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원의 하소연

admin

발행일 2010.01.22. 00:00

수정일 2010.01.22. 00:00

조회 3,399



시민기자 이은자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정성껏 식탁을 마련하고 있는 주부의 정갈한 모습은 언제 보아도 신선하고 아름답다. 그러한 식탁에 빙 둘러앉은 가족의 모습 역시 더 없이 오붓하고 행복해 보인다. 마치 한 가정의 꿈과 평화가 거기에 모여 있는 것처럼.

그러나 언제부턴가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에게 더할 수 없이 좋은 반려가 되었고, 누구보다도 우리 주부들에게 크게 공헌하고 있는 인스턴트 식품이나 패스트푸드와 같은 음식문화가 단순한 식생활의 변화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식탁문화와 전체적인 소비문화를 흔드는 요인이 되고 있어 안타깝다.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과 함께 용기마저도 먹고 바로 버릴 수 있도록 되어 있어, 그 쓰레기의 처리가 해결하기 어려운 공해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물론 의식의 변화까지 가져오고 있어서 더 큰 문제다.

미국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A.Toffler)는 그의 저서 <미래 쇼크>에서 현대사회를 ‘고도 산업 사회’라고 표현했으며, 그 특징의 하나로 일시성(一時性 : Transience)을 들고 있다. 일시성은 사물과 인간과의 관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 심지어 장소와 인간과의 관계에서도 야기된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집안이 유일한 휴식 공간이었는데 근대는 교통수단의 발달과 자가 운전자의 증대로 관광객이 늘면서 호텔과 별장, 콘도미니엄, 방갈로, 펜션 등을 애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떠돌아다니는, 떠밀려 다니는 무리가 또 다른 세태의 한 모습으로 형성되고 있는지 이미 오래다.

지금 우리의 문화는 소비문화, 그 중에서도 쓰고 버리는 일회용 문화가 아무런 걸림 없이 편리함과 시간절약의 이유로 마구잡이로 받아들여지고 쉽게 고착되고 있다. 이러한 문화는 무엇보다도 국민 개개인의 의식 변화와 국민성향의 변질 등을 가져오기 때문에 우려가 되는 것이다. 사실 전세계가 동시에 염려해야 하는 지구 온난화와 같은 자연재해의 원인이 바로 이런 데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이제 전국의 모든 아파트가 1주일에 한 차례씩 정해진 날짜에 분리수거를 하고 있다. 분리수거 용기들도 사용하기 편리하게 잘 비치하고 경비 아저씨들의 꼼꼼한 관리로 비교적 깔끔하기도 하다. 기자가 살고 있는 동네의 아파트들도 대부분 눈에 거슬리지 않게 잘 시행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연초 눈 치우는 일로 기진맥진해 있는 경비아저씨들을 지켜보면서 기자는 평소 좋아하는 팥 칼국수 한 냄비를 들고 초소를 찾아 건네며, 잠시 담소를 나누게 됐다. 매서운 한파에 제설작업까지, 금년 겨울 아파트 경비원들의 노고는 특별수당이라도 드리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엄청난 중노동이었다. 주민들이 함께 치우는 모습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단지가 큰 아파트는 일주일 내내 쓸고 또 쓸어도 표가 안나 주민들의 원성까지 샀다.

분리수거하는 날도 꽁꽁 언 날씨 때문에 뒤죽박죽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쓰레기들을 다시 분류하느라 정말로 힘들었다고 하소연하신다. 특히 물이 흥건한 채 음식쓰레기를 통에 부어 그 물이 얼어서 음식물 쓰레기통 비우는 작업도 수월치 않았다며, 조금 불편하더라도 분리수거와 음식물쓰레기 처리를 제대로 해줬으면 좋겠다고 이중의 고통을 호소하시는데 기자의 잘못된 습관들을 그대로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다.

마곡동에 사는 김선희(40) 주부는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인스턴트가 좋지 않은 줄 알면서도 아이들이 스스로 일일이 챙겨먹지 않아서 대형마트에서 한꺼번에 사다놓고 먹게 하고 있는데, 주부로서 미안하다고 했다. 맞벌이 부부에게는 학교급식이 안 된 방학이 심각한 문제라며, 인스턴트 식품이나 패스트푸드, 일회용 용품들을 될 수 있으면 사용하지 말자고 환경교육을 아이들에게도 시키면서 실제로 모범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한 사람이 평생 배출하는 생활쓰레기가 무려 55톤이라고 한다. 이 많은 쓰레기 배출이 올바로 버려지지 않았을 때의 환경오염을 생활 속에서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여전히 불편을 감수하지 않고 고치지 않는다면 그 폐해는 감당키 어려울 것이다.

가족 구성원 스스로가 인식해야 할 일이겠지만, 주방 쓰레기를 주로 다루는 주부로서 가족들에게 음식쓰레기 분리수거에 대한 상식적인 것들을 정확하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류의 뼈나 견과류 껍데기, 과일씨는 종량제 봉투에, 통무와 통배추, 통호박, 수박, 파인애플 껍질은 잘게 잘라서, 흙묻은 야채뿌리나 껍질은 흙을 털어서, 김치와 젓갈류는 물에 헹궈서 버려야 하는 줄을 알면서도 귀찮아서 쉽게 실천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줄을 아예 모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분리수거할 때마다 기자도 갸우뚱하는 것들이 있는데 감광지(팩스용지), 먹지, 오염물질이 묻은 종이(음식물이 담겼던 종이접시, 일회용 음식 용기 등), 화장지, 유사종이(종이와 비슷하나 플라스틱과 섬유 등으로 만든 포장재, 명함 등) 등은 종이류에 섞이면 안 된다는 것도 알아두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거의 건전지는 건전지수거함에 잘 버리는 것 같은데, 폐의약품은 종량제 봉투에 그냥 버리고 있는 실정이다. 약국에 비치한 폐의약품 수거함에 버려야 하는데,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서는 더 정밀하고 편리한 수거 방법이 연구되고 홍보돼야 할 것 같다.

주민들이 분리 배출해 놓은 쓰레기를 경비원들이 재분리하는 장면들을 흔하게 볼 수 있는데, 한 가정 한 가정의 잘못된 배출로 경비원들의 업무과중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기자는 이제서야 관심갖게 되었다. 사실상 경비원들의 입장에서는 관리사무실에도, 주민들에게도 하소연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들의 쓰고 버리는 문화가 의식의 변화까지 몰고 오는 문제점을 안고 있음을 이미 지적했지만, 현실적으로 이미 고착된 사안이라면 올바로 쓰고 올바로 버리는 문화로 성숙시켜 가는 지혜와 노력, 대안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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