들의 이름과 소망이 적혀있다. 어떤 이는 건강을 소원했을 것이고 어떤 이는 행복을 빌었을 것이다. 그 모든 수천의 소원들이 하나씩 이루어지길 빌어본다. 밤하늘의 별들이 잠시 우리 곁에 내려와 빛나던 신화 같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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